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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정창원을 찾아서

by 깜쌤 2018. 10. 27.


우리는 약초산 방향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다음 목표는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다.



나라에 처음 가는 사람도 동대사를 못찾을 일은 전혀 없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가는 곳이므로 사람들만 따라가도 저절로 이르게 된다.



동대사로 연결되는 길은 우리나라 절 앞에 자리잡은 사하촌같다.


 

차이점이라면 한쪽은 가게들이고 한쪽은 공원인데 거리마다 사슴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나라의 사슴들은 사람알기를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친구같이 여긴다.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이 들고 있는 먹을 것까지도 탐내는 존재들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탐이 들기 시작하면 못말린다.



동대사 남대문이 나타났다. 높이 걸린 현판을 보면 대화엄사라고 되어있다. 동대사는 오늘날도 일본 화엄종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남대문을 통과했다. 멀리 동대사의 중문과 본건물이 보인다.



중문까지 가는 길에도 사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긴 벌써 세번째오는가보다.



이 녀석은 배가 어지간히도 고팠던 모양이다. 관광객들이 들고 다니는 지도까지 빼앗아 입에 물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한쪽으로 철도순직자들을 위한 공양탑과 비석이 보인다. 우리나라 철도에 근무하셨던 선친을 떠올리고는 가보려다가 참았다.



동대사 중문 앞에서 우리 멤버들과 잠시 작별했다. 한시간뒤 대불전 거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던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정창원 건물을 보고 싶었다. 정창원은 일본 왕실의 보물창고였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사와 관련있는 기록들이 발견되기도 해서 화제가 되었던 건물이기도 하다.



개설

 

일본 나라의 도오다이지에 있는 8세기 이래의 창고로 북창(北倉), 중창(中倉), 남창(南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표에서 오는 습기를 제거하고 통풍문제를 감안하여 지은 고상식(高床式)의 목조건축물이다.


연원 및 변천

보관유물의 내역을 보면 신라(新羅)와 당(唐)을 중심으로 하는 외래문물과,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들은 보물 헌납 당시의 기록인『동대사헌물장(東大寺獻物帳)』과 출납에 관한 『잡물출입장(雜物出入帳)』에 의하여 각 유물의 명칭이나 상태를 짐작할 수가 있다.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는 신라에서 구매할 품목과 수량이 적힌 것으로 당시의 교역품을 알게 하는데 그 내역에는 각종의 금속제가반과 숟가락, 동경, 인삼 등의 약용품 등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정창원의 북창(北倉)에 격납된 보물의 명칭과 수량을 기록한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에도 각종의 신라물품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에서의 주문품인 모단(毛緞), 금은평탈(金銀平脫)의 칠기와 약품, 향료, 악기 등의 기록과 실물이 보이는데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 「신라양가상묵(新羅楊家上墨)」이라는 글자가 유물 자체에 적힌 채 전하기도 한다.


현황

정창원보물(正倉院寶物)로 통칭되는 보관유물은 755년(天平勝寶 8) 쇼오무천황[聖武天皇]의 장례용품과 유품 및 황실에서 동대사(東大寺)에 헌납한 보물들과, 동대사 대불(大佛)의 개안(開眼)행사에 쓰인 용품, 그리고 그밖에 각종의 연중행사용품들을 수납한 것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칙사의 입회 아래 여닫는 칙봉(勅封)제도가 시행되어 긴 시간동안 보존하는데 기여하였다. 현재 일본 궁내청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년에 한번씩 나라국립박물관[奈良國立博物館]에서 부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3520



나라에 세번씩이나 왔으면서도 정창원을 아직 못가보았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동대사 입장권을 파는 매표소 앞을 그냥 지나쳤다.


 

모퉁이를 돌면 동대사를 감싸듯이 둘러싸고 있는 외곽 회랑 건물들이 나타난다.



서쪽으로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이어지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치미를 지붕 양쪽끝에 이고 있는 동대사 본전이 나타났다.



나는 정원으로 내려갔다. 일본식으로 깔끔하게 손을 본 정원겸 공원이다.



정원에서 방향을 틀어 서쪽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제법 보였다.



그래도 고요해서 좋았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는 정말 알맞은 곳이다.



동대사 바깥에는 신사도 몇개 있고 심지어는 유치원까지 있다.



이런 곳에 살면 저절로 마음이 정화될 것 같다.



일본식 건물 앞을 지나갔다.



작은 못이 나타났다. 대불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불지 한켠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정창원 구역이라고 짐작했다.



나는 저수지에서 내려와 도로를 찾아 걸었다.



안내판을 보며 다시 한번 더 위치를 확인해두었다.



이제는 정창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찾아야한다.



정문을 의식하고 걷다가 나는 그만 실수하고 말았다.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쳐서 계속 걸었던 것이다.




덕분에 건진것은 하나 있었다. 전해문을 본 것이다. 멀리 도로 끝머리에 단정하게 자리잡은 건물이 전해문이다. 전해문은 맷돌문으로 알려져 왔다. 대문 한쪽 공간에 마노석으로 만든 맷돌이 있었기에 그렇게 알려져 왔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동대사는 8세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8세기 일본에 동대사가 지어졌다면 우리나라에서는 불국사가 지어졌다. 8세기에 지어져서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관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맷돌문이다.



한자로는 맷돌 전, 맷돌 애자를 써서 전애문이라고 부르다가 요즘은 전해문으로 발음이 바뀌고 말았다고 전한다.  



골목길을 돌다가 모퉁이에서 작은 신당을 보았다. 누가 관리하는 것일까?



그렇게 더 걸어나갔지만 끝내 정창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찾을 수 없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으니 찾는다고 찾겨질 수가 있는가?



돌아오면서 맷돌문 모습을 멀리서 찍어보았다. 맷돌문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건물의 원형일 수도 있기에 소중하다는 것이다. 정창원 건물을 보았더라면 고구려 시대에 귀족들 집에 존재했었다는 부경()의 원형을 볼 수 있었으리라.  



이 길로 올라갔었어야 하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돌아서야만 했다. 바보짓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보고 싶던 건물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부지런히 돌아간다면 우리 팀멤버들과 만나기로 했던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고보면 동대사 영역은 참으로 넓다.



불국사 경내에는 작은 못이 있긴하지만 규모는 동대사 것이 훨씬 크다.



오월에 왔더라면 사방에 꽃이 가득했으리라.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나는 동대사 서쪽회랑을 따라 걸었다.


 

화장실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냥 가기가 아쉬워 중문 앞으로 가보았다.



중문에 붙어서서 동대사 대불전 건물을 살폈다.



대불전 속에 들어앉은 부처상이 보이는듯 하다.



대불전 앞 팔각등롱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중문 양쪽으로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다.



그림 속의 새는 삼족오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일본의 고대사는 한반도와 관련이 많기에 하는 소리다.



나는 남대문을 향해 걸었다.



기념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을 보는 순간 아무렇게나 날려보낸 어리석기만 했던 나의 청춘이 생각났다. 가슴이 아련해져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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