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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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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왜관에서 대구까지 2

by 깜쌤 2018. 11. 28.


칠곡보와 부근의 전적기념관을 보고서 남행하기로 했다.



칠곡보는 처음에 들렀던 낙동강 철교보다 상류쪽에 위치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접근함에 따라 보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칠곡보다. 건너편 봉우리 위에는 아담한 정자가 앉아있었다.



모래톱들은 물속으로 숨어버렸지만 대신 수자원이나마 확보한듯 하다.



어느쪽을 유지시키고 확보하는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이 부근에는 거대한 규모의 공업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보 위로 나있는 도로를 잠시 달려보았다.



수문을 열어놓은 곳에는 물살이 이고 있었다.



다시 돌아나갔다.



새로 만든 철교위로 고속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보 한쪽에 만들어둔 어도를 물고기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시 상류쪽을 향해 달렸다.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전쟁당시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표현이다.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에 다온듯 하다.



멀리 언덕위에 보이는 큰 건물은 칠곡호국 평화기념관이다.



우리는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에 있는 전적기념관만 보고 가기로 했다.



정찰용 항공기 한대가 잔디밭에 앉아있었다. 날렵한 자태가 금방이라도 날아 오를듯 하다.



포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었다.




기념관 안으로 입장했더니 호국용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조지훈님의 시가 반겨주었다.



스물네살 한창 꽃다운 나이로 사그라진 귀한 이름이다. 편가르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본 소년비행학교를 졸업했으니 그도 친일파 매국노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단순논리적인 편가르기를 혐오한다.



워낙 가난하기만 했던 나라에 태어난 죄로 50년대에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들이 돈벌기 위해 독일 지하 탄광으로 일하러 갔었다. 



그뿐이랴? 꽃다운 젊음을 지녔던 여자간호사들도 독일로 떠나갔었다. 그런 소식들을 라디오로 전해들었던 날들이 어제 일 같다.



내가 라디오 소리를 처음 들었던 것이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전적기념관 건너편은 융단폭격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포탄을 카페트를 펼치듯이 산하 위에 마구 쏟아부었다고해서 만들어진 말이 융단폭격이다. 



 

북한 담배들이다.



통일의 그날은 언제 올 수 있을지..... 남북한 모두 통일을 말하지만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는게 문제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기적적으로 전쟁을 면했다. 

 


하지만 누님 둘은 전쟁의 와중에 태어났다.



이제 출발이다. 모두들 남쪽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칠곡보를 오른쪽으로 남겨두고 남행을 시작했다.



강변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나무들도 그동안 달고있던 이파리를 강변에 뿌리고 있었다.



건너편 약목쪽으로는 골짜기마다 아파트들이 꿰차고 앉았다. 아파트 공화국다운 모습이다.



낙동강 철교도 오른쪽에 남겨두었다.



초겨울 날씨다.



구름이 낮게 깔리자 풍경이 을씨년스러워졌다. 북유럽의 가을이 생각나는 그런 아침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