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밀려온 모래에 의해 테트라포트가 잠겨들고 있었다.
자연의 위력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자연에 의한 변화는 느린 것 같아도 효과 하나는 확실하다. 늙어가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나는 다시 후포읍내로 들어갔다.
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중간에 만난 김밥가게에서 김밥 두줄을 샀다.
구두쇠 기질이 농후는 나는 모처럼 밖에 나와서도 맛있는 것을 사먹을 줄 모른다.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게 내 약점이고 장점이기도 하다.
터미널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시골로 다니는 시내버스들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버릇이 있다.
벤치에 앉아 10여분을 기다렸는데도 시내버스가 오지 않았다. 매표소에 확인을 해보았더니 터미널로 들어오지 않고 10여분 전에 벌써 지나갔단다. 아니,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있는가 싶었다.
그럴것 같아서 10여분 전에 미리 와서 대기했는데도 이렇다니 어이가 없어서 할말을 잃었다.
영덕군 교통과에 항의하면 된단다. 항의도 항의지만 오늘 일정이 있으니 일정망가지는게 더 문제다. 나는 금곡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어찌보면 잘됐다. 수십년전에 아이들과 걸어서 체험학습을 왔던 길을 이번에는 혼자 걸어가며 그때 그 느낌을 살려보면 되니까 말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뭐든지 편한 법이다.
어디선가 게살 냄새가 확 풍겨왔다. 잘 살펴보니 개울가 텃밭에 게껍질들이 가득했다.
나는 해변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다시 백사장으로 내려갔다. 시골 아이들 사십여명을 데리고 소풍을 왔던 장소가 이 부근 어디같다.
그때도 해변 모래밭이 이리도 고왔던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늘막을 덮은 천이 갈갈이 찢겨져가고 있었다.
너무 낡아서 그럴 것이다.
인간들은 사라져가도 자연은 영원할 것이다. 한번 온 세상에 나도 선한 발자취 정도는 남겨야할텐데.....
덕장 시설인가보다. 오징어를 말렸던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래밭에서 도로로 다시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남쪽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야한다.
햇살이 살짝 따갑게 느껴졌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돌이켜보니 나도 제법 많이 살았다.
그런데도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욕심이리라.
해변시설이 노천 음악당처럼 층계를 이루고 있었다.
멋지다. 우리나라 해변시설이 이렇게 아름다우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이런 곳에서는 맨발로 걸어도 되겠다.
해변가에 멋진 리조트들이 많이 생겼다.
여름철에는 수영장에 물이 찰랑거릴 것이다.
이런 곳에서 원투대를 던지면 낚시바늘에 가자미가 걸려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꿈은 헛것이 되리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안다.
원래 낚시라는 것은 잘될 것 같아도 안되도록 되어 있는 요물스런 취미다.
'날 잡아잡수'하고 멍청하게 걸려들 물고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명태 몇마리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꼬들꼬들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시골집들이 등장했다.
그 앞에는 갈매기들.....
녀석들은 사람을 보고도 겁을 내지 않았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하게 되어 있다.
해변으로 멋진 자전거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라이딩을 즐기면 환상적인데.....
벌써 금음리까지 걸어왔다.
바닷가에는 작은 어항도 보인다.
꽤 날씬한 아가씨 한명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났다.
해변마을로 시집온 동남아여성인줄 알았다.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부근에 멋진 리조트가 있었던거다.
그녀는 잠시 바람을 쐬러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좀 쉬어가자싶었다.
해변이 바로 보이는 벤치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후포에서 사온 김밥을 먹고갈 생각이었다. 마른 김밥 한알 입안으로 우겨넣었더니 입부근이 아파오면서 가벼운 통증을 느꼈다. 그래도 맛있다.
살짝 따가운 햇살과 비단결같은 바람이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바람결이 한결 보드라웠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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