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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2

경주읍성 풍광

by 깜쌤 2018. 11. 29.


경주읍성 부분 복원 공사가 끝난지 보름이 지났다.



거의 하루에 한번씩은 읍성 부근을 지나다니는 처지라 드디어 올라가보기로 했다. 성벽 위에 발도장 정도는 찍어두어어야 시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리라 믿고서 말이다.



계림초등학교 운동장쪽 끝부분에 설치해둔 계단을 밟고 올라가보았다.



계림문화재연구원 학술총서 1권 동경잡기 82쪽 읍성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읍성 : 돌로 쌓았다. 둘레는 4075척이고 높이는 12척이며 읍성 안에 우물이 80개 있다.


징례문 : 읍성 남문이다. 임진왜란때 불에 탄 것을 1632년(인조 10)에 부윤 전식이 중수하였고 동,서, 북문을 차례로 세웠다. 

 



뭔가 부족했다. 조철제 선생이 지으신 <또 다른 경주를 만나다>라는 책을 펼쳤다. 경주 동헌 일승각과 법장사, 동경관의 잔영, 징례문이라는 항목을 찾아서 새로 읽었다. 동헌은 다 알다시피 고을의 행정 책임지인 수령의 업무공간을 말한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다. 건국 당시부터 1894년까지 502년의 세월동안 경주부윤으로 부임했던 관원은 모두 339명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경주를 경주부라고 불렀으므로 부윤이 임명되었다는데 평균 재임기간은 17개월이었다고 한다.



경주부윤의 근무처가 바로 부성 내의 동헌이다. 보통 읍성 안에서 제일 크고 웅장한 건물은 객사가 된다. 객사내에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와 전패(殿牌)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객사의 이름은 동경관인데 오늘날 경주경찰서 부근에 있었다. 지금은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보통은 출입문이 어디인지 잘 몰라서라도 관람하기가 힘이든다. 귀중한 문화재를 시내 한복판에 놓아두고도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다. 경주 읍성의 동쪽문 이름은 향일문이다. 성문 앞에는 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돌출된 벽이 보이는데 이를 옹성이라고 부른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계림초등학교다.



준공식때 쓴 시설물이 조금 남아있었다. 물론 지금은 철거되어 없다.  



나는 성루속으로 들어가보았다.



물론 한번은 뒤돌아보면서....



옹성쪽으로 나가서 성문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 읍성은 서양의 성들과는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일본과 중국의 성들도 제법 많이 보았다.


 

전란시대를 겪은 일본만해도 성의 규모가 굉장하지만 우리는 그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중국의 성들도 예사 규모는 넘었다.



향일문 옆으로 차량통행을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놓았다.



남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보았다.



성벽 안쪽의 모습이다.



읍성안은 건물들이 낮춤해서 단정하게 보인다.



성벽보다 높은 구조물은 허락해서 안될듯 하지만 이미 그런 균형을 깨뜨린 건물이 안쪽에 들어섰다.



나는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행정당국을 볼 때마다 실망하고 만다.



적법행위이므로 건축행위를 신청할 경우 허가를 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먼훗날을 내다보는 원대한 그림에서 나오는 행위는 분명 아닐 것이다.



나는 천천히 원래 올라왔던 쪽을 향해 걸었다.



성벽 바깥의 해자는 언제 복원될지 아무도 모르리라.



해자를 복원하고 나무를 심고 물길을 흘러가게 만들면 시가지 안에 멋진 공원을 하나 확보하는 셈이 될 것이지만.....



 내 생각이 다 옳은 것도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아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쳤다.


 

다른 날을 골라 향일문 구경에 나섰다.



옹성안으로 들어가본다.



성루에 향일문 현판이 달려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서 천장을 살폈다.



용이 그려져 있다.



읍성 안쪽의 풍광이다.



준공식때 쓴 구조물들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위에서 소개한대로 계림초등학교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경주교회 건물이 성벽 끝자락에 서있었다.



나는 다시 돌아섰다. 옹성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현재는 단순한 성벽뿐이다. 임진왜란때 경주성 탈환을 위해 사용했던 비격진천뢰 모형을 설치한다든지 해자를 복원한다든지 하는 것은 훗날의 일일 것이다. 비격진천뢰와 복원 전의 읍성벽 모습이 궁금한 분들은 아래 글상자의 내용을 클릭해볼 일이다.  



비격진천뢰가 어떤 무기인지 궁금했다 | 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2013.05.01 06:27:00

보면 읍성 성벽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경주읍성은 임진왜란때 왜군과 뺐고 뺐기는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역사시간에 배운대로 비격진천뢰라는 신무기로 왜적을 물리친 현장이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면서도 비격진천뢰의 모형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터라 막연히 상상만 하고 살았다...

경주읍성 | 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2009.10.06 06:46:38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농구골대 높이가 305센티미터이니 그보다 반미터 정도 더 높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시간에 배운 이장손같은 분이 임진왜란때 비격진천뢰같은 신무기로 맹활약을 한 장소이기도 하지요. 해미읍성이나 고창읍성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가지에 들어온 분이라면 한번은 눈길을 주고 갈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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