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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아스카 - 고분들

by 깜쌤 2018. 8. 2.


너무 멀리까지 가버려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들 즈음에 우리들은 현지인들에게 물어 다시 아스카 역쪽으로 되돌아나왔다. 이번에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흠명을 일본인들은 긴메이로 읽는다. 흠명왕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새로 형성된 마을이 산비탈에 소복하게 모여있었다.




작은 뒷동산 정도의 언덕 정상까지 이르자 길이 밑으로 이어지며 도리이 비슷한 형상이 나타났다.



목표지점까지 다 온 것이다. 흠명왕릉이다. 일본인들은 긴메이덴노(=킨메이덴노) 무덤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런데 무덤 양식이 너무 수상하다. 우리나라 왕릉처럼 봉분이 둥글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숲처럼 보인다.  



어디가 숲인지 어디부터 무덤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다.



나는 옆으로 조금 더 나가서 살펴보았다. 생나무 울타리 너머 보이는 숲과 우리들이 서있는 곳 사이에는 물이 채워져 있다. 얼핏 보면 저수지 같지만 그게 아니다. 전방후원분 양식의 무덤을 둘러싼 호수인 것이다.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저수지처럼 생긴 호수로 둘러싸인 거대한 무덤이 흠명왕의 무덤이다. 앞쪽은 사각형 모습이고 뒤는 둥근 형태의 무덤이므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독특한 무덤 형태는 일본에서만 발견된다. 우리나라 전라도 일부지방에서도 발견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일본의 그것과 비교하여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지만 참고로 흠명왕은 우리나라 백제의 성왕이 일본에 건너가서 즉위한 분이라는 주장이 있음을 소개한다.



부근에 기비히메여왕(吉備姬 길비희왕)의 무덤도 같이 있다. 일본인들 발음으로는 기비히메노미코다.



그녀의 무덤 영역 안에 우리가 보고자 하는 원석이 숨어있었다. 처음에는 이 무덤을 찾아내지 못해서 부근을 뺑뺑 돌았다.



원숭이 고추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된 조각품이 재미있다.



가만히 보면 아스카에는 거북이 모양, 원숭이 모양등 재미있는 조각품들이 곳곳에 널려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필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터이지만 지금은 그 유래와 용도를 확실하게 해석해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묘석을 보면 길비희왕이라는 네글자가 뚜렸하다. 이럴 경우 자는 여성을 나타내는 말이겠지만 일부 여행기나 책에서처럼 여왕으로 번역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방후원분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러길래 일본인들은 전방후원분을 두고 피라미드와 맞먹는 거대한 구조물이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삼국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일본 고대사에서 이미 거대한 권력체계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며 역사의 유구함을 나타내는 징표라는 식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아스카역 방향으로 돌아와서 아스카 마을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무덤을 발견했다.



천무, 지통왕릉이다. 한자표기를 보면 천무, 지통천황릉이라고 표현해두었다.  



천무왕은 우리나라 역사로 치자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후에서부터 서기 700년 이전에 살았던 인물이다.



도로가에 무덤이 있길래 자전거를 세워두고 올라가보았다.



무덤앞에 만들어둔 구조물의 양식은 거의가 다 비슷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일본 고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은 제법 수상한데가 많다. 여러가지 역사 기록물에 등장하긴 해도 연대가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다거나 허황한 기록이 많아서 살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자기들에게 유리한쪽으로만 해석해버리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결국 필연적으로 역사왜곡 현상이 벌어진다.



이 두 왕의 무덤은 봉우리 형태를 갖추었다.



나는 무덤둘레를 한바퀴 걸어보았다.



무덤 뒤로 돌아가자 대나무 숲이 울창했다.



일왕 가문의 기원에 관한 비밀은 소수의 핵심분자들만 알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공개하지 않는 극비내용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 비밀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왕 집안이 백제계라는 소문과 증거물이 무성한 이상, 그 진실을 누가 섣불리 고백하겠는가 말이다. 소문은 소문대로 남겨두고 싶을 것이고 증거는 감추기만 하면 된다.  



우리도 그런 소문에 크게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일본 왕실이 백제계라고 해서 어떤 우월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교만한 자세를 가질 필요도 없다.



다만 철저히 자료를 수집해서 조사하고 연구하고 근거를 모아두었다가 그들이 우리 심사를 거슬리게 할 때마다 하나씩 터뜨려나가면 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징용문제, 징병문제, 문화재수탈문제, 신사참배강요, 역사왜곡 영역에서 그들의 약점이 될만한 것들을 세밀하게 조사해두었다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하면 될것이다. 앞으로 수백년동안 그렇게 해나가면 된다.


 

그들이 독도문제를 들고 나올때는 자기들 나름대로 한국을 다루는 요령을 익혀두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박근혜 정부는 너무 순진했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사를 반듯하게 정리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일본이들이 치사하게 나올 때는 우리도 그들이 정말 성가시게 느끼고 아프게 여길 만한 비장의 무기를 만들어두어야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시 아스카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우리가 꼭 보아야할 것은 이시부타이 유적이다. 한자로는 석무대(石舞臺)다.



석무대는 아스카천 상류부근에 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유적지를 향해 걸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