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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 중문에서 성산까지 5

by 깜쌤 2018. 8. 27.


혹독하기만 했던 올해 여름의 뜨거운 땡볕을 쬐며 하루종일 달렸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너무 지쳐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97번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제주성읍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성읍민속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도로가로 곱게 갈아놓은 밭이 나타났다. 나는 이런 밭을 보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작은 밭을 구해서 간단한 텃밭 농사를 짓고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성취여부는 나도 모른다.



앞쪽으로 성읍마을이 나타났다.



성읍마을 홈페이지에서는 마을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성읍마을의 역사


성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종을 축성 하였었으나, 현청이 동쪽에 너무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으로 부터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안무사 전관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를 옮기게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이라고도 불리었던 정의성은 축성을 시작한지 5일 만인 세종 5년 정월 13일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의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는 동서남으로 세 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었다.

 

출처: http://www.jeju.go.kr/seongeup/intro/history.htm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정의현의 당시 민가 호수가 1436호, 전답이 140결, 성수비군이 664명, 말 1,178필, 흑우 228수를 보유할 정도의 상당히 번성하였던 읍성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1423년 이후부터는 약 5세기 동안 정의현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평범한 농촌마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1915년 5월 1일부로 제주군제도 마저 폐지되고 도제가 실시되면서 정의고을이었던 성읍은 표선면 면소재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금의 표선면은 1935년 동중면이 개칭된 이름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마을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문화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총 1,425필지 3,191,711㎡의 면적이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제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호 국가지정문화제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필지(790,747㎡)로 축소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http://www.jeju.go.kr/seongeup/intro/history.htm



정리하자면 이렇다. 조선시대에 현청이 있었기에 인근에서 알아주던 제법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쇠락하여 민속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성읍마을이자 읍성마을이어서 그런지 전통집들이 제법 잘 보존되어 있었다.



성벽이 나타났다. 마을 한가운데로 난 도로로는 차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나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오렌지 쥬스와 물 한병을 사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제사 탈진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내몸에 에너지가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다.



성읍마을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리조트까지 가는게 급선무다.



성읍마을에서 원 리조트까지는 8킬로미터 거리였다.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작은 산마루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앞쪽에 오름이 하나 나타났다.



도로가로 기차펜션이라는 숙박업소가 나타났다.



주인은 다양한 탈것들을 수집한 것 같다.



아무리봐도 이건 치누크 헬리콥터다.



기차펜션을 지난 뒤에도 성산읍을 향해 부지런히 달렸다.



길이 좋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도로가에서 카페를 발견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오래 쉴 수는 없었다. 땀을 닦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출발했다. 벌써 오후 다섯시가 훨씬 넘어버렸다.


 

아침 8시 50분부터 라이딩을 시작했으니 도대체 몇시간을 달려온 것인가?



이제 리조트 부근까지 거의 다온 것 같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확인해둔 간판이 나타났다.



도로에서 이어지는 소로를 따라 들어가서 조금 더 가도록 되어있었다.



마침내 입구가 나타났다.



리조트다. 성산읍에서 서쪽으로 한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다고 보면 된다.



나는 리셉션으로 찾아가서 신분을 밝혔다.



방은 침대 두개짜리 방이었다. 2층이다.



학생들이 한번씩 수학여행을 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발코니에 서보니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동쪽과 서쪽은 모두 밭이다. 그런데 육지에서는 이 시기에 들어보기 어려운 뻐꾸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


  

녀석들이 여기에서 여름을 보내는가보다.



성읍마을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사온 컵라면을 꺼냈다. 내일 아침에는 얼굴이 부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는 바람을 쏘일겸해서 부근을 조금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리조트를 나왔다.



단정하고 깔끔한 건물이다. 인터넷상에 특가로 나온 것을 잡았는데 하루 2만5천원 정도의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으니 조용하다. 딱 내 스타일이니 만족한다.



성산읍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려보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의점이 두군데나 있었다.



그 정도면 만족한다.



8시가 되어도 캄캄해지지 않는다. 확실히 여름날이 길긴 길다. 눕자마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