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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 다니기 2 -폐교에서

by 깜쌤 2018. 5. 17.


고개를 넘으면 행정구역상으로는 신광에서 청하로 바뀐다. 


 

명안리가 나타났다. 이 마을에도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내가 담임했던 반에 참 불쌍한 아이가 살았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가 같이 살았는데 형편이 많이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그 아이도 사십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라면과 국수로 끼니를 떼웠던 아이였는데.....



나는 안심저수지 부근에서 잠시 쉬어가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렸다.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이 부근 마을이다.



저수지 밑에 내가 근무했던 학교가 있었기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와본 것이다.



명안리, 유계리, 서정리....  참 익숙한 이름들이다.



안심저수지에는 물이 가득했다.



이른 봄에는 저수지에서 빙어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빙어를 잡아서 그냥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었다. 디스토마 감염여부는 잘 모르겠다. 멀리 유계저수지 둑이 보인다. 그땐 저수지가 없었다.



저수지 밑에 농장이 있었다. 지금은 뭘 기르는지 모른다.



두산주류라는 회사에서 포도주용 포도와 거봉포도를 길렀던 터도 이제는 논밭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경상북도 수목원과 상옥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방향을 틀었다.



삼거리 부근에 학교가 숨어있다. 



참 오랫만에 와보는 학교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른 플라타너스 나무가 아직도 버티고서서 키재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이 학교도 이제는 폐교가 되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가운데 폐교가 된 곳이 몇군데 된다.



낮에는 학교장 사택에 주로 들어있다가 퇴근시간만 되면 슬슬 나와 본관 현관에서 일을 벌이던 교장이 생각났다. 


 

그게 무슨 심보였는지 그땐 짐작만 했었지만 이젠 확실히 알게 되었다.



퇴근하려던 직원들은 학교장에게 붙들려서 선뜻 나가지도 못하고 그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아직도 일부 개인 기업체에는 그런 상사들이 남아있어서 갑질을 하는 모양이다. 


 

학교장은 인사권과 재정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교사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비겁하다면 비겁한 처신이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러다가 전교조가 등장하고 마침내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자업자득이라고나 할까?



나는 본관건물로 가보았다.



마을에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이니 학교가 유지될 리가 없다.



폐교 후 한때 한의원으로 운영되었던 모양이다.


 

그때 내반 아이들은 모두 8명이었다.



남자아이 네명에 여자아이 넷이었다.



사는 마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친구집에 놀러가고 싶으면 십리 정도는 기본으로 걸어가야만했던 불쌍한 아이들이다.



그 여덟명을 데리고 이년 연속 가르쳤다.


 

크리스찬이라고 해서 나를 이유없이 미워했던 교장들이 떠오른다.



2년을 근무하는 동안 세명의 교장을 모셨더랬다.



소규모학교에는 행정실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내 평생에 처음으로 학교 회계업무를 보았는데 규정대로 출장비를 지급했다고 해서 교실에까지 쳐들어와 씩씩대던 교장도 있었다.



출장비를 왜 적게 지급하느냐 하는 뜻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별별 교장들을 다 만나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시절의 이야기다.



이십대 중후반에 교장이 되어 교장경력만 삽십여년을 넘긴 그런 교장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교사를 하다가 광복이 되어 일본인 교사들이 물러가고나자 얼떨결에 교장이 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횡포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었으니 이야기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요즘 교사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고, 일을 잘 한다고 누가 알아주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런 교사들은 오히려 바보취급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약간은 그런 면이 남아있을 것이다.



학교를 한바퀴 둘러본 뒤 나는 다시 본관건물의 중앙 현관으로 가보았다.



강남에서 온 제비 부부 한쌍이 진흙을 물어와서 집을 짓고 있었다. 녀석들은 한쪽 벽면에 붙어앉아 나를 살피고 있었다. 바로 위 사진 오른쪽 벽에 붙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제비 두마리다. 그 강남을 배낭 매고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중국 남부,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제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싫어 조용히 돌아서서 학교운동장으로 걸어나왔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관리인을 만날 수 없었기에 조심해서 둘러보았다. 문이 닫혀있는 곳은 아예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모든게 허무하고 허전했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저 한바탕의 헛꿈만 같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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