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는 깔끔한 숙박시설들이 많았다.
오늘따라 바닷물조차 맑은듯 하다. 물속이 훤하게 비쳐졌다.
7번 국도를 직선화하면서 남은 옛날 도로는 자전거도로로 활용하는듯 하다.
갯바위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한때는 바다낚시를 엄청 좋아했더랬다.
물론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 흐지부지 끝나긴 했지만.....
해안경비초소 시설이 그대로 남았다. 어느 누구의 청춘을 바친 터전인지 모르겠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이런 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달려야 제맛인데 자전거를 두고 그냥 몸만 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불심좋은 아주머니들이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깔끔한 리조트를 찾아가서 식사공간을 잠시 빌려쓰면 더 좋으련만.....
이제 영덕군 최북단까지 이르렀다.
저 모서리를 돌아서면 영덕군 금곡면이다.
바닷가 마을에 가보면 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를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다.
행정구역상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어서 지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안다.
영덕과 울진 사이에도 지경마을이 있다.
주민 한분이 미역을 건져내고 있었다.
이제 지경마을까지 다왔다.
해변으로 모래가 밀려와서 작은 해수욕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화장실 관리상태가 나그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나는 모래 둔덕으로 내려섰다. 모래 언덕이 제법 높이 솟아올랐다.
자연의 위력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이 마을은 울진과 영덕이 마주 붙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금음리에 사는 아이들은 후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변 바닷가에는 요새같은 집 한채가 남아있었다.
오늘따라 바닷물이 참 맑았다. 망상어 낚시하던 날이 그리워졌다.
망상어는 바다의 붕어라고 불릴 정도로 예쁜 고기다. 어떤 이들은 바다납자루 정도로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바닷가에 면한 이집은 주인이 떠나고 없는 것 같다.
클레멘타인 노래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가 가르쳤던 아이가 살았던 집이 아니었을까?
그때 그 아이들 모두를 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바닷가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가진 전통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린 그걸 미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런 신당이 바닷가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나가는 어부들에게는 소중한 안식처일 것이다.
내가 가르쳤던 여학생의 아버지도 어느날 게잡으러 바다로 나간 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며칠을 울어 눈까지 새빨개졌던 여자아이의 동그란 눈망울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에게 영덕 금곡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이 동네에 살았던 아이들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얼굴들이 몇몇 있다.
수십년 세월이 흘렀으니 이젠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내자신이 부족하고 못난 선생이었으니 그들 인생에 무슨 선한 기억을 남겼을까 싶어 부끄러움에 종종걸음을 치며 마을을 빠져나왔다.
지나날을 되돌아보면 교사로서의 긍지보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앞선다.
좀 더 성의있게 잘 가르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나은 인격을 바탕으로 해서 더 고상하고 품위있는 교육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젊었던 날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 알고 깨달았던 것은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슴 한구석에 숨어있던 슬픔이 슬며시 고개를 치밀고 있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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