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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성화(聖化) 6

by 깜쌤 2018. 2. 20.


앞글에서 조금 언급했던 야동(=영상)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직원들의 친목과 단합을 위해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멀리 여행을 다녀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전직원들이 다함께 어울려서 술도 한잔씩 마셔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하고 마지막 순서로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제 마음속의 구주(救主 Lord)로 영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해의 일이었습니다. 산골학교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직원여행을 갔는데 첫날 일정을 마친 후에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철했는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거의 다 잠이 든것 같았습니다만 유달리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기에 방안에 놓여진 텔레비전을 살짝 틀어보았습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니 야한 동영상이 나오는 곳이 있길래 호기심에 못이겨 시선을 고정하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장면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스위치를 꺼버렸습니다. 그날은 아무 탈없이 넘어갔지만 그 다음날 오후부터 나는 온몸이 녹아내리는듯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오전에 소백산 비탈길을 오르긴 했습니다만 그런 것 때문에 몸이 아플 그런 상태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몸살이 시작된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기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나는 그날 밤에 도저히 참아내지 못할 정도의 고통과 고열로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내가 약국에 쫒아가서 급히 지어온 몸살 약을 먹었습니다만 약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것이었습니다. 


몸이 너무 아프고 괴롭기에 날이 밝는대로 속히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전혀 효과가 없었으므로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 밤을 지새우다가 문득 내가 무엇을 잘못했었던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야한 동영상을 조금 본 것이 생각나기에 하나님께 잘못했노라고 고백을 하고 죄를 용서해주십사하고 빌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를 드리고났는데 어느 순간 가슴 속에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얘야, 나는 네가 정결하게 살기를 원한단다. 볼 필요가 없는 음란한 것을 보며 네 영혼이 더러워지고 지저분해지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는다. 이젠 용서해 줄것이지만 앞으로 또 보겠느냐?"


앞으로는 절대 가까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야동을 멀리하겠다는 그런 약속을 마치고나자 열이 내리기 시작하며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야동과 담을 쌓았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야한 동영상을 멀리 했습니다.



노출 정도가 심한 영화도 거의 보지않고 조심하며 살았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한번씩 정도가 조금 심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만 유혹에 못이겨 제가 조금만이라도 시청을 하면 반드시 탈이 났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제가 다치거나 큰 실수를 하거나 아프게 되더군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성결하신 분이기에 그런 것을 절대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조금씩 알게되었습니다. 나중에 성경을 공부해가며 하나님의 품성과 속성을 조금 이해하고 난 뒤에는 가급적이면 그런 것을 멀리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랬었기 때문일까요? 교직경력 13년차에 접어들면서 저는 마침내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면 때리지 않아도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의 체벌은 용납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삼년이 지나고 4년째 접어들면서 나는 다시 전근을 가게 되었습니다.


포항(당시에는 영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인근의 영일군에서 가장 큰 학교였던 연일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는데 6학년을 맡으면서 이번에 가르치게 되는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매를 대지 않고 말로만 한번 다루어보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해가 199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놀랍게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분하게 말로 설득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더니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하, 아이들을 이렇게 점잖게 다루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새로운 엄청난 것을 발견한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급경영에 새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무슨 일이든지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학습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물론이며 인격적으로도 성숙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가 없어도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게 되었으며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이 급속도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랑하는 것 같아서 심히 부끄럽습니다만 사실 교직경력 7,8년차에 교육부지정 시범학교에서 학교를 대표하여 전국에서 몰려오신 교육 관계자들 앞에서 시범수업을 하기도 했었으니 생활지도를 바탕으로 한 수업기술 하나는 남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와 함께 근무했던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식으로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경지를 맛보게 되었던 것이죠. 비로소 나는 교사라는 직업의 매력과 멋과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만큼 살고나서 느낀 것인데 그런 능력은 제가 잘나서 가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엄청난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학교에서 나는 마귀가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는지도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으므로 제가 결혼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미혼 여선생님이 노골적으로 대시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실로 꽃바구니를 보내는가하면 편지를 써서보내며 한번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세속적인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다면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정해주신 기본적인 십계명가운데 하나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는 이제 다 알고 있었던지라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글을 써두고 몇시간 뒤에 다시 보니까 이제 오타가 눈에 보이네요. 수정한다고 했습니다만 또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은근히 불안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듯 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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