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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아스카 - 기차역 부근에서

by 깜쌤 2018. 7. 28.


사진으로만 본다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시골이다.



굳이 차이점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일본 시골마을에는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문무왕(신라의 문무왕이 아니다)의 무덤도 이 부근에 있다고 해서 찾아나섰다.



길을 잘못 들었더니 마을로 빠지는 길을 걷게 되었다.



결국 다시 다카마쓰고분이 있는 쪽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진에서 보는 마을의 오른쪽에 아스카 기차역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일본 시골은 연한 회색으로 지붕이 통일되어 있는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아무렇게나 색을 입힌 지붕은 거의 없었다.



문무왕릉을 찾았다. 일본인들 표현으로 하면 몬무덴노 무덤이 되리라.



바로 여기다. 다카마쓰 고분과는 지척간이다.  



일본의 왕릉은 궁내부 소관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천황집안의 무덤이기 때문이리라. 



 

천황을 일본인들은 덴노라고 부른다. 나는 이글 속에서 일왕이라고 불러준다. 천황이라는 용어 속에는 교만의 냄새가 가득 묻어나온다. 개인이나 국가가 누릴 수 있는 자긍심이 아닌 교만의 발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중국인들도 옛날부터 황제를 두고 천자라고 했지 천왕이나 천황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자기 나라 임금을 높여부르는 것은 자기들 자존심의 산물이지만 일본인들 경우에는 너무 지나쳤다. 이원복 교수의 교육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일본편에서는 덴노라고 불러주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결코 없다.



우리는 다시 전망대로 돌아왔다.



이젠 다시 돌아내려가기로 했다.



일본의 농어촌에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폐기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어딜 가도 깨끗하게 느껴진다.



돌아나가려면 다카마쓰 고분 앞을 지나야한다.



나는 일본의 시골 풍경에 눈길이 자주 갔다. 멀리 가쓰라기 산이 보인다. 저 산을 넘어가면 오사카다.



자전거 거치대부근 너른 잔디밭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학생들이 가득했다.



알고보니 중학생들이었다.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체육복 상의에는 아이들 성이 자수글자로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을 뒤로 남겨두고 자전거에 올라탄 우리들은 아스카 기차역을 찾아나섰다.



일본 전통가옥들의 지붕곡선은 우리나라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직선적이다.



마침내 아스카 기차역이 나타났다. 광장 건너편 계단위 작은 건물이 아스카역이다.



역에는 자전거를 세워두는 구역이 있었고 수많은 자전거들이 놓여 있었다.



일본은 철도시스템이 상당히 잘 발달된 나라다. 일본인들은 기차역까지 자전거를 타고와서 기차로 출퇴근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져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도로를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왔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일본도 농어촌 인구가 감소하고 거주민들이 고령화되어가는 추세지만 우리나라보다 덜한 이유는 이런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아스카역은 개방구조로 되어 있었다. 역에는 사람이 뜸했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기차를 자주 그리고 많이 탔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나서부터는 줄곧 기차통학을 했다. 그래서그런지 지금도 버스여행보다는 기차여행을 더 좋아한다.


 

기차역을 훑어본 뒤 마을을 살펴보았다.



기차역광장에는 택시 대기소도 있고 시내버스 정류장도 있다.



기차역 광장 한쪽에는 간식가게도 있고 식당도 있다.


 

우리는 문어과자를 사서 나누어먹었다.



마을버스 크기는 중형이었다. 중년여성 두사람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일본의 평화는 우리나라의 분단을 담보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은 그들이 일으키고 결국 패전했지만 분단이라는 슬픔은 우리가 떠안았다. 물론 분담의 슬픔은 우리 민족 지도자들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패전국 일본이 남일본과 북일본 혹은 서일본과 동일본으로 나누어져야했지만 엉뚱하게도 그 덤터기를 우리가 덮어쓴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런것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건물외관과 내부시설이 깔끔했다.  



기차역 광장 부근에 자그마한 음식점이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였다. 나는 돼지고기 볶음과 밥을 주문했다. 서로들 알아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주문하도록 했다.


 

작은 튀김 한조각과.....



채소를 조금 곁들인 돼지고기 요리.....



단무지 두쪽.....,



맑은 느낌이 드는 된장국 조금, 그리고 밥 한공기로 이루어진 식단이었다. 750엔짜리 식사다. 열배를 하면 우리나라 물가가 된다.



점심 식사도 했으니 이번에는 원숭이를 새긴 원석(猿石)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래 지도를 보기로 하자.





1. 흠명(킨메이)왕릉 : 전방후원릉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알아보기로 한다.

2. 기비히메 여왕릉 : 능 구역 안에 원석이 있다. 

3. 아스카 기차역

4. 아스카 역사공원

5. 다카마쓰 고분

6. 천무왕릉, 지통왕릉

7. 구석 :거북돌  

8. 귤사(다치바나데라) - 성덕(쇼토쿠)태자 탄생지 



지도를 가지고 검색해보니 아스카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오카데라 기차역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지도에서 말하자면 3번 방향으로 향했다는 말이 된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