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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8 베트남-월남의 달밤 2(完)

야시장에 흐르는 낭만

by 깜쌤 2018. 3. 6.


호이안의 밤거리에 대해서는 몇번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



호이안의 밤은 '등롱의 거리'라고 여기면 틀림없다. 밝지 않은 등롱들이 즐비하게 매달려 떠있기에 몽환적으로 비친다.



골목에 내어놓은 레스토랑의 의자에는 손님들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커피냄새가 골목을 채워가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익어가는 것이다.



낮에 보면 진흙탕처럼 보이는 투본 강물도 등롱빛이 내려앉는 밤에는 약에 취한 자가 그리는 꿈속 세상처럼 흐느적거린다. 


 

두 세사람이 탈 수 있는 작은 보트마다 어둠만 살짝 밝히는 등이 내걸리고 작은 체구의 아줌마들이 한손에는 노를 손에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지나가는 그대에게 슬며시 손짓을 할 것이다. 



그녀들의 손짓에는 비굴함이 없는 대신 수줍음이 묻어있다.



베트남인들은 자존심이 강한듯 하다. 그들의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의 밤풍경을 떠올렸다. 투본강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맑은 물을 곁에 두고도 도무지 활용할 줄을 모르니 안타깝기만 하다. 천혜의 자원을 두고도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건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밤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모두들 낭만적인 어떤 일이 자기에게도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는듯 하다.



낭만은 자기가 찾아내는 것이지 스스로 다가오는 법은 없다.



낭만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낭만을 찾으려는 자에게는 기본적인 소양과 노력이 필요하다.



길거리를 걷다가 예쁘고 깔끔한 레스토랑을 만나면 들어가서 한끼 먹을 줄도 알아야하고 좋은 커피숍을 마주치면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커피 향을 음미할 줄도 알아야한다.



낭만을 즐길 줄 모르면 여행의 의미가 반감되고 만다. 


 

호이안의 밤은 환상적이다. 나는 투본강에 걸린 안호이 다리를 건너갔다. 작은 쪽배를 타고 강을 떠다니는 모험은 하지 않았다.



호이안의 야시장은 구시가지 맞은편에 떠있는 작은 섬안을 세로로 지르는 도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처음가는 사람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내원교 부근의 강물에 걸린 다리만 건너가면 되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굉장한 인파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어 천천히 흘러가는듯 하다.



길거리에는 각종 물건들과 먹거리가 푸짐하게 널려있다.



어느 가게나 여행자들로 빽빽하다.



돌아오는 길에도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여행자들과 어깨를 부딪혀야만 했다.



그들 대부분은 야시장 구경에 나선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꿈결속을 헤매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야시장에서 해결했더라면 더 좋을뻔 했다. 피곤이 몰려오며 쉽게 눈이 감겨졌다.   



2018년 1월 11일 목요일 날이 밝았다. 어제 저녁에 호텔 카운터에 부탁해서 미썬 유적지를 가기 위해 차량을 교섭해두었다.  



아침 5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진 것은 새벽기도를 다녔던 습관때문일 것이다.



아침은 숙박요금속에 포함되어 있으니 적극적으로 찾아먹어야 한다.



나는 이런 식사가 맛이 있다. 어렸을 때 하도 많이 굶어보아서 그런지 음식이라면 거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9시가 되어 호텔로비 앞에서 운전기사를 만났다. 7인승 빅택시가 올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봉고처럼 큰 차가 와서 대기했다. 


 

호이안에서 미썬 유적지까지 거의 한시간 정도가 걸린다. 미썬은 딱 일년전에도 다녀온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가운데 못가본 분이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가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가지를 벗어난 차는 교외 마을로 들어섰다. 교회의 십자가가 나그네를 맞이해주었다.



너른 들판에는 농부들이 제법 보였다. 모두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철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탄 봉고차 앞에는 현대회사에서 생산한 대형버스가 육중한 몸집을 좌우로 흔들면서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미썬 유적지로 가는 것이리라.  


 

지구별 어디나 유치원 시설은 색감으로 넘친다.  동심의 세계는 순수하고 맑아야 하니까 그런가보다.



새로놓은 다리인가보다. 강가에 모래톱이 보인다.



오늘 우리들은 차량 대여비로 한사람당 9달러씩을 지불해야한다. 베트남화폐로 환산하자면 100만동이다.  



미썬으로 들어가는 삼각지점까지 왔다. 작년에 우리들은 여기에서 교통편때문에 골치를 썩였다.



일년사이에 같은 장소를 두번씩이나 가본다는 것도 배낭여행자에게는 드문 일이다. 가이드들이 같은 장소를 자주 가게되면 왜 그리 시큰둥해지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학교들은 작년에 보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일까?



작년에 찍은 사진을 다시금 찾아보았더니 학교는 찍혀있지 않았다. 아마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가느라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나이를 먹어가니 어제일도 먼 옛날 일처럼 기억이 흐릿해져간다.



요즘은 어딜 갔다왔는지조차도 아리송해질 때가 있다.



열대지방 사람들도 눈내리는 성탄절을 기대하는가보다. 



우리를 실은 봉고버스는 한시간 10분 정도를 부지런히 달린 끝에 유적지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현대회사 버스도 우리 앞을 지나더니 주차장에서 관광객들을 쏟아놓았다.



운전기사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이따가 차를 못찾을 경우를 대비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그 방법이 최고다.



표를 샀다. 1인당 15만동이다. 작년에도 15만동이었다. 

 


매표소 지붕과 유적지 입구 지붕은 서로 닮아있다.



참족의 전통 스타일일 것이다. 베트남에 흔적을 남긴 민족은 여럿 되지만 여긴 참족이 뿌려둔 흔적이라고 보면 된다. 

 


참족은 참파왕국을 건설하고 여러가지 흔적을 남겨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미썬 유적지다. 미썬은 한자로 美山으로 표기한다. 베트남도 한때는 한자문화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 앞에 박물관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시간관계상 박물관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유적지로 직행했다. 


 

지금은 차 한잔 마실 시간조차 없다.



나는 서둘러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남성 성기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참파의 문화적 성격은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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