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백석마을을 지나간다. 백석은 바닷가 마을이다. 일제강점기때 활동했던 시인 백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마을이다. 요즘은 작은 포구라고 할지라도 방파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활용도와 안전도면에서 예전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영해시장 부근의 로터리에서 내렸다. 만세기념탑이 나를 맞아주었다.
영해는 경북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모인 민중들이 백여년전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만세를 불렀던 곳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919년 3월 18일의 일이다. 약 3,000여명의 사람들이 영해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시위에 참여했던 분들은 한때 경찰지서를 점령하기도 했다는데 왜놈 헌병들이 동원된 진압과정에서만 8명이 숨지고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사신 분들이 185명이나 되었다고 전한다.
영해는 그런 곳이다. 구한말 을사조약 직후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장군의 생가도 영해부근에 있다.
신돌석 장군의 생가는 다음 기회에 둘러볼 생각이다.
영해까지 온 김에 영해향교부터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내가 한자를 바로 읽었다면 이 작은 정자 이름은 행단정이 된다. 행단이라.... 그 이야기를 하려면 너무 길어진다.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를 찾아갔을 때 쓴 글이 아래 글 상자 주소속에 들어있으니 참고로 하기 바란다.
영해향교 부근에 예주문화예술회관이라는 멋진 시설이 문을 열였다.
요즘은 이런 시골에서조차 멋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 공간을 전통생활 정신문화 체험지구라고 이름붙인 모양이다. 향교와 예주문화예술회관이 자리잡은 터를 뭉뚱그려서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고려초기에 오늘날의 영해를 예주라는 이름으로 부른 사실이 있다.
나는 향교를 향해 걸었다.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한쪽에 곱게 치워져있는 어린이용 신발을 발견했다.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관리인 식구의 것일까? 쬐그만 신발을 보자 마음이 울컥했다.
나이가 들면서 별 시시껄렁한 것가지고도 울컥해지는 못된(?) 버릇이 들었다.
명륜당이 눈앞에 나타났다.
연이어 기숙사 정도로 비견할 수 있는 동재가 나타난다.
동재가 있으면 서재도 있어야한다.
명륜당이라고 이름붙여진 대청(큰마루)이 강학공간이다.
대청 옆에 붙어있는 작은 방들은 보통 스승이 머무는 사적인 공간으로 썼다.
명륜당 맞은편 건물이다.
명륜당 마루에 서서 보았을때 일반적으로 오른쪽 건물은 동재가 되고 왼쪽 건물은 서재가 된다.
영해향교는 검박해보였다.
단순하되 검소함이 가득찼다.
향교담장 너머로 예주예술문화회관 건물이 보인다.
관리인이 사는 건물이 붙어있었다.
향교에서 내려다보면 영해읍이 발밑에 보인다.
영해향교의 위치 선정은 탁월한듯 하다.
이젠 나갈 차례다.
한쪽 문만 살며시 열어두었다.
다시 한번 더 뒤를 돌아다보고.....
향교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음 목적지는 영해에 있는 전통마을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현재의 내 위치를 재확인해두었다.
그런 다음 괴시마을 위치도 다시 확인해보았다.
전통마을은 향교에서 그리 멀지는 않은듯 하다.
영해중고등학교를 찾으면 다된것이나 마찬가지다. 괴시전통마을은 그 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비워진 집들이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영해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대진항에 닿는다.
영해의 젊은이들을 길러낸 요람이 영해중고등학교다.
건물과 조경이 깔끔하고 단정했다.
대학 캠퍼스를 보는듯 하다.
학교 외관은 탐이 날 정도였다.
바닷가에 솟은 봉우리가 상대산이다.
예전에는 그 부근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다.
영해동부초등학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해는 우리가 잘 아는 목은 이색선생과 관련있는 곳이다.
그래서일까? 선생이 남긴 글이 돌에 새겨져있었다.
괴시마을에 다왔다.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었다.
나는 안내판 앞으로 다가갔다.
전통가옥들이 산밑에 나란히 줄지어 서있는 이곳이 괴시마을이다.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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