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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기적 5

by 깜쌤 2017. 12. 12.

1987년 11월 3일 화요일, 날이 환하게 밝았습니다. 객지에서 자취 생활을 하고 있던 처지였으니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부산을 떨어야 입에 뭐라도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밥이야 전기밥솥 스위치만 누르면 그 다음부터는 밥솥이 다 해결하는 것이니 밥을 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반찬을 만들 줄 모르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내가 만들어준 반찬을 매주일마다 집에갈 때 가지고와서 먹으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전도사님이 살고 계시는 사택을 방문해서 여러가지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아침에는 나를 짓누르던 죄의식이 많이 사라지고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다시 찾아뵙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도 명언이지만 마음이 있는 곳에는 관심이 가는 것도 옳은 표현이라고 여깁니다. 마음이 가니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다보면 무엇인가 일이 이루어지거나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눈이 자꾸 전도사관(전도사 사택)으로 향했습니다. 그날은 수업을 하면서도 자꾸 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개를 영어 표현방식 가운데 하나로 "Turning from the Sin" 이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직역하면 "죄에서 돌아서기" 정도가 되지 않을가 싶은데 저는 지난 두달동안 제가 살아오면서 지은 갖가지 죄들이 한가지한가지 생각나길래 하나하나 반성을 하며 참회를 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누가 올 이도 없으니 저녁밥을 일찍 지어 먹고나자 갑자기 심심해졌습니다. 그날따라 자꾸 학교 담장너머 개울 건너편 산밑에 있는 예배당으로 눈길이 자주 갔습니다. 학교 숙직실앞 마당에서 보면 예배당에 불이 켜지는 것을 환하게 볼 수 있었으니 교회 동정을 살피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이니 예배당에 불빛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어제 저녁에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화요일 밤에 다시 한번 더놀러오라고 하셨기에 다시 찾아가봐도 큰 실레는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학교 대문을 나와 전도사관으로 걸어갔습니다. 

11월 초 저녁밤이었지만 해가 빠지면 이내 캄캄해졌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도로를 따라 걸어 전도사관 앞에 가보았습니다만 사택의 불은 다 꺼져 있었고 문은 잠겨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없길래 실망을 한채로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학교 숙직실로 돌아왔습니다. 형광등 불빛만 허여멀건히 빛나는 방안에 들어오자 서글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미련이 생긴 나는 한번 더 운동장으로 나가 담장 너머로 교회에 불이 켜지는지를 살폈습니다. 몇번씩 그렇게 나가보았습니다만 헛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드려보자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택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것도 불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택을 비우고 어디 멀리 가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포기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며 긴밤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 탁상시계가 8시 5분경을 가리키고 있을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마트폰이나 그 한세대전인 폴더폰조차 없던 시대였으니 학교 숙직실에는 검은색 투박한 전화기 한대만 방구석에 덜렁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벨이 울리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있던 전도사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제가 오늘 교회 식구들과 백암온천을 다녀오느라고 좀 늦어버렸습니다. 온천에 가있어도 선생님 생각이 나서 도저히 견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돌아왔습니다. 지금이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사택으로 오실 수 있는지요?"

 

나는 기꺼이 수락하고 대문을 나서서 사택을 향해 걸었습니다. 학교 숙직실에서 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니 오가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사택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도사님 내외분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화요일 밤에는 다른 손님이 안계셨습니다.

 

사모님이 꾸덕꾸덕하게 마른 오징어에다가 버터를 발라서 구워오셨습니다. 바닷가 동네였으니 약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오징어 피데기는 쉽게 구할 수 있었나봅니다. 나는 바닷가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오징어 피데기를 사먹을 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멍청했던지 모릅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제법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목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으니 주로 듣는 편이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이런 저런 질문을 통해 저의 영적인 상태를 조심스럽게 체크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두시간 정도가 쉽게 흘러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나와야겠다싶어 조심스럽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헤어질때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내일 새벽에 교회에 한번 나오실 수 있겠습니까? 새벽 4시 반에 새벽기도를 하니 교회에 한번 나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지요."

 

나는 아주 쉽게 약속을 했습니다. 마치 상대편이 그런 제안을 해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답이 쉽게 나왔던 것이죠. 학교 숙직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저 그랬습니다. 특별히 가벼웠던 것도 아니고 무거웠던 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냥 평범한 날의 일상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 다음날 내 인생을 좌우할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채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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