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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일본 자전거 여행-간사이(完)

아스카 - 귤사

by 깜쌤 2018. 7. 13.


아스카에서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인 인물 한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쇼토쿠태자를 꼽고 싶다. 한자로 쓰고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성덕(聖德)태자가 된다.



그가 활약햤던 시기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략 삼국시대 중반에 해당한다.



서기 574년에 태어나서 622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백제의 성왕, 무왕시대의 사람이라고보면 된다. 백제가 멸망한 것이 서기 660년의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아스카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우리 역사와 비교하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참 쉽다.



당시의 일본은 오늘 우리들이 세밀하게 살피고 있는 아스카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던 야마토 정권시대였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이 부근은 제법 너른 벌판이다. 이 벌판이 북쪽으로 광활하게 뻗어있는데 북쪽에 자리잡은 대표적인 도시가 나라교토다. 



덴리우치같은 자잘한 도시들도 벌판 여기저기에 제법 많이 자리잡고 있어서 어찌보면 벌판이 집들로 가득차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1959년, 벌판에 들어찬 논에 물을 대는 용수로 공사를 하다가 유물을 발견하게 되어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했단다. 40여년에 걸친 지루한 발굴끝에 아스카나무지붕궁터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한자로는 飛鳥板蓋宮跡(비조판개궁적)이라고 써놓았다.



한자로 표기된 것을 근거로 판단해본다면 당시 왜국은 궁궐이라고해도 나무 판자로 지붕을 덮는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기와지붕을 가진 건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스카사였다고하는데 그 절은 서기 596년에 완공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아스카 나무지붕 궁궐터를 훑어본 뒤 우리들은 다음 유적지로 옮겨갔다. 벌판 한모퉁이에서 제법 아름다운 건물을 발견했다. 휴게공간인것 같다.  



벌판 여기저기에는 마을이 자리잡았는데 농업용 수로가 지나고 있었다. 봇도랑에 흐르는 물의 양이 많았다.



골목마다 아스팔트로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지형을 대강 파악한 뒤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우연히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귤사! 귤사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다치바나데라다. 귤사가 바로 저기 산밑에 있는 바로 저 절이라면 이제 아스카 유적지의 얼개가 거의 다 짜맞추어진다. 



귤사, 아스카 나무지붕 궁궐터, 아스카 절등의 위치를 가지고 연결해보면 이 부근 모두가 아스카 시대의 핵심지대였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돌비석에는 귤사가 성덕태자의 탄생지였음을 밝히고 있다.



귤사 앞으로 지나는 도로 건너편에는 천원사(川原寺 가와라데라)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있었단다.



이제 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절터 바로 앞 북쪽에 또 다른 절이 나타나는데 홍복사(弘福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천원사 절터에는 풀만 가득했다.



마을 부근에 잘 가꾼 화단이 보인다.



절터에 들어선 또 다른 절이라....



절간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앞마당에 깔린 잔자갈 밟는 소리를 들었는지 여승 한분이 걸어나왔다.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나누고 돌아나왔다.



절문 앞에서 보면 건너면 작은 산봉우리 밑에 절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귤사다.


 

온 사방에 절이요 신사다.



우리는 도로를 건너 귤사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입구까지 갔다.



절로 이어지는 도로 양쪽은 논이다.


 

자전거를 세워놓기 위해서 자전거 주륜장 위치부터 확인해야했다. 우리는 주차장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일본은 자전거를 세울 공간을 따로 마련해두고 주륜장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입구부근에 거치대가 있었다.



귤사는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어른들은 350엔이다.



성덕태자가 태어난 장소라고하기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불심 좋은 분들은 여기에서 손발을 씻고 들어간다. 불심과는 관계없는 나도 날이 조금 더웠기에 손을 씻었다.



일본 절은 어딘가 우리나라 절과는 분위기가 살짝 다르다.



원래 이 터에는 상궁(上宮)이라는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청동으로 만든것처럼 보이는 저 말은 태자가 타고 다녔던 말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한다.



상궁에서 일본인들이 존경해마지않는 쇼토쿠태자(=성덕태자)가 태어났다고 전한다. 나중에 성덕태자의 거처를 이카루가의 법륭사(호류지)로 옮기면서 상궁 터에 새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절이 귤사다.



원래 절은 승려들끼리의 싸움으로 타버리고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중엽에 새로 건축한 것들이라고 한다. 이제는 이 절의 정식 이름이 상궁원 보리사다. 쇼토쿠태자(=성덕태자)를 시조로 하는 것이 성덕종인데 지금 이 절은 천태종 소속이라고 알려져 있다. 성덕종의 대본산이 법륭사다.



이 절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유적 가운데 하나가 이면석(二面石)이다.



바윗덩어리 하나에 두 얼굴을 새겨두었다. 한쪽 얼굴은 선해보인다.



반대쪽 얼굴은 제법 흉측하다.



이면석은 선과 악 양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귤사의 중심은 태자를 모신 태자전이다. 일본인들에게 태자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단다. 심지어는 부처의 현신으로 여겨진다니 말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스카 곳곳에는 재미있는 모습을 한 돌들이 제법 숨어있었다.



그런 사실을 가지고 판단해보면 누가 의도적으로 형상화하여 배치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왕생원(往生院)으로 다가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