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읍내도 많이 깨끗해지고 건물들도 깔끔해졌다.
나는 후포로 올라가는 버스표를 샀다.
후포는 울진군의 최남단이다.
상하행 버스는 자주 있는 편이다.
복사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듯 하다.
영해외곽에는 현대아산병원이 있어서 지역민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버스가 영해정류장에 들렀을때 잠시 내려서 시내버스시간을 확인해두었다. 금곡, 후포행 버스운행 시간을 알아두어야 오늘 내가 움직이기에 편하다.
영해터미널에서 잠시 숨을 고른뒤 버스는 다시 북상하기 시작했다.
병곡을 지나고 금곡을 지난다.
후포에 도착했다. 금곡을 거쳐 영해로 내려가는 시내버스시간도 미리 확인해두었다.
11시에 영해로 가는 시내버스가 있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시간 남짓하다.
예전에는 후포와 삼율이 따로 있었지만 이젠 거의 한동네로 이어진듯 하다.
후포는 포구였고 삼율은 내륙교통의 중심지였지만 이젠 후포삼율 혹은 후포로 부르는듯 했다.
작은 동네여도 있을 건 다있다.
후포에서는 백암온천도 쉽게 갈 수 있고 울릉도로 가는 배도 쉽게 탈 수 있다.
건물들도 깔끔한 것이 많았다.
오늘 내가 후포에 온 것은 아이들과 함께 갔던 소풍장소를 확인해보기 위해서다.
나는 해변을 향해 걸었다.
후포와 내가 인연을 맺은 것은 따로 없고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예전에는 소풍이라고 불렀다)을 갔던 그 한가지 사실 뿐이다.
터미널에서 10여분 정도 걸어나가자 해변이 나타났다.
사진속의 펜션형 민박집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만나본 것 같다.
해변에는 작은 솔밭이 마련되어 있고 쉼터도 가꾸어져 있었다.
테트라포트가 설치된 해변에는 해안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후포항구에는 정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장모와 의사사위가 등장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백년손님>의 배경이 되는 곳이 후포다.
후포로 들어오는 대게의 양도 상당하다.
대게라고하면 영덕만 생각하는듯한데 울진사람들은 울진대게라고 부른다.
후포 바로밑이 영덕 금곡인데 거기 사람들은 후포에 와서 게잡이 배를 탔다.
영덕 바닷가 학교에 발령을 받고 나서 학부모님들께 처음 대접받은 것이 생선회와 대게였다.
나는 해변 쉼터로 가보았다.
새참을 즐기고 있던 아주머니들이 믹스커피를 권해왔다.
쉼터 바닥에 그려진 것은 대게였다. 게다리가 대나무마디처럼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대게다. 큰 大자를 의미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데 그게 아니다.
달달한 커피 한잔에 인심이 묻어난다.
나는 커피 한잔을 들고 백사장으로 나아갔다.
삼십여년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왔던게 여기였던가?
그 아이들도 이젠 사십대 중반이 되었다.
졸업시켜 보낸후 거의 못만나 보았으니 이젠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못나고 부족한 선생이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나본다면 부끄러움만 가득할 것 같다.
파도가 유난히 잔잔한 날이었다.
해변 모래가 유난히 곱다.
열대바다에 야자수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소나무 숲이 있다.
바닷가에 자라는 소나무들은 주로 해송이다. 우리가 육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는 육송이라고 부른다. 해송과 육송은 잎이 많이 다르다. 눈에 익은 사람들은 단번에 쉽게 구별해낼 수 있다.
해조류가 해변으로 떠밀려나와있었다.
저기 어디쯤 그때 그 아이들의 발자국들이 찍혀있을 것이다.
이젠 내가 은퇴를 했다는 사실을 그 아이들도 짐작할 것이다.
모두들 순탄한 인생을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개울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큰 바다로 나갔으니 잘 되어야한다. 거친 파도와 풍랑을 이겨내고 굳건하게 살아나가야한다.
잠시 가르쳤던 나같은 선생이야 지극히 못났 못난이었지만 그후로는 모두들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멋진 인물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민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에는 자잘한 고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문득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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