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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증인 6

by 깜쌤 2018. 3. 27.


요즘은 모르는 분들에게 '예수님 믿으세요' 라고 말했다가는 멸시와 조소의 대상이 되기가 딱 알맞습니다. 알고 지내는 분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친한 친구사이에는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것이 어쩌면 현명한 처신일 수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친구사이일수록 종교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안하는 것이 미덕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을까요?


기독교인에 대한 멸시와 조롱은 인터넷 공간에서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일부 성도들과 성직자들의 그릇된 행태 때문일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구별할 수 없는 사이비와 이단들의 비상식적인 행동때문에 선량하고 진정한 크리스천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면서 함께 욕을 얻어먹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무리 설명하고 이야기를 드려봐도 일반인들을 이해시키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두번째 원인은 예수님 및 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흔히 크리스천들은 남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권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생각하기엔 그게 길이요 진리이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터무니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다원화된 정보사회속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드리기엔 피차간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힘이 들기기만 합니다. 격무때문에  짜증과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을 찌를 만큼 높이 솟구친 요즘, 자기 한몸 추스리기도 힘겨워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도대체 누구이신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드리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가기만 합니다.



죄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거부반응부터 먼저 나타냅니다. 나는 지금까지 큰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량하게 잘 살아왔는데 내가 대체 언제 죽을 죄를 지었으며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함부로 단정하니 기분나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너무 쉽게 나만의 생각과 편견 혹은 사고체계와 이즘(Ism)에 함몰되어 쉽게 결론 내리기가 지극히 어려운 일에 대해서조차 너무 쉽게 단정지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량한 시민이라면 자기가 죄를 짓고 사는 죄인임을 조금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 반응은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죄라는 말은 형법상의 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소한 규칙위반이나 법규위반은 범칙금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을 두고 죄를 지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생각하면 그런 죄는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낼 정도의 범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무슨 잘못을 한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지나가는 예쁜 아가씨를 성적인 어떤 의미를 담아 빤히 쳐다본다거나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을 점잖지 못한 상상을 해가며 쳐다본 남성이 있다고하면 이런 것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이나 카메라로 당사자의 허락없이 여성 신체의 일부분을 찍었다면 분명히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겠지만 머리 속으로 온갖 음란한 상상을 한 것은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무슨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여 처벌할 수 있을까요?



거기서부터 이루어지는 판단은 법관의 몫이 아니라 신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머리속 생각으로 한 것이 죄인지 아닌지는 신만이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이며 신은 애시당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리면 그 다음에 들이대어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기준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도덕적인 기준은 어떤 사물과 경우에 대한 나름대로의 선과 악의 개념으로 판단할 수 있을텐데 도대체 무엇이 선이며 무엇을 악으로 단정지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다보면 결국은 도덕과 철학같은 학문을 사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맙니다. 그런 것은 논쟁적인 것이 되고 말로서 말이 많아지는 결과를 초래하여 실마리를 풀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이야기는 갈수록 복잡해져가고 맙니다. 



복잡한 논쟁은 아무리 오래 해봐도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가능한 한 믿음에 관해서 논쟁을 하지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모두 개인이 판단해서 살아야할 문제이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자기 자신이 책임질 문제입니다.


결국 어느 신을 어떻게 믿느냐하는 것도 자기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모든 일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지만 저는 남들이 하기 어려운 영적인 경험들을 숱하게 해본 사람가운데 한명입니다. 지구위 세상도 제법 많이 돌아다녀보았다고 할 수 있으며 평생을 두고 나름대로 많은 독서를 해왔다고 자부할 수도 있습니다.


교만한 면을 보인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런저런 희귀한 영적인 체험을 조금 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체험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 카테고리 속에 써둔 글에 잘 나타나있으므로 앞부분에 써둔 글을 읽어보시는 것도 작은 도움이나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신앙이라고 부르는 믿음은 영혼보험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앞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제 블로그를 클릭했다가 당신은 제가 써둔 이런 어설픈 글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실 수도 있으며, 이 복잡하고 바쁜 세상에 이따위 글을 볼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판단하셔서 그냥 훌쩍 나가셔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한가지만은 명심하고 살아가십시다. 당신과 저는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는 그 사실 하나만은 인정하고 잊어버리지 마십시다.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씀이지만 죽음은 항상 삶의 장면 바로 옆에 붙어 있더군요. 결코 멀리 존재하지 않더군요.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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