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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기적 3

by 깜쌤 2017. 11. 30.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여성 의사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로 하여금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입안과 목구멍을 세밀하게 관찰하셨습니다. 목이 너무 부어있기에 지금으로는 육안으로 보아서 알아볼 수가 없으니 다음날 다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다음 날 다시 병원에 가기 위해서 결근을 하고 대구에 한번 더 가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가지고 와서 먹었습니다. 정확한 진료를 위해 이번 토요일, 그러니까 1987년 10월 31일에 다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닷가 학교로 올라온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낼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처지가 고약한 정도를 너무 앞뒤가 꽉 막혀 있어서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1987년 9월과 10월, 나는 또다시 조금씩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나온 뒤에도 또 죽음을 생각했으니 그런 아이러니가 없었습니다만 정신적인 고통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입과 마음이 따로 놀기도 하고, 너 같은 인간은 필요 없으니 자살해버리라고 하는 죽음의 세계로 이끄는 속삼임과 유혹하는 힘이 너무 커지기만 했습니다. 결국 나는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나는 허리끈으로 올가미를 만들었습니다. 가죽으로 된 허리끈이니 올가미를 만드는 것은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둥글게 만들어놓고 목을 넣어보았더니 딱 맞았습니다. 숙직실 자취방 벽면에 튼튼한 못이 박혀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 거기다가 가죽끈을 걸었습니다. 이제 목을 가죽끈 속으로 넣고 손을 뒷짐진채 아래쪽으로 무너져 내리면 됩니다. 

 

나는 가죽 허리끈을 걸어놓고는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몇 번이나 망설였습니다. 이제 실행으로만 옮기면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목을 넣고 몇 번이나 새로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자살하면 내 영혼이 지옥으로 가겠다는 생각이 마구 솟아올랐습니다. 아직 덜 큰 어린 자식들이 눈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아내 생각도 났습니다.

 

결국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유혹은 너무도 강렬해서 그 후로도 몇번이나 허리끈을 꺼내 올가미를 만들었다가 풀다가 하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일기를 써나가며 내가 살아온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습니다. 잘못된 부분에 관해서는 참으로 많은 뉘우침을 통해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그런 뉘우침을 회개라는 용어로 부릅니다.  

 

 

이런 자리에서 밝히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들과 잘못된 행동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젊음을 바탕으로 치기에서 비롯된 언행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에게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일탈 행위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잘했다고 생각되거나 떳떳하다고 여겼던 행동이 거의 없었던것 같기도 했습니다.

 

심한 열등감으로 인한 자기연민과 스스로를 모멸하는 생각도 참으로 강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자존감은 전혀 없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남 보다가 조금 잘하는 것이라고는 책을 보는 것과 공부하기를 즐겨하는 것 정도였지만 그 정도는 재능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어설픈 것도 교육대학에 진학해서 시골에서 선생을 하는 것 정도로 끝나버렸으니 어찌 보면 무슨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이끄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이만큼 살고보니 전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만 그땐 생각의 폭이 너무도 좁았습니다. 제가 모시고 있던 교감선생님은 사범학교를 나오시고 교직에 뛰어든 분이셨는데 그런 저를 많이 안타까워하시면서 더 큰 꿈을 가지고 공부하기를 권했습니다.

 

 

예전의 사범학교는 초등학교 교사를 만들어내던 고등학교라고 여기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엔 이른바 날고 긴다는 가난한 시골 수재들이 몰려들었던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모셨던 교감선생님도 그런 분이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두뇌가 뛰어날 정도로 총명하셨던 분이었는데 여러 가지 교재를 개발하기도 하고 도단위로 치렀던 학력고사 문제를 출제하기도 하셨던 실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꾸준히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분이었는데 저를 보고는 조금만 정진하면 교육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며 더 공부하기를 권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에서는 방책이 없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이 있는 대구 부근으로 전근이라도 가야 어떤 행동이라도 취해 볼 수 있는데 그럴 재주도 방법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경제적인 면에서도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나 혼자 같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미 처자식이 딸린 처지가 되어 버렸기에 인간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에 대한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나를 절망의 골짜기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 문제로 인해 죽음만이 이런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자주 죽음을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던 그해 9월과10월 두 달간이었습니다. 

 

 

10월 29일과 30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행선지는 부산이었습니다. 아이들을 통솔해야만 했기에 안 나오는 소리를 쥐어짜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0월 31일 토요일에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제 목을 살펴보시던 박사님께서는 약간의 짜증 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을 많이 하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날 처음으로 저는 병명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과는 종이에 써서 대화를 했는데 성대(목)에 미세한 혹이 생긴 성대 폴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폴립이라는 의학적인 용어를 알게 된 것은 당시 미국을 통치하던 레이건 대통령 때문이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은 배우 출신 대통령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결장 폴립으로 인해 수술을 받았다는 언론의 보도 덕분이었습니다. 제 목에 미세한 혹이 생겨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소견이었습니다. 나는 종이에 질문 사항을 써서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답변은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당신의 목(어쩌면 성대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에 폴립이 생겨있습니다. 당신이 아직은 젊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견뎌낼 수 있겠지만 세월이 조금 더 흘러서 당신이 약해지거나 면역력에 이상이 생기면 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치료방법은 현재로서는 아주 어렵습니다. 한달 정도 약을 먹어보고 폴립이 사라지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완치는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며 재발할 때마다 목수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가능한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일단 한 달간 약을 먹으면서 기다려봅시다. 수술 여부는 한 달 후에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무 희망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쉬는 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진단서를 발급받았습니다. 병가를 얻어 학교를 잠시 쉬기 위해서는 진단서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단서 발급비용은 3천 원이었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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