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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아스카 - 귤사 그리고 거북돌과 다카마쓰 고분

by 깜쌤 2018. 7. 25.


왕생원 건물 안에는 천정화가 있다.



바닥에 누워서 감상해도 좋단다.



그렇게말해도 나는 누워서 감상할 사람이 아니다.


 

왕생원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적당히 보고 나갔다.



성덕태자의 초상화를 그린 사람이 백제의 아좌태자라고 전한다.



태자는 태자와 노는가보다. 절 안을 돌아다녀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귤사의 입구는 두군데였다. 나는 반대쪽 입구까지 가버렸던 것이다.



성덕태자는 일본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다. 옛날 1만엔권에 그의 초상화가 실려있었다고 한다.



일본에 불교를 널리 퍼뜨린데는 그의 공이 지대하다.



그가 고구려에서 건너온 혜자와 백제에서 건너온 혜총에게 불법을 배운 사실은 유명하다.



나중에 그는 혜자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대충 귤사를 둘러본 뒤에 다시 출구로 나갔다.

 


다음 행선지는 구석(龜石 거북돌)이다. 찾아가기는 너무 쉬웠다. 자전거를 세울 수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거북돌이겠다. 귤사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아스카 기차역 방면으로 조금만 더가면 된다.



무인판매대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은 과일과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과일들의 품질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먹을만 했다. 무인판매대에는 정직과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들 일본인들의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무인판매대 바로 옆에 거북돌이 있다.



거북을 나타낸 표현양식이 재미있다. 커다란 바위에 인공미를 살짝 가미하여 거북이 형상을 만들었다.



이런 유적이라면 어디에나 따라붙는 전설같은 것은 생략하기로 하자. 


 

확인되지도 않은 근거없는 허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주위의 농촌 풍경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달라지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꺼내야만 한다. 나는 100엔을 돈통에 넣고 감귤 세개를 샀다. 열매 껍질을 까서 씹어보니 작은 씨가 들어있었다.



중국 호남성 봉황에서 사먹은 것과 맛이 비슷하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렸다. 내리막길이다.



농촌 풍경에서 왜 이리 한국적인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마 산세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라이딩하기에는 그저그만이었다. 아스카에서는 걸어다니면 힘만 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순간이다.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 아스카 역사공원이 나타났다.



역사공원 맞은편 골짜기에는 다카마쓰 고분이 있으므로 반드시 내려서 들어가봐야한다. 아스카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될 장소가운데 하나다.



자전거를 주륜장에 세워두고 전시장을 찾아갔다.



단층 기와집인데 입구에서 안개같은 것이 뿜어져내리고 있었다. 소독용일까 아니면 날씨가 덥다고 특별 서비스를 해주는 것일까? 대놓고 사람을 소독하는 일은 없을터이니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공짜여서 좋았다.



아스카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사진자료와 모형들이 많았다.



아이들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역사공원 도로 건너 맞은편 골짜기에 다카마쓰 고분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주륜장에 세워두었다.



고분을 찾아가는 길에 뱀풀 비슷한 식물을 보았다.



다카마쓰 고분은 작은 언덕너머에 숨어있다.



고분으로 향하는 길에 뻐꾸기 소리를 들었다.


 

골짜기 속에 펼쳐지는 풍경은 완전히 우리나라 산하와 똑같다.



그러니 도래인들이 여기에 터를 잡았는지도 모른다.



다카마쓰 고분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발굴후 다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고송총 벽화기념관이라는 건물이 만들어져 있으므로 반드시 들어가볼 일이다.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누가 봐도 한반도 양식이 뚜렸한 벽화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내부 모습을 잠시라도 보고 싶다면 아래 유투브에 올라온 화면을 잠시 보시기 바란다. 재생후 1분경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일본인이 자기들 시각으로 찍은 것이니 오히려 더 객관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념관 내부에서의 촬영조차 그들은 금지하고 있었다. 그 정도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긴하지만.... 



한눈에 척봐도 고구려 고분벽화와 너무나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사방 벽에 그려진 사신도와 등장인물의 옷차림은 그냥 그대로 똑같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다.



왜인들은 인정하기 싫을 것이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고대 문화의 대부분이 한반도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중국문화를 한반도를 통해 전달받았다고 강변한다. 강변의 차원을 넘어 가야를 두고 임나일본부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하기사 그들의 역사왜곡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우리는 천천히 다카마쓰 고분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나부터 앞장을 섰다.



고분을 돌며 주위 산세와 지형을 살폈보았다.



역사를 역사 그대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왜인들의 심보가 왜 그리 눈꼴사나웠는지 모른다. 홍산문화를 대하는 중국인들이라고 뭐가 다르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