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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법륭사(호류지) 1

by 깜쌤 2018. 9. 6.


법륭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과 사랑은 각별한것 같다. 출입구를 서쪽 끝머리에 자리잡도록 한 것은 다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법륭사 입장권은 거금 1,500엔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쳐도 1만5천원 정도이니 비싼 편이다.



법륭사 구역은 전체가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기에 갇힌 공간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는 일본인들이 그만큼 성스럽게 여긴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탐방 여행을 온 아이들이 한쪽에 모여앉아 설명을 듣고 있었다.



회랑으로 둘러쳐진 영역 안 왼쪽에 오중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금당이 자리잡았다. 지붕만 헤아려본다면 6층탑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층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일본인들은 오중탑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제일 아래층을 보자. 지붕이 겹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당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1층 지붕을 보면 겹으로 되어있다. 이런 속지붕을 한자로는 상계(裳階)라고 한단다. 상계는 일본 고건축의 특징이기도 하다.


 

1층에 속지붕이 있음을 감안하고 살펴보면 5층탑임을 알 수 있다.



중문 앞에 서서 전면을 바라보면 왼쪽은 오중탑, 오른쪽에는 금당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건축양식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절 건물 배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가람과 일본의 아스카시대 절 건물은 좌우 대칭이 일반적이었다는데 법륭사는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는 일반인들이 잘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미적인 감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 아스카, 나라편에서 이런 것을 두고 '비대칭의 대칭'이라는 멋진 표현을 사용했다.




미적인 감각에 있어서 지극히 평범한 시각을 가진 나는 그런 것까지 체감할 수 없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법륭사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쪽에 있는 가람을 두고 서원, 동쪽에 있는 가람을 두고 동원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우리는 서원을 보는 중이다.



나는 금당 건물에 다가가보았다. 금당과 오중탑 내부는 어두컴컴하다. 오중탑 네면 안쪽마다 소조상이 들어있다고하는데 나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법륭사 서원을 둘러싼 회랑을 보면 세로로 막대를 내지른 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게 참으로 묘한 감각을 지녔다. 멀리서 보면 닫힌 것 같은데 가까이 가보면 열려있는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리라.




위 지도는 구글 위성지도를 가공한 것이다. 클릭하면 새창이 크게 열릴 것이다.



아래쪽 큰 초록색 점 : 남대문

노란색 점 : 매표소

빨간색 점 : 중문

작은 초록색 점 : 오중탑

하늘색 점 : 금당

파란색 점 : 대강당

분홍색 점 : 대보장전

오른쪽 작은 빨간색 점 : 동원

연한 노란색 점 : 동대문



단정하게 보이는 저 건물은 대강당이다.



서원 경내에는 하얀 잔자갈-모래라고 해도 되겠다-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절제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듯 하다. 그 위를 걸으면 자박자박하는 소리가 나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사리게 된다.  


 

아홉칸 건물로 알려진 대강당 앞에는 청동 등롱이 서있다.



6개 면으로 이루어진 등롱 하단에는 괴수가 새겨져있고......



여섯마리 모두 그 모습이 다르다.



대강당 안에는 불상이 놓여져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서 내가 걸어온 길을 재확인했다. 금당과 오중탑, 보수중인 중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본 아이들이 조신한 몸동작으로 그들의 자랑거리인 두 건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법륭사 건물들 가운데서 일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있기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우리는 회랑을 따라 걸었다. 



대강당 좌우엔 종루와 불경과 서적을 보관하는 경장이라는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눈치빠른 분들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지만 서원구역 안에는 꽃을 심은 화단이 없다.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에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법륭사 금당에 그림을 그린 것으로 되어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역사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현장에서 법륭사 건물들의 실제모습을 보면 절의 규모도 크고 건물 또한 굉장히 큰 편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이제 이 구역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일본 초등학교 아이들도 조용히 내려오고 있었다. 얘들은 떠드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출구 바로 옆 건물은 성령원이다.



성령원(聖霊院)이라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삼위일체가운데 한분이신 성령(Holy Spirit)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표현은 성령이지만 의미는 다르다. 성령원은 한때 승려들의 숙소였다고 전해진다.



출구에서 앞을 보면 아랫부분이 심하게 뒤틀린 고목이 보인다.



그 옆은 작은 연못이다.



아이들이 성령원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뒤따라간다.



성령원 건물 안에도 불상이 있는듯 하지만 굳이 살펴보진 않았다. 성덕태자의 세아들의 모습과 고구려 승려였던 혜자를 그린 초상도 이 건물 안에 있다고 전한다. 혜자스님은 성덕태자에게 불경을 가르친 분으로도 유명하다.



이 연못이 바로 경지(鏡池)라는 이름을 가진 못이다.



석등 안에는 밤새 불을 밝혀두는 모양이다. 이름조차 상야등이다.



성령원을 지나면 일본인들이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는 백제관음상이 안치되어 있는 대보장전이 나타난다. 대보장전도 들어가서 세밀히 살펴보았지만 일본인들이 너무 지나치게 교만을 떠는 것 같아서 건물사진조차 남기지 않았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더 교만했던 것 같다.  



 

대보장전 안은 사진촬영이 철저하게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 안에는 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보물들이 즐비하다. 최고의 걸작은 백제관음이다.



마옥(馬屋)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작은 건물앞을 지났다. 성덕태자가 타던 검은말의 형상이 들어있었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짐작해보건대 일본인들의 마음 속에 성덕태자는 흠모의 대상을 넘어 신으로 군림하는 것 같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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