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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증인 1

by 깜쌤 2018. 3. 2.


제가 영적으로 , 육적으로 기적을 체험해가며 하나님을 만난지가 벌써 서른해가 지났습니다. 1987년 하반기에 하나님을 만났으니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며 죽음의 문턱 앞에까지 확실하게 다가가본 것이 세번이었고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체험을 해본것은 한번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벌써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회심을 하고 하나님 은혜속에서 살아온 인생살이 후반부는 전반부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가족간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은 언제 기회가 되면 쓸 생각입니다. 수없이 많은 핍박과 몰이해와 오해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워낙 확실하고 강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하고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인간이 죽고 난 뒤 영혼이 가야하는 세상은 정말 있으며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고민과 궁금증이 없다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이십 몇년 전 어느 학교에 근무하고 있을때의 일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반 학생 가운데 인물이 아주 뛰어난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미남이었습니다. 짙은 눈썹에 쌍꺼풀진 눈, 오뚝한 코에 매끈한 턱선이 너무나 멋있어서 한눈에 봐도 눈에 띄는 그런 미남이었습니다.  


아이가 저렇게 미남이면 부모님은 어떤 용모를 가지고 있을까하고 상당히 궁금해했는데 어느 날 그 아이를 데리러 온 아버지를 보고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역시 뛰어난 미남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뛰어난 미남이라고해도 어머니가 미인이 아니면 그렇게 태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고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교육적인 문제로 저에게 전화가 걸려왔기에 통화를 하며 어머니의 목소리를 전화상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말씨를 쓰시던 분인데 아주 점잖게 이야기를 해오셔서 참으로 교양이 넘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일기쓰기 지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학습지도 및 생활지도를 겸해서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권했습니다. 일기장 내용을 보면 아이들 생활의 문제점과 교우관계, 그리고 부모님들의 사생활이 대강 드러날 수도 있으므로 교사는 일기장을 통해 알게된 비밀은 철저히 지켜주는게 옳은 일입니다.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아이의 교우관계에 문제가 제법 있겠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습니다. 남의 집에 놀러가본 일은 많았어도 자기 집에 친구들이 놀러왔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기에 참으로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문제가 있겠다싶어 오후에 남겨서 조용히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 원인을 대강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그 아이의 집에 놀러가본 아이가 지금껏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상담을 해본 결과 아이의 어머니가 무속인이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 방안에 신당을 차려놓고 정성을 드리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신당을 꾸민 것을 보면 원색을 써서 아주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아이는 자기집을 그렇게 꾸민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절대로 자기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죠. 어린 마음에 그렇게 행동을 해온 것이 너무 안되어 보였기에 특별히 더 정성을 쏟아가며 가르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자신도 크리스찬이 되지 않았더라면 박수나 점쟁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이 잘 이해되었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행동도 반듯했지만 얼굴 한쪽에 어딘지 모르게 그늘이 져있던 그런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해 가을 늦게 갑자기 아이가 전학을 간다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멀리 이사를 간다기에 그렇게 알고 전학서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며칠 후에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 아이는 멀리 떠나갔습니다.


해가 바뀌었습니다. 초여름 어느날 운동장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쩐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제사 상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로는 담임선생이 크리스찬이어서 영빨이 영 받지 않는다며 어머니가 전학을 추진했었던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당혹감이 밀려왔습니다. 담임선생이 크리스찬인 것과 무속인의 영적인 힘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라디오 방송을 듣는 중에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사고를 전하는 뉴스시간이었는데 분명히 그 아이 이름이 나왔었고 나이와 거주지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디어디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멍해져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잘 생기고 멋진 아이가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채 허무하게 죽어야하다니....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 가운데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아이가 몇명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아는 경우에 한정해서 볼 때도 서너명이 되는데 모르는 경우도 분명 많이 있을 것입니다. 졸업시켜 떠나보낸지 며칠 되지 않아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때는 너무 황당해서 할말을 잇지 못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법입니다. 모두들 자기는 안죽고 천년만년 살듯이 설치고 다니지만 절대자가 부르시면 누구든지 예외없이 가야하는게 죽음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점쟁이나 무당이나 박수 같은 사람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하는 것일까요?



선거철만 되면 점쟁이 집 앞에는 정치지망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어느 어느 점쟁이가 미래를 기가 막히게 잘 알아맞힌다는 소문이 나기만 하면 그 점쟁이가 돈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돈보따리를 들고 찾아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도 점을 칠 줄 알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았습니다. 너무 정확하게 잘 맞아서 저 자신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이 글 <회심>편에 자세히 소개해두었으니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저같은 사람은 신내림 현상을 극구 싫어해서 버티고 버틴 끝에 하나님을 만난 특별한 케이스일지도 모릅니다. 절대자의 존재는 부인해도 귀신들의 활동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처음부터 그런 존재를 절대로 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창조주나 절대자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이상하게도 귀신들의 존재를 믿는 경우는 제법 많이 보았습니다.


귀신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존재들일까요?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한이 맺힌채로 죽으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해코지한다고 믿었습니다. 저승이니 귀신이니 하는 이야기는 마음 약한 사람이나 믿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하자만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두고 확실히 아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인 교만이 아닐까요?



 명절을 맞이하면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께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를 지낸다는 말은 이미 영적인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 아니던가요? 조상신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절대자나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논리상 모순이 되는게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제법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여러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고난 이후 가야한다는 어떤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게 극락이든 천국이든 낙원이든 가게 된다고 인정을 하면 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적인 세계에서도 영토분쟁이나 갈등이 일어나야하는게 아닐까요?


우리는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고하지 않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신론자로 평생을 살든 유신론자로 살든 모든 삶에 대한 결과는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천국이야 없어도 관계없습니만 내 삶의 결과로 인해 가야하는 지옥이라는게 존재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나는 '종교는 영혼보험에 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내가 든 그 보험이 어느 정도의 보장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와 사고력을 가진 존재이므로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판단에서 나온 행동은 내 마음대로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기가 져아할 것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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