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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베트남-월남의 달밤 2(完)

카이딘황제릉

by 깜쌤 2018. 5. 1.


후에(=훼) 황성을 나왔다. 다음 목표는 후에 교외에 자리잡은 카이딘 황릉이다. 


 

카이딘 황릉은 후에시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정도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계단을 걸어올랐다. 중국식 패방을 지나 들어가면 또다른 계단이 나온다.



계단 양쪽으로는 신성한 동물들이 아래를 보고 누워있었다.


 

재질은 시멘트라고 한다. 열대의 습기때문일까? 시멘트 색깔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왕릉과는 스타일 면에서 확실히 구별된다. 



이 황릉은 아시아 스타일과 유럽 양식이 적절히 조화된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얼핏봐도 그런 느낌이 든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밑으로는 문신과 무신상이 도열해서 황제릉을 호위하는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바닥에는 타일이 깔려있었다. 정교하다는 느낌을 준다. 자잘한 타일과 높이 치솟아오른 탑을 보면 서양식 냄새가 나기도 한다.



카이딘황제의 공적비가 나타났다.



아들 바오다이가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마지막 황제가 끝에서 두번째가 되는 허수아비 황제에게 드린 공적을 새긴 비문이니 그 내용이 오죽할까?



카이딘의 아들 바오다이는 마지막 황제다.



이건 어느 누가 봐도 문신의 모습이다.



이쪽은 무신들이겠다.



계단에 배를 대고 누워있는 이 녀석은 적어도 용은 아니다.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위로 오르는 계단을 다시 걸어올랐다.



마침내 웅장한 건물이 나타나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듯한 실내가 보인다.



계성전(啓成殿)! 황제의 시신은 현판및 저 화려한 곽 속에 들어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이딘을 한자로 쓰면 계정(啓定)이 된다. 그는 계정제로 불렸던 것이다. 계성전이라는 계정제를 모신 전(殿)이라는 말이겠지. 황제의 얼굴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남아있었다.



계정제 카이딘은 1885년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1916년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황제의 자리에는 10년 정도 머물렀다가 1925년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친프랑스적인 정치를 편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말은 프랑스에 의해 실권을 상실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제국주의 정책을 펴고 있던 프랑스에게 그가 어찌 감히 저항할 수 있었으랴?



무덤 한쪽 공간 전시실에는 프랑스에서 받은 여러가지 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순종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무능함으로 뭉쳐져 있던 약소국 지도자의 운명은 역사적으로 거의 대동소이하다.



카이딘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부터 자기 무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던 황제의 무덤을 보고나니 씁쓸함이 먼저 와닿았다.



월남망국사라는 책을 미리 읽어둘 걸 그랬다. 



월남 망국사는 청나라 말기때 양계초가 쓴 책이다.



카이딘 황제의 이름은 완복창( 阮福昶 )이었다. 을 베트남식으로 읽으면 응우엔(혹은 응우옌)이 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황제의 능을 살펴보느라고 여념이 없는듯 했다.



오후 4시 반경이 되어 차에 올랐고 우리를 태운 밴은 다낭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랑꼬마을도 그냥 지나쳐야했고 하이번 패스도 무시하고 달려야했다.



거의 두시간이나 걸려 다낭 시내로 돌아왔다. 시내로 들어오니 6시 20분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야간 열차를 타고 나짱으로 이동해야한다.



기사는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요금 110만동과 팁 10달러를 지불했다.



자주가던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후 일행은  마사지샵 에 가서 마사지를 즐겼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일행들이 마치고 나올때까지 대기실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여행안내서를 읽어두었다.



마사지샵에 내가 사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왜 그리 있는 척하고 잘난 척하는지 모르겠다. 우습다. 좀 더 겸손해지면 안될까? 떠들때도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서 이야기해주면 안될까? 내가 사는 도시는 좁은 바닥이니 한다리 건너서 알아보면 다 알아지는 사이가 된다.



택시를 타고 다낭 기차역으로 갔다. 10시 30분이 되어 기차가 도착하자 대합실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지새워야 할 곳은 침대칸 6호실이다.



6인실 침대칸이다. 우리 일행 다섯에 베트남 현지인 한명이 낀 셈이다. 



나는 아래층을 쓰게 되었다.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하자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침대보와 이불이 왜 그리 꾀죄죄하던지 모른다. 보와 요는 싼티가 넘치는데다가 모양조차 후줄근하기만 하니 내몸조차 늘어지는 것 같았다. 덮고 누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1층 탁자에는 싸구려 플라스틱 장미 한송이가 스티로폼에 꽂혀있었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기차는 남녘을 향해 마구 달려내려갔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