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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기적 2

by 깜쌤 2017. 11. 25.

제가 목이 아팠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 글 속에서 몇번이나 언급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사라고 하는 직업은 목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교사가 목소리를 내지 못해 말을 할 수 없다면 직무를 수행하기 곤란한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맙니다. 예전에는 오늘날과 같은 풍부한 자료가 없던 시절이라 교육현장에서는 전적으로 교사가 말로서 학습할 내용을 자세하게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좋은 목소리를 가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말을 많이 해야하는 직업이니 제법 많은 선생님들이 성대에 무리가 가서 쉰소리를 내기도 하고 목에 이상이 생겨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교직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리를 내는데 너무 힘이 들어 목 치료에 제법 용하다는 한의원에 찾아가서 동그렇게 생긴 환약을 지어와서 오랜 기간동안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습니다.

 

1987년에 제가 겪은 경우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몸이 늘상 아픈데다가 정신적인 혼란까지 겹쳤으니 견디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제 교직 경력 10여년 정도가 된 젊은 선생이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주위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가보기를 제법 많이 권했습니다. 큰 병원 작은 병원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는데 당시 포항에 새로 생긴 어떤 대형병원 이비인후과에 찾아가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가 목이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찾아와서 귀찮게 한다면서 핀잔을 듣고 나온 경험도 했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본 것은 부지기수였고 약방출입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땐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약을 지어주던 시절인지라 제법 약을 잘 지어준다는 소문이 나있는 약국은 거의 다 가보았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먹었는데 정말 잘 낫는 것 같았습니다. 느낌이 그렇게 들더군요.

 

목에 있는 상처가 급속도로 작아지면서 잘 아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며칠 지나자 소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해서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어온 약 가운데 하루분 정도만 더 먹으면 낫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 무렵, 신기하게도 약효과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겠다는 느낌과 함께 목에 생긴 상처가 더 이상 작아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목안 상처의 크기까지 짐작이 될 지경이었으니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용한 점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내 제 목의 염증은 다시 악화되기 시작했고 다시 저번처럼 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정말이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매일 약을 먹고 수업을 하곤 했지만 목소리때문에 수업이 잘 되지도 않았으니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정말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그해 9월 28일로 예정된 운동회에도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힘들어하자 대구에 사시면서 바닷가 학교에 오셔서 근무를 하고 있던 교감선생님께서 대구에 있는 어떤 이비인후과를 소개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에 관해 아주 잘보고 치료해준다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인데 한번 찾아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1987년 10월 26일 월요일, 그날은 해외파견교사 시험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경상북도 교육위원회에서 실시하는 해외파견교사 시험을 보기 위해 대구에 가야했기에 시험이 끝난 뒤에 교감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종로 의원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에 써둔 일기장을 찾아보았더니 의사선생님 성함이 한준기 박사님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 블로그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보신 분이라면 대강 짐작하시겠습니다만 저는 교직생활 초반기부터 해외파견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글을 쓸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주신 분으로 외국인 두사람이 있었습니다. 한사람은 지금도 행방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스티브 채임버즈라는 성함을 가진 캐나다 목사님이고 다른 한사람은 노먼 M 도프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 변호사였습니다.    

 

 

노먼씨는 국제변호사로서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 배낭여행을 즐기고 있던 분인데 그 분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저에게 수많은 엽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당시에 노먼 도프먼씨는 터키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기장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더군요. 유학과 여행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면서도 실천에 옮길 형편이 되지 못했던터라 그분들의 자유로운 행동과 여행을 통해 나는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랬길래 해외에 교사를 파견한다는 공문을 보고는 드물게 오는 귀한 기회를 잡으려고 나름대로는 제법 노력을 하고 있었기에 시험을 보러 대구에 갔었던 것이지요. 평소 영어공부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던 동기를 만나기도 하고 선배를 만나서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난 뒤 나는 종로의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기 위해 신청을 해두고 순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대기실에 꽂혀있던 한권의 책에 눈길이 갔습니다. 아직도 또렸하게 기억을 하고 있는데 책 이름은 틀림없이 '크리스천 라이프'였습니다. 당시에는 라이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진잡지가 대인기를 끌고있던 시절이었기에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잡지가 있다는게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젊었던 날, 도서관에서 본 라이프 잡지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크리스천 라이프가 아직도 발간되는가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같은 이름을 가진 잡지가 뉴질랜드에서 나오고 있더군요. 옛날에 보았던 바로 그 잡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같은 이름을 가진 책이 아직도 발간되고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웠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제가 찾아낸 크리스찬 라이프 2016년 1월호의 큰제목이 공교롭게도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라는 것이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뒤적거렸던 그 책이 몇년도 몇월호였는지는 모르지만 내용 가운데 천국을 보고 온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부분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글을 쓴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책내용에 정신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천국을 보고 왔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세계가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천국이라는 것이 있고 거기를 보고 온 사람이 있다니....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으로는 깊은 감동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내가 환자로서 진료를 받기 위해 이 병원에 찾아왔다는 사실조차도 순간적이나마 까맣게 잊을 정도로 집중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거의 다 읽은 뒤에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고 있는데 간호사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진찰을 받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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