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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봐도 아름답게 변해가는 황리단길

by 깜쌤 2018. 2. 17.


경주시 황남동에 가면 동네한가운데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시설이 있습니다. 한오년쯤 전에 어찌어찌하다가 그쪽에서 주최하는 강의행사에 몇번 초청받아가서 기와집이 가득한 황남동을 어떻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황남동 서쪽은 사정동인데 황남동과 사정동의 주택과 골목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주민들에게 이 지역을 곱게 잘 보전해서 개발하면 전주의 한옥마을 못지 않는 명물이 될 것이라는게 제 강의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들의 반응과 해외의 다양한 선진 사례를 소개해드리기도 했습니다.



2014년, 직장에서 나올 때 받은 돈을 긁어모아 평소에 하고 싶던 일을 하기 위해 황남동 안에 있는 작은 기와집을 한채 샀습니다만 앞집 주민과 얽힌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재 황남동의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폭등하여 벌써부터 이런저런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사석에서 이야기하며 경주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심각한 재앙이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시민씨가 최근 황남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언급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설명해가면서 몇가지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저도 그분과 같은 시각을 가지고 앞으로 벌어질 현상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황남동에 가지고 있던 작은 기와집을 팔아야만 했던 가장 큰 이유가운데 하나가 앞집 사람이 저지른 횡포때문이었는데 그게 지역주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예상외로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트렌드지식사전5에서 김환표님은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조금 길기 때문에 적당하게 편집했음을 밝혀드립니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에 진입해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1964년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런던 도심의 황폐한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자 이를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신사 계급, 상류 사회, 신사 사회의 사람들’을 뜻하는 gentry와 화(化)를 의미하는 fication의 합성어다.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도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가난하지만 개성 있는 화가,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액세서리 디자이너, 목수, 사진작가, 인디밴드 등이 모여 독특하고 예술적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던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과 망원동, 상수동,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경복궁 옆 서촌, 경리단길, 성수동 등 이른바 핫 플레스에서 발견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카페 등이 유명해져 유동 인구가 늘어나자 가맹점을 앞세운 기업형 자본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임대료를 높여 가난한 예술가나 기존 거주자들을 몰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 ‘공간이 곧 돈’인 서울에서 지역 기반의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네티즌 사이에서는 황남동을 관통하는 중심도로가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리단길의 이모저모에 관해 알아두어도 크게 쓸데는 별로 없는 이야기를 조금 꺼내볼까 합니다.




위 지도는 DAUM 지도를 가공한 것입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확대되어 다시 뜰 것입니다. 지도에서 위쪽에 표시한 빨간색 점을 경주사람들은 내남사거리, 혹은 내남네거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래쪽 빨간색 점으로 표시된 장소는 황남초등네거리 정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내남은 경주시 행정구역 가운데 내남면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니 내남으로 가는 버스가 통과하는 네거리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경주최부자 집안으로 유명한 최부자집의 원래 세거지가 오늘날의 내남면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입니다. 내남 네거리와 황남초교 네거리를 연결하는 길을 일반적으로 황리단길이라고 지칭하는듯 합니다. 황리단길이라는 말은 서울의 경리단길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황리단길을 한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길 양쪽의 집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와집과 근대식 슬라브집이 묘하게 얽혀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황남동에 있는 많은 기와집들은 한국의 전통미가 살아있는 완전한 옛시대의 건물들이 아니고 한창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던 시절에 지은 기와집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황남동과 인접하고 있는 사정동 골목에 들어가면 일부는 기와집들이지만 가끔씩 슬라브집들이 섞여있는 이유도 그와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기와를 얹은 우리나라 전통양식의 기와집들이긴 하지만 상당히 근대화되어 있는 양식이 섞여있다는 말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건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말도 되겠습니다.



제가 처음 경주에 발령을 받아 간 것이 1977년의 일인데 그때만해도 시내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경주시내에서 제일 집값이 비싼 동네가 황남동과 사정동이었습니다. 고래등같은 집들이 제법 있어서 동네분위기조차 위세등등했는데 언젠가 한번 집값을 물어고는 당시 월급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금액임을 알고는 그 동네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포기했었습니다.




경주시가지 외곽에 아파트촌이 만들어지면서 그쪽의 집값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개발 혜택을 받지 못해 최근까지만 해도 인적이 끊어져가는 낙후된 동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경주관광지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할 줄 모르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강의를 다닐 때마다 황남동의 기와집 동네를 살려야한다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한때 황남동 철거이야기가 시내에 가득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카더라 통신'이었지만 나는 그런 계획을 쉽게 입밖에 내는 일부 정책 입안자들과 고위공무원들의 안목을 짐작해보며 할말을 잃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정동 건물들을 두고도 그런 이야기가 떠돌았는데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었습니다. 



2018년 1월과 2월에 걸쳐 24박 25일의 배낭여행을 한 것이 제가 해본 배낭여행으로는 스물여덟번째 여행이었고 해외에 나가본 것으로는 서른번째 여행이었습니다. 오랜기간을 두고 관광명소들과 숨겨진 비경지들을 찾아 다녀보며 도시와 관광지 발전에 대해 나름대로 조그마한 식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제눈에는 황남동과 사정동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뭐라도 외쳐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방치되어 흉물화되어 가던 거리가 일부 네티즌들의 도움으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게 된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한때 그쪽에는 무당들과 점쟁이들이 몰려있던 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길에는 잎이 붙은 긴 대나무 막대기가 세워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점을 치는 역술인들이나 무당이 산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대나무가 제법 세워진 그런 길이 경주 시가지 안에 두군데가 있었습니다만 이젠 점점 사라져가는 중입니다.   



떠나갔던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최근 일이년 사이에 많은 집들이 수리를 했습니다. 특히 도로를 끼고 있는 길가 집들에게서 그런 변화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세련된 모습으로 외관이 바뀌어지면서 깔끔한 카페들과 음식점이 들어오기도 하고 독특한 물건들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거리 풍경이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으니 경주에 터잡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동네 발전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주민들과 공무원들에게 동네를 예쁘게 깔끔하게 단정하게 만들어두고 친절하게 대하며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다면 관광객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몰려온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동네나 지역발전은 거창한 것부터 시작할게 아니라 내집 앞부터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꽃기른 화분을 집앞에 내어두자고 호소를 했었습니다.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그게 얼마나 먹혀들지 모르겠습니다만 세련된 감각을 지닌 외부인들이 몰려들어와서 거리의 모습을 바꾸어가는 것도 정말 바람직한 현상일 것입니다. 다만 건물주나 지주들이 땅값을 폭등시키고 임대료를 몇배씩 올리는 횡포는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막아야할 것입니다. 그런 횡포는 경주시가 세무당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장기발전계획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것입니다.  



설명절 바로 전날 나는 황리단길을 다녀보았습니다. 이런 바람직한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경주가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나는 멋진 계기가 되기를 빌어보며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황리단길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명소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근차근하게 살펴보고 글을 써서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