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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약초산에 오르다 1

by 깜쌤 2018. 11. 5.


동대사 중문 앞에 서서 좌우를 살폈다.



일본의 건축물은 규모가 작고 아담할 것이라고 상상한다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규모가 주는 아름다움을 꿰뜷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야할 것은 커야하고 작아야할 것은 작아야한다는 나름대로의 법칙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왜인들일 것이다.  



중문 앞에 서서 보면 왼쪽으로 저수지가 있다. 카가미이케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다. 한자로는 경지(鏡池)가 된다. 다음의 일본어 사전에 의하면 이런 이름을 가진 호수가 일본 곳곳에 널려있다고 하는데 '고대 귀인이나 영웅 물거울 사용하거, 소지 거울 떨어뜨렸다고 연못'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남대문을 향해 걷는다. 사람과 사슴이 공존하는 곳이다.



나라에 서식하는 사슴을 일본공무원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출퇴근시간이 아주 정확하기 때문이란다.



시간되면 나타나서 먹이활동에 들어갔다가 시간되면 깨끗하게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사슴들의 출몰시간을 확인해보지 않아서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공무원 출퇴근시간과 거의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나는 남대문 옆을 돌아서 나왔다.



아까 갈때는 남대문을 통과했었지만 지금은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중이다.



기둥도 거대하고 높이도 꽤 된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위용이 당당한 건물이다.



지난 글에서 정창원 이야기를 잠시 꺼냈었다. 아직도 일본은 수많은 역사자료를 보관하며 대물림하는 중이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자기들에게 불리한 것은 꼭꼭 감추고 유리한 것만 골라서 공개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기에 비해 우리는 전해내려오는 자료와 보관하는 자료가 너무 빈약해서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가며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부족하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구 폐기해버리는 몹쓸 버릇을 지니고 있는듯하다. 



거기다가 쉽게 흥분해서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모양새가 흔하다.  



나는 일본에 갈 때마다 우리의 그런 면을 정말 아쉽게 여긴다. 보고 들은 것을 세밀하게 기록해두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나는 지다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여행기를 써나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있는 글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는 내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 팀 멤버들을 다시 만났다.



도다이지 바로 옆에 보이는 와카쿠사산에 오르기로 했다.



바로 저 산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잔디밭처럼 보이는 작은 봉우리지만 거길 오르면 나라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기에 올라가보기를 권한다. 올라가보면 밑에서 보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거대한 기와집은 나라 카스가노 인터내셔널 포룸 건물이다. 국제회의장 겸 자료전시관 정도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지 모르겠다.



이런데서 왜인들의 저력이 묻어난다. 유물과 자료에 철저하게 학술적으로 접근해서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논리를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카스가 신사와 그 유물에 관해서는 앞선 글에서 대강 소개를 했었다.



지금 우리들이 걷는 일대가 나라공원이다. 일본 고대사의 핵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주변지대지만 참으로 세밀하게 가꾸어두었다.   



멀리 숲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건물이 동대사 대불전이다.



와카쿠사 산으로 오르는 길을 찾아냈다.




입구에서 표를 샀다.



안으로 들어서면 너른 잔디밭처럼 보이는 풀밭이 앞을 가로막는다.



한쪽 옆으로 나있는 계단길을 걸어올랐다.



언덕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산이다. 관리가 워낙 잘되어 있어서 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기에도 사슴들이 노닐고 있었다. 녀석은 먹이활동을 하느라고 우리를 보는둥마는둥 했다.



노는 모양새가 제법 유유자적하다.



통로가 어디로 나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자기집 마당처럼 여기며 돌아다니는듯 했다.



조금만 올라가도 나라 시내 모습이 드러난다.



비탈길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길은 이리저리 굽어있었지만 높이가 뻔하니 크게 힘들지는 않다.



도시 근교에 있는 산치고는 공기가 맑았다.



나무 밑으로 잡풀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럴까?




어느 정도 올라가니 건물이 나타났다.



관리소인 모양이다.



약초산 일중목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세개의 언덕배기가 있는 산인가본데 첫번째가 여기라는 말이겠다.



언덕에 머물러서서 시가지를 살폈다. 동대사가 밑에 보인다.



나라시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스카이라인을 조정해둔 느낌이 든다. 나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같은 도시이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것 하나만 보아도 우리는 도시 하나를 만들어나가는 안목도 부족하고 장기발전계획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 같다.  



왜정시대에 여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선친께서 나라시 어디쯤에 거주를 하셨는지 잘 들어두지  않았던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가난에 쫒기던 선친은 여기 일본의 나라시까지 흘러들어 막노동을 하셨다고 했다.



못입고 못먹어가며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했지만 나중에 귀국해보니 모여있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조차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셨기에 글을 몰랐던 할머니 앞으로 직접 송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자 그만 눈시울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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