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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 시내 누비기 1

by 깜쌤 2018. 9. 19.


2018년 7월 21일 토요일, 새 날이 밝았다. 오늘은 목포시내를 탐방하는 날이다. 



아침으로는 된장국을 먹었다. 주인 아줌마의 성격이 너무 밝아서 좋았다. 음식 솜씨가 대단하다.



어서오시라고 날 부르는 사람은 전혀 없었지만 나는 서둘러 출발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목포시내를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머물고 있던 곳은 신시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도로도 반듯반듯했고 조경도 괜찮았다.



어제 저녁에 왔던 길을 따라 갔다.


 

일단 목포역까지 가보기로 했다.



목포역을 중심으로한 유달산이 있는 그 부근 동네가 원래 목포시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목포역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볼 생각이다.



목포역 광장까지 왔다.



그대로 계속 나아갔더니 볼거리들이 즐비했다.



관광객용 지도를 살펴보았더니 목포시내를 몇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었다.



유달산권, 갓바위권, 삼학도권, 고하도권, 북항권등이 등장했다. 유달산과 삼학도라는 낱말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삼학도권은 나중에 보기로하고 일단 기차역 부근부터 뒤져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아무데나 기분나는대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돌아다니다가 '민어의 거리'를 발견했다. 버릴것 하나도 없다는 국민 생선의 대명사가 민어 아니던가?



골목에는 횟집들이 즐비했지만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이 성능좋은 최고급이라는 것만은 어딘선가 들어본 이야기같다.



책에서 본 기억이 있는 건물을 만났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었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세웠던 동인도회사만큼이나 우리에게 악명을 날렸던 회사가 동양척식주식회사다. 


 

부근의 건물들에게서는 왜정시절의 냄새가 묻어났다.



자전거바퀴가 굴러가는대로 가다보니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을 오르게 되었다.



목포에서 산이라면 유달산이 아니던가?



유달산과 노적봉은 초등학교때 이미 배운 기억이 있다.



유달산을 구성하는 많은 봉우리들 가운데 노적봉이 구체적으로 어떤 봉우리를 두고 하는 말인지 그게 궁금해졌다.



목포, 광주, 나주같은 도시들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도시들이다.



내가 어렸을땐 학생의 날 같은 기념일도 교과서에 등장했었다.



구시대 정치인들의 되먹잖은 논리로 그런 의미있는 날들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나도 모르게 산쪽으로 슬슬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지형을 파악하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한다는게 정석이다.



오히려 산으로 올라간게 고마운 일이었다. 목포 지형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서민들 삶의 체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들이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왔다.



목포시의 역사적인 기원과 유래가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살펴보았더니 DAUM 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었다.





목포의 연혁

 

백제 때에 물아혜군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무안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44년(혜종 1)에 물량군으로, 991년(성종 10)에 다시 무안군으로 고쳤다. 1018년(현종 9)에 나주의 속군이 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자 1391년(공양왕 3)에 성산극포권농방어사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 전라도 4진 중의 하나인 목포진이 설치되었으며 첨절제사가 파견되어 방어임무를 맡았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 때 무안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나주부 무안군, 1896년에 전라남도 무안군이 되었고 도서지역은 신설된 지도군에 이관되었다. 1897년 목포진을 개항함으로써 목포는 전라남도 최대의 항구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 감리서가 설치되고 무안군이 부로 승격했다.




1903년 목포감리서가 따로 설치되면서 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906년 다시 부로 승격되어 감리를 폐지하고 부윤이 겸하게 했다. 이 시기에 월경지 정리도 이루어져 함평군의 비입지인 다경면·해제면, 나주군의 비입지인 삼향면, 영광군의 비입지인 망운면·진하산면·다경포가 편입되어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1910년 무안부를 목포부로 개칭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목포부의 부내면과 거류지 등 시가지를 목포부로, 주변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고, 식지면 등 6개면을 3개면으로 통합해 함평군에 이관했다. 1949년 시제 실시에 따라 목포시로 개칭했다.


2006년 용당1동·산정2동을 용당1동으로, 북교동·무안동·남양동을 목원동으로 유달동·충무동을 유달동으로 통합하여 기존의 행정동 26개를 22개로 통분합하였다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7m4084b




이 아름다운 곳에서 음식을 먹은뒤 뒷정리를 할 줄 모르고 함부로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우리들의 몰상식이 나그네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었다. 



 항구로 이어지는 물길 가에 곱게 놓인 인어상이 그런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목포시의 인구는 현재 약 23만명 수준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더 많은 성장과 부흥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닷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렸다.



이렇게 달리면 유달산을 한바퀴 돌게되리라.



목포인들에게 유달산은 마음의 고향일 것이다. 산세가 크진 않지만 참으로 아름다웠다. 기품이 넘치는 산이었다고나 할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