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흥복사와 나라박물관

by 깜쌤 2018. 10. 18.


돌계단을 올라 처음으로 마주치는 건물이 흥복사의 남원당이다. 팔각형 건물이니 건물 이름에 원이 들어가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게 느껴졌다. 



흥복사는 후지와라 집안의 절(氏寺 씨사)이었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쓴 어설픈 여행기를 세밀하게 읽어보신 분이라면 헤이조쿄의 바깥을 두고 외경으로 표현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흥복사는 헤이조쿄의 외경 산자락에 지어진 절이었다.

                                  



위치적으로는 그렇지만 오늘날 외경을 대표하는 절은 동대사(=도다이지)로 역할을 바꾸어 존재한다. 우리는 흥복사와 나라국립박물관을 거친 뒤 동대사로 향할 예정이다.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는 수도를 헤이조쿄로 옮긴 것과 때를 같이하여 710년경 현위치에 지어졌다. 남원당은 8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권력을 오로지하고 있었던 집안이 후지와라(藤原) 가문이다. 후지와라 집안에서 만든 절이 흥복사이니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아래 사진을 보자.



흥복사(고후쿠지) 경내안내도라는 이름으로 입간판이 하나 서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림 제일 아래부분의 남원당과 오중탑 사이 공간에 와있다.


 

이 건물이 동금당이다. 흥복사 경내에서부터는 나라의 상징동물이 되다시피한 사슴을 만날 수 있다.   



남원당 맞은편에는 5중탑이 버티고 섰다. 동금당이니 오중탑이니 하는 건축물들은 모두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유서깊은 건물들이다.



남원당 앞에 보이는 유적터는 남대문터라고 알려져 있다. 남대문 터만 해도 이정도였다면 흥복사 전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시 동쪽 산자락 일대, 오늘날 나라공원으로 지정된 영역의 대부분이 모두 흥복사 경내였다고하니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동금당을 가만히 보면 건물의 생김새가 어딘지 우리나라 건물과는 살짝 다른 느낌이 난다. 많이 보아서 그런지 이제는 그런 것 정도는 나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흥복사와 나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유홍준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2를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에 관해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무사시가 흥복사 경내에서 결투를 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예전 흥복사 경내에는 보장원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그 부근에서 검승(劍僧) 아간과 결투를 해서 상대를 즉사시킨 내용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흥복사에서 사슴은 인기동물이었다. 녀석들은 사람들을 겁내지 않는다. 이 녀석들은 야생동물이다. 누가 애완용이나 가축으로 기르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오랜 세월을 인간과 공존해서 그런지 사람 알기를 자기들 친구정도로 안다.



그렇더라도 너무 귀엽게만 생각해서 안일하게 대처하면 큰일나는 수가 생긴다.



야생동물이기에 사람을 물고 발로 차고 뿔로 들이받으며 체중을 이용해서 돌진하기도 한다니 조심할 일이다.



덩치를 보라. 어린아이들이 공격을 받으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사슴 먹이나 사람이 먹을 것을 가진 존재만 보면 다가와서 한입 달라고 치근덕거린다. 스토커가 따로 없다.



우리는 나라 현청을 지나 산자락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사슴들도 미인들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예쁜 아가씨 옆에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얼굴이 무기급에 해당하는 내 옆으로는 다가오는 녀석이 없었다. 추남은 어찌 그리 잘도 골라내는지 모르겠다.



이제 지하도를 통과해서 걸어갈 것이다. 아래 지도를 보자.




빨간색 점 : 우리가 묵고 있는 게스트하우스

노란색 점들 : 나라 공원 인근의 명소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되어 뜰 것이다. 명소들 위치를 대강이나마 확인해두고 읽어두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지하도의 오르내리는 길은 경사로로 되어 있어서 장애우들이 사용하기에도 무리가 없도록 배려했다.



지하도를 벗어나면 이어서 나라국립박물관이 등장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춘일대사가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국보와 보물, 그리고 귀중한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특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리는 입간판과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어서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들어가 봐야한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국립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라국립박물관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국립박물관과 같은 구실을 하는 장소이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한번은 보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춘일대사 소장품 전시회를 가진다고 하지않는가 말이다.


 

춘일대사(春日大社 가스가 다이샤)는 일본인들이라면 평생에 수백 수천 수만번은 들락거려야하는 신사가운데 하나다. 춘일대사는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명소다.  



입장료로 거금 1,500엔을 지급하고 표를 사서 들어갔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춘일대사 유물을 보기 전에 바깥 경치부터 살펴보았다.



위에서 언급했던 미야모토 무사시와 연관된 흥복사 보장원은 아마 국립박물관 뒤쪽 어딘가에 있었던 모양이다.



전시관 안은 철저한 사진촬영 엄금구역이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춘일대사에서 소장하는 국보급 유물과 문화재들을 보긴 무수히 보았다.



그러나 머리속에 새겨둘 방법이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전시물 광고판이 있었다. 그걸 찍어두기로 했다. 이런 투구와 갑옷도 국보란다.



사리를 담는 용기다. 사슴이 등장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스가다이샤(춘일대사)는 후지와라 집안의 신사다. 그러니까 씨신사(氏神社)인 셈이다. 신불습합의 전통이 괜히 생겨난게 아니다.



일본인들에게 신사는 정신적인 고향이며 지주나 마찬가지다. 일본 고대사에서 4백여년동안 권력을 대물림했던 명문세가였던 후지와라 집안을 위한 신사였으니 국보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뿐이랴? 신심좋은 민간인이 자기가 소유했던 애장품을 신사에 기부하고 희사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니 소장품들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십일면 관음입상이다. 십일면이라는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머리부분을 보아두자.



머리부분을 확대한 모습이다. 이제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가스가다이샤의 위명은 오늘날에도 쟁쟁하다.



그들이 소장한 물품을 항상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기간에만 공개하는데 이번에는 운좋게 맞닥뜨렸다.



도록을 사오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있겠는가 싶었다. 


 

나는 일본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일본통사를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하는 정도다.



그러길래 흐름만 알면 그 정도로 만족하는 처지다.



오늘 관람도 그랬다. 춘일대사에서 어떤 것들을 소장하고 있는지를 알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가스가다이샤의 실제 모습은 나중에 소개해드리겠다.



소장품을 봄으로해서 일본인들의 의식흐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깥으로 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밀려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무리였다.



이제 동대사를 향해 걷는다. 시내버스 정류장이다.



시내버스 안내 시스템이었는데 버스위치가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것은 내가 사는 도시보다 한수 위였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초산에 오르다 1  (0) 2018.11.05
정창원을 찾아서  (0) 2018.10.27
나라 골목의 아침  (0) 2018.10.13
나라탐방 - 게스트하우스  (0) 2018.10.10
나라 야경  (0) 2018.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