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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베트남-월남의 달밤 2(完)

힌두교의 성지 미썬에서 1

by 깜쌤 2018. 3. 12.


나는 박물관 앞을 지나 계곡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곡안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미선(=미썬) 유적지는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 안쪽에 숨어있는 것이다.



기념물 판매소는 나중에 돌아나올때 들어가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빠른 시간 안에 유적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족이 만든 유적지를 대표하는 디자인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위가 뾰족하게 솟아오른 둥근 아치라고 설명하면 너무 막연한 묘사가 될 것 같다. 



아라비아같은 분위기를 살짝 풍기는 묘한 구조물이다. 구조물은 개울 위 다리에 걸려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동차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전동차를 탔다. 다른 관광객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빨리 탑승해서 유적지로 향하는 것이 최고다. 




전동차를 타고 2킬로미터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전동차 승강장이 나타난다. 간단한 공연장과 기념품 판매소가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주고 있다.



안내판을 찍어놓았다. 유적관리소에서 제공하는 이 정보를 토대로 구경하는 것이 제일 안정적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다. 유적이 여기저기 무리지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머리 속에 넣어두자. 




전동차 승강장에서부터는 다시 비포장 길을 조금 더 걸어가야한다. 주위 환경이 나로 하여금 여름날 강원도 산길을 걷는듯한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풍경과 다른 것이 있다면 시원한 매미소리와 칡넝쿨이 없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산에는 소나무가 없어서 다른 풍광을 보여주긴 하지만..... 




공연장과 기념품 판매소가 나타났다. 공연장에서는 하루에 두서번씩 민속춤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작년에는 공연을 보는 행운을 누렸었다.  



이런 장소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보아야 제멋이지만 비싼 돈을 주고 차를 대절해왔으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오고 있었다.



골짜기 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라는 이름을 가진 민족이 있었다. 말레이계통의 인종으로 여겨지는 민족이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을 만든 크메르족과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면 될 것이다. 


 

참족으로 불리는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베트남 중남부로 진출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기원후부터 그들은 베트남 중부에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힌두교를 숭상했다.



참족은 미썬 골짜기에 거대한 사원들을 건축하고 자기들의 신을 섬기며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참족이 건설한 왕국이 참파왕국이다. 중국인들은 참파왕국을 한자로 임읍(林邑)이라고 표기했다.



그들이 남긴 유적을 보면 힌두교를 숭상한 것이 확실하다.



 힌두교에서 불교가 나왔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에 거대한 사원군을 만든 그들의 종교심도 정말 대단하다.



종교적인 열정을 바탕으로 그들은 참파왕국을 세워 인근 지역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그들은 이웃한 크메르족과 세력다툼을 벌이기도 했고 남하하던 베트남 사람들과도 투쟁해야했다.



결국 그들은 패배했다. 종교도 처음에는 힌두교를 믿었지만 나중에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힌두교 문화는 약간의 음란성을 지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참파왕국 사람들은 인간의 성기를 제법 신성시했다.



남자의 성기를 형상화한 링가와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요니가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낸다.



사원으로 쓰였던 건물을 복원한 곳도 있으므로 내부로 들어가볼 수 있다.



남아있는 유물들을 살펴보면 힌두교와의 연관성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다. 힌두교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교유적이라고 오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다.



1970년대에 절정을 이룬 베트남 전쟁때까지 이곳 미썬 유적지는 잘 보존되어 왔다고 한다.



물론 한때는 방치되어 잊혀진 유적지가 되었다가 재발견되었지만 말이다.



베트남전때 미국군의 포격으로 폐허가 되었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미니 앙코르왓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다.



한때 참파왕국을 건설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참족은 베트남인들과의 투쟁에서 패배한 이후부터  소수민족으로 전락했다.



유물만 남기고 몰락한 것이다.



참족이 말레이계통으로서 인도 문화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남긴 산스크리트 비문으로도 알 수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미국군이 쏜 불발탄이 전시되어 있어서 전쟁의 상흔을 증명해주고 있다.



미썬 유적지는 골짜기 안에 무리지어 남아있다.



그러므로 각유적지마다 그룹 A, 그룹 B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어있고 각 그룹마다 작은 오솔길로 연결되어 있다.



유적앞에 남아있는 이 조형물은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유적과 유물들은 열대지방 특유의 습기로 인해 검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이들과 관련있는 유적들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에서,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보로부두르 유적에서, 발리섬에서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유적은 불교 유적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조그자카르타 인근에 보로부두르 유적지가 있고 그 대척점에 힌두교 유적인 프람바난이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한 유적지는 모두 다 직접 가서 살펴본 장소이므로 틀린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리라.   



미썬 유적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작년에도 한번 가보았었고 그때의 경험을 이 블로그 "월남의 달밤 1"편에 상세히 소개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북적일때마다 잠시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 사진을 찍었다.



유적지에는 온갖 언어들이 즐비하게 떠다녔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산스크리트어는 어떻게 소리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미썬 유적지에서는 베트남어보다 다른 나라 말이 더 많이 들려왔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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