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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증인 5

by 깜쌤 2018. 3. 20.

 

 

죽음 1

 

경주 인근에 그런 깊은 골짜기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포장된 아스팔트는 오래전에 끝나버렸고 내 앞에는 높다란 봉우리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지도에는 고개를 넘어가는 샛길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서 알게 된 사실인데 한때는 길이 있었지만 도로가 개통되면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골짜기가 깊어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벌레소리들만 풀섶에 자욱했습니다. 그만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했지만 언제 다시 한번 더 여기까지 와보기도 어려울 테니 가는 대로 가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걸어가기는 뭣했기에 자전거를 끌고 계속 올라갔습니다. 길은 계곡 옆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한 두평 크기의 작은 밭을 만났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먼지와 땀을 홈빡 뒤집어쓴 채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도 쉬고 싶었던 참이라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할머니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할머니께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할머니, 일하시기 힘드시지요? 부근에 집도 안보이는데 어디 사세요?"

말을 건네는 제 얼굴을 유심히 보던 할머니는 의외로 시원스럽게 말을 받아주셨습니다. 아마 제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데다가 그리 못되게 보이지 않았기에 마음 문을 열고 응답해주신지도 모릅니다.

"일은 이래 하지만 죽지 못해 사니더. 건너핀에(=건너편에) 절 보이제요? 거만(거기만) 보마(보면) 속이 마구제비로=마냥) 확 디비지니더(뒤집어집니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할머니께서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가 겪은 사연을 쉽게 마구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가슴속에 맺힌 게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가 전해 주시는 사연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골짜기에서 얼마 안 되는 밭을 붙여가며 평생 농사를 짓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일찍 죽고 하나 있는 아들은 외지에 나가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흔이 넘도록 결혼은 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건너편에 여승들만 머무르면서 수양을 하는 비구니 전용 절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경치 좋은 곳에 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땅을 매입해야만 했고 공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길을 확보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에서 공사를 위해 드나드는 차들이 할머니 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절이 완공되고 신도들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서류가 날아오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법적인 절차를 밟아 할머니는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평생을 붙여먹고 살아오던 땅을 빼앗겨 버렸으니 할머니가 받은 충격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이 결과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으니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이 마구 솟았던 것이죠. 할머니는 객지에 나가 있는 아들에게 하소연을 했고 이를 알게 된 아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항의를 했습니다만 법으로 하는 데는 이길 도리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식도 크게 공부는 못한 처지라 법에 무지했으니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절 쪽을 향해 녹음기를 크게 틀어 소음을 발생시켜서 비구니들의 수양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는 모르나 결혼도 하지 못하고 공장생활만 했던 아들이 어느 날 아침에 덜컥 죽어버린 것이었습니다. 하나 있던 아들이 죽어버렸으니 할머니 인생은 그것으로 거의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한으로 맺힌 듯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기가 차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쪽 편 이야기만 들었으니 일방적으로 편들 수 없는 형편이긴 했습니다만 이 깊은 산중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너무나 큰 비극으로 다가왔습니다.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싶었습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할머니를 위로해드리고 돌아서서 내려왔습니다. 어쩌면 괜히 할머니의 마음만 더 아프게 해 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 2

 

그는 시골에 와서 산골짜기에 사시는 아버지를 뵙고 도시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생활 근거지가 대도시였기에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와서 혼자 사시는 어른을 만나 뵙고 가는 효자였습니다.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을 자동차에 싣고 와서는 냉장고에 넣어드리고 용돈도 조금씩 챙겨드리는 살뜰한 아들이었습니다. 

 

나이도 삼십 대 후반이었으니 한창 재미있게 인생을 살던 젊은 가장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 그는 여느 때처럼 시골에 와서 아버지를 뵙고 대도시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화물차 조수석에 아직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는 아들 형제를 옆에 태우고 시골에 다니러 왔던 그는 4차선 도로를 잘 달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그에게 최후가 다가왔습니다. 그가 잘못했는지 아니면 상대방이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맞은편에서 오던 승용차와 정면충돌을 했고 트럭과 승용차 양쪽의 운전기사 두 사람이 모두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경찰의 현장 조사 결과는 그에게 약간 불리하게 나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조수석에 탔던 두 아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것도 다친데 한 군데 없이 말입니다. 상대편 승용차의 운전수는 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당한 충격은 워낙 엄청난 것이어서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 갑자기 어느 한순간에 죽음이 닥쳐오는 것일까요?

 

 

 

 

죽음 3

 

나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학년을 할 때 알게 된 젊은 남자선생이었는데 인성이 너무 좋고 성실해서 앞으로 교육게의 큰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학년을 맡아 이웃 교실에 있게 되었을 때 슬며시 물어보았더니 결혼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교육대학교 다닐 때 알게된 급우와 결혼을 했고 자식 하나를 두고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몇 년 뒤 나는 전근을 가게 되어 그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뒤 얼마 안 되어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가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불러내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경주 인근의 작은 도시였길래 굳이 경주까지 달려오지 않아도 될 처지였습니다만 친구들의 부름이 워낙 간절했었기에 달려가겠다고 승낙을 해버렸던 모양입니다.

 

 

그가 경주 인근 어디까지 왔을 때 마주 오던 다른 차와 충돌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는 현장에서 절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그때 그는 삼십 대 중반의 나이였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선하던 얼굴 표정과 부드러운 말씨와 밝기만 했던 그의 얼굴 표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는 게 무엇일까요?


도대체 선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일찍 죽어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죽는다는 게 무엇일까요? 죽으면 모든 것이 단순하게 끝나는 것일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나 덧없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정말 행복하게 아름답게 죽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나는 위에서 세 가지 경우의 죽음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세분 모두 본인의 죽음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길러보면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만 소는 자기 죽음이 가까워지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아무리 사나운 개들도 개장수가 가까이 다가오면 기가 죽어 꼼짝을 하지 못합니다. 짐승들도 자기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감한다는 말이 되는 좋은 증거이기도 합니다.


사람도 경우에 따라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기도 합니다만 어쩌면 여러분이나 저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겪은 젊은이들의 떼죽음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까워할 말을 잃고 맙니다. 그때 희생된 많은 분들 가운데 어느 누군들 자신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짐작했겠습니까? 언젠가는 반드시 다가올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 예견하고 준비해 가며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다가올 죽음에 대비하여 무엇인가 조치는 취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시신들을 보아왔고 숱하게 많은 죽음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만 크리스천들의 최후와 죽음이 가장 평안하게 느껴지더군요.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들 속에 그런 현상이 정말 많았습니다. 

 

암으로 고통받으며 투병생활을 하던 어떤 분들은 극한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기도 했지만 제가 평소에 존경해왔던 크리스천들은 하나같이 평안하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고통 없이 아주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가시더군요. 가재는 게 편이라고 제가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그분들 편을 드는 것일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죽음의 문턱에 세 번은 확실하게 갔다 온 어리석은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니 편견은 갖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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