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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법륭사(호류지) 2 - 동원

by 깜쌤 2018. 9. 12.


대보장전을 보고나왔다.



대보장전 안에는 금당벽화 모사도가 전시되어 있었다.



대보장전을 나와서 동쪽으로 걸어가면 동대문이 나온다. 법륭사 동대문이다.



동대문을 벗어나서도 길은 계속 곧게 이어져있다. 그길을 따라 가면 법륭사 동원이 되는 것이다.



멀리  동원가람의 대문이 보인다.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동원대문이 우리쪽으로 다가오는듯했다. 실제로는 내가 그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지만....



법륭사 동원의 핵심 건물은 몽전(夢殿)이라는 이름이 붙은 팔각 건물이다. 입구로 사용되는 대문 위로 몽전 지붕이 솟아올라 있었다.



동원 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종루건물이 보인다. 날씬한 여성이 치마를 입은듯한 형상으로 지어진 건물이 종루다.



몸과 마음을 정결케하고 들어가야하지만 나는 그런 예식을 밟기를 거부한다. 그냥 날이 더워서 손을 씻고 입안을 헹구어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간다.



몽전(夢殿)이 단정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몽전은 나라시대의 건물로서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 역사에서 아스카시대는 보통 서기 550년경에서 701년까지를 의미하고, 나라시대는 710년에서 794년까지로 구분하는게 일반적이다. 아스카시대의 시작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설이 존재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면 재미있다. 우니라라 역사와 비교하자면 백제의 멸망이 서기 660년, 고구려의 멸망이 서기 668년, 신라의 삼국통일 완성이 서기 676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고나서 일본 고대사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몽전의 동쪽에는 동원예당 건물이 남아있다. 어느 시대에 지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몽전은 나라시대의 건물이라는 사실이 확실하다.



건물의 생김새가 반듯하다. 예당이라고했으니 몽전에 대한 예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동원예당과 몽전의 처마곡선을 유심히 살폈다. 직선인듯하되 끝부분이 살짝 치켜져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몽전에는 비불이 있다. '비불'이라함은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비밀스럽게 보관만해오는 불상을 말한다. 우리가 갔을때는 6월이어서 봄 공개기간을 지나있었다. 



몽전에는 실물 크기의 구세관음상이 비불로 전해져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구세관음상은 일본인들이 거의 신격화하여 생각하는 쇼토쿠태자를 모델로 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비불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도쿄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던 어니스트 페놀로사(Ernest Fenollosa, 1853–1908)의 역할이 컸다고 전한다.


 

페놀로사가 문전의 비불을 관리하던 스님을 설득하여 공개토록 한 것인데 그게 1884년의 일로 전해진다. 나는 8각형 건물인 몽전을 천천히 반바퀴 돌며 주위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예당 반대편에는 회전사리전이라는 공간을 가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회전에는 성덕태자(소토쿠태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몽전을 반바퀴 돌아보고 나서 종루로 이어지는 문간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동원 예당이다.



몽전이 있는 구역을 벗어나면 문밖에 종루가 등장한다.



날렵하고도 날씬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남이야 뭐라고 하든 적어도 내눈에는 그렇게 다가온다는 말이다.



처음 일본에 와서 이 건물을 보았을땐 식량창고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고구려의 부경과 관련지어 연관을 지은 것인데 어설픈 역사지식이 만들어낸 착각이며 환상이었던 것이다.



호류지 동원가람의 영역도 좁은 편은 아니다.



무언가 두고온다는 느낌이 들며 아쉬워지기에 다시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종루 안쪽으로 이어져있는 담장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보았더니 다른 절이 나타났다.



북실원이라는 이름은 가진 또다른 절이었다. 



 대문 안쪽이 본당 건물이다.



나중에 위성 지도를 가지고 검색해보니 이 부근이 온통 절이었다.



몽전을 나와서는 법륭사 쪽으로 가되 골목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일부러 골목길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현지인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골목길 구경과 재래시장 탐방이 최고다.  



골목에는 찻집도 숨어있었다. 한잔 정도는 마시고 가야하지만 오늘의 이동거리를 감안하면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물길이 골목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깔끔하고 깨끗하다.



어떤 곳에서는 골목이 꺾이는 곳에 불상을 모셔두고 꽃으로 장식까지 해두었다.



가정집 색깔도 회색계열이 많아서 차분하면서도 단정하게 느껴졌다. 



쓰레기봉투를 모아두는 상자를 보고서 나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해두면 고양이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봉투를 찢어버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쓰레기통 부근이 쓰레기로 덮이는 그런 꼴불견 불상사는 거의 없는듯 했다.



일본인들의 청결 수준은 세계 최고나 마찬가지다.



청소차가 지나갔다. 나는 환경미화원의 처리방식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두고 갔다. 우린 청소차가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집주인이 나가서 뒷정리를 해야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준높은 시민의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공화정시대 고대 로마인들의 시민의식과 사회지도층들의 의식구조는 그 어떤 사회와 비교해서도 공동체의식 하나만은 건전했던 것으로 소문나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골목은 한없이 깨끗했다.




이 골목길의 끝은 법륭사 서원가람의 남대문으로 이어진다.  



남대문 앞 소나무 숲길 부근에 늘어선 가게 분위기도 차분하다. 우리처럼 지나친 상업화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법륭사 남대문 앞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소나무숲길은 반드시 한번은 걸을만하다.



주차장으로 다시 찾아온 우리들은 자전거를 조립했다.



일행이 자전거 뒤에 짐을 실은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동안 나는 사무실에 찾아가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나왔다.



잠시 휴게소 빈 의자에 앉아 쉬면서 다시 한번 더 갈길을 점검했다. 



나라시로 가는 길 중간중간에 들러야할 곳들을 확인해둔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북동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구름이 낮게 깔려있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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