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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증인 4

by 깜쌤 2018. 3. 14.


그 일이 있었던 것도 거의 20여년 전 일인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일 말입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텔레비전에 칭찬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로 소개된다는 것은 참 드문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꿈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졌던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퇴근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 경주역 광장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키 큰 백인 청년을 보고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느냐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경주 남산에 가기 위해서 포항에서 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배낭여행을 즐겨 다니는 사람인지라 그의 처지를 듣고보니 모처럼의 토요일 오후에 갖는 휴식시간이지만 반드시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토요일에는 오후 1시까지만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는 가게에다가 가방을 맡겨두고 그와 함께 남산을 가서 이리저리 안내를 해주고 다녀왔는데 헤어지고난 뒤 나중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포스텍(=포항공대) 대학원에 유학을 온 연구생이었는데 자기 가족이 얼마 뒤에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휴가를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고 부모님들과 식구들이 자기가 공부하는 포항과 경주 인근에 머무르면서 관광을 해야할 처지라길래 제가 아는 시내의 어떤 여관주인과 교섭해서 싼값에 한 열흘 정도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퇴근후에는 짬을 내어 찾아가서 한번씩은 안내도 해드렸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나 자신 배낭여행자로서 세계 여러나라를 떠돌아다닌 경험으로 느낀 여행자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그냥 도와주고 신경을 써드린 것 뿐이었습니다. 그가 한국에서의 공부를 다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서울 인사동에 들렀다가 KBS촬영팀과 만났던 모양인데 한국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일로는 경주에서 아주 친절한 한국인을 만나 도움을 받은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저를 추천했던 모양입니다. 


그가 만났던 촬영팀이 공교롭게도 KBS 2 텔레비전의 <좋은 세상 만들기> 팀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베스트 친절시민>으로 선정되어 기습촬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뽀식이로 잘 알려진 이용식씨와 그와 함께한 촬영팀이 경주까지 내려와서 비밀리에 따라다니며 저와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의 활동 모습을 촬영하고 나중에는 교실에까지 쳐들어왔던(?) 것이죠. 



촬영후 일이주일 뒤에 전국에 방송이 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시청을 하시고는 전화를 걸어주셨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그날 밤 우리집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행복했던 것은 내자신이 조금 유명해진 것보다 제가 가르쳤던 우리 아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거리를 하나 만들어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선생으로서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월이 흐른 뒤 그때 가르친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전근간 저를 찾아서 만나러 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을 해서 무리를 지어 교회로 저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학교 선생을 했기에 크게 유명해질 일도 없었고 매스컴을 탈 일도 전혀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큰 일을 할 처지가 못되었다는 것이죠. 제 처지와 신분을 잘 알기에 나같은 인간을 찾아오셔서 여러가지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일이 전혀 없었기에 그걸 슬퍼해서 하나님께 송구스럽다는 기도를 참 많이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저를 높여주셨습니다. 나중 일입니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높혀드리면 그분이 우리를 높여주신다는 성경말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참으로 세밀하게 인간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정성을 기억해두셨다가 하나하나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제가 아이들을 잘 다루고 수업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기시작하자 참으로 여러군데서 저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연수원에 초청받아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다른 학교에 불려가서 선생님들을 상대로 강의한 것은 부지기수였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어떤 방송국 촬영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송국 촬영팀은 제가 인솔하고 있던 아이들의 너무나 말을 잘 듣고 정숙하게 행동을 잘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아이들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8개반이나 되는 아이들이 제가 하는 손 신호 하나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조용하게 견학하는 모습을 보고 평생 처음보는 모습이라며 촬영허락을 얻어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후에도 몇번이나 국회의사당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국회사무처 직원으로부터도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지도교사의 말을 엄청 잘 듣는데다가 예의와 매너를 갖춘 초등학교 수학여행단 아이들은 처음본다는 인사를 수없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다루는 그런 능력은 제가 터득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다는게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방 방송국에서도 어떻게 소문을 듣고 교육현장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는 제의가 더러더러 오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정중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한두번 정도 밝힌바 있습니다만 모범 공무원 으로 추천하겠다는 제의나 대통령표창이나 국무총리표창 대상자로 추천하겠다는 제의 같은 것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제 사정을 조금 아시는 많은 분들이 그런 것조차 모두 거절하는 제모습을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지금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살면 출세도 못하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교사에게는 세가지 정도의 계급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대로 교사와 교감, 그리고 교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교사나 교감을 하다가 장학사를 할 수도 있고  교장으로서 장학관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역교육지원청의 책임자인 교육장은 학교장과 동급입니다.


교육감은 선출직이니 이제는 별도로 생각해야합니다만 그런 직위와 출세에 목을 매기 시작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더군요. 제 동료와 동기들 가운데 교육장까지 지낸 분들도 제법 있었습니다만 그걸 보고 부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평생을 두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보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결코 이루지 못할 목표를 향해 달음질한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이면서 무엇인가 깨달을만한 나이가 되었을땐 은퇴해야할 시기가 눈앞에 다가오더군요. 굳이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한다고 발버둥이라도 쳐보았으니 어느 정도는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쓴 글을 보면 제가 옳은 일만 하고 바르게 살아온 것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만 결코 그런 뜻으로 쓴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참으로 부족했던 선생이어서 아이들 가슴에 알게모르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고 여기길래 자주자주 반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선생이었지만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도와주신 학부모님들과 저와 함께 했던 모든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크리스천 선생으로서 더 많이 모범을 보이고 바르게 살아야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부분도 많았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 아프게 만들었던 아이들을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진심어린 사과도 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보니 모든 것이 부끄럽게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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