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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의 봄 8

by 깜쌤 2018. 5. 14.


국사시간에 삼은이라는 인물을 배운 기억이 난다.



포은 정몽주, 야은 , 목은 .....



이 세분을 두고 고려말 3은이라고 불렀단다.



나는 지금 목은 이색 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이다.



기념관은 괴시마을 제일 뒷편 산골짜기 오목한 산속에 자리잡았다.



제법 단정하게 단장을 해두어서 한번쯤 들러볼만 하다.



목은은 고려말의 학자였다. 물론 벼슬길에도 나아갔다.



젊었던 시절에는 원나라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원나라에서 치른 과거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대단한 수재였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과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단다.



주원장의 흔적을 찾아 중국 강소성과 강서성을 다녀온 것도 벌써 몇해가 지났다. 목은 선생은 영덕 출신이다. 본관은 한산 이씨지만.....



뒤편에 보이는 깨끗한 기와집이 목은 기념관이고 앞쪽은 한옥체험관으로 쓰는 것 같다.



이런 곳에서 하루쯤 묵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문에 의하여 판단하건대 이 집 이름이 만서헌인가보다. 1893년에 건축했다니 집을 지은지가 10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념관앞에는 정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쉬어가기도 했다.



예초기를 가진 분이 제초작업을 하고 있었다.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까이 가지 않았다. 나는 건물 뒤로 돌아가보았다.



만서헌 뒷편으로는 라일락이 피었다.



조금 더 오르면 벤치와 비석이 등장한다.



작은 비석에는 관어대에 관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큰 비석에는 관어대소부라는 글의 원문이 새겨져있다. 부(), 사()같은 용어는 우리 일반인들에게 어려운 용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해두었다. 내용이 길기에 조금 편집했음을 밝혀둔다.





일반적으로는 사(辭)와 부(賦)는 나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사와 부를 사부라고 통합하여 불렀다. 김석주의 『해동사부(海東辭賦)』에서도 사와 부의 구별을 하지 않고 사부라 하였고, 작품도 사와 부를 함께 구별 없이 수록하였다. 간혹 사와 부를 나누어 따로 사용할 경우도 별 구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와 부를 구별한 것은 『한서(漢書)』 양웅전(揚雄傳)에서 보인다. “부에는 「이소」보다 깊은 게 없고, 사에는 「상여(相如)」보다 아름다운 게 없다.”라고 한 것이다. 부는 한대에 이르러 특정한 체제를 형성하였다. 부는 『초사』의 한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그렇지만 비교적 산문의 수법을 많이 운용하여 사와는 다르게 발달하였다.


부는 웅대하거나 독특한 사물들을 아름답고 멋지게 표현하려고 애쓴 서사적 작품이고 사는 우수와 격정 같은 것을 남방가요의 아름다운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있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현황

사 작품 가운데 이인로(李仁老)의 「화귀거래사(和歸去來辭)」가 최초의 작품으로 보인다. 고려 후기에 이색(李穡)·이숭인(李崇仁)·정몽주(鄭夢周)·정도전(鄭道傳) 등으로 계승되었다. 이들 이후에는 그리 왕성한 창작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석주(金錫胄)의 『해동사부』에 선록된 58편 가운데 사는 6편 밖에 실리지 않았다. 『동문선』에는 사와 부를 나누어 독립시켜 작품을 수록하였다. 권1의 첫머리에 「화귀거래사」·「산중사(山中辭)」·「민지사(閔志辭)」 등 10편을 싣고, 이어서 부를 싣고 있다.

『문선(文選)』에서도 사를 독립해서 하나의 문체로 세워 부·시 등과 함께 나란히 벌여 놓고, 한무제의 「추풍사(秋風辭)」,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사체의 대표적 작품이라고 하였다.




관어대라 함은 물고기를 살펴보던 곳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으니 바닷가나 강가에 있어야 할 것이다.



대진항이 있는 바닷가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상대산인데 그 정상에는 방송용 송신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산 정상에 있던 방송용 탑을 들어내고 몇해전 거기에 관어대를 복원하여 세웠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거기서 내려다보는 동해안 경치가 일품이었다. 원문을 지은이가 목은 이색선생이니 그분의 글을 새겨둔 비석이 기념관 부근에 서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기념관 바깥에서 선생의 모습으로 다듬어 세워둔 석상을 보고 곧 돌아나왔다.



직행버스 차시간이 급했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까지 걸어가서 표를 구해야한다.



괴시마을 입구까지 걸어내려왔더니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줄지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괴시마을 입구에 모여들고 있었다.



중학교 학생들과 인솔교사들을 보고 있으니 옛생각이 났다.


 

나는 터미널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영해 만세시장 앞을 지났다. 유서깊은 곳이지만 들어가볼 여유가 없었다.



터미널에 와서 표를 샀다.



시간계산을 잘못해서 한 30분 이상 기다리게 생겼다. 일단 포항까지 내려가는 표만 구했다. 제법 뚱뚱한 아가씨가 터미널 안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정리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다. 마음이 아팠다.



버스는 영덕을 거쳐 강구, 장사같은 곳마다 멈추어가며 남행했다.



무정차로 부산이나 대구로 가는 버스도 있지만 그런 차를 타면 경주에서 내리질 못한다.



포항에서 새로 표를 사서 버스를 갈아탔다. 수요일 저녁 예배에는 참석못할 가능성이 높아만 갔다.



안강부근 형산강물이 낙조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경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7시 반이 넘었다. 다음번에 간다면 자전거를 가지고 갈 생각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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