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이 있었기에 나는 자주 기차역 옆에 있는 마당에 가서 놀았다.
내 유년 시절 아름다운 추억들의 원천이 되는 장소가 저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기차역 건물 옆에는 샘이 있었다. 샘 곁에는 포도나무가 있어서 나는 여름내내 쥐방구리 드나들듯 기차역에 가서는 새그럽기만한 초록색 포도 알갱이를 따먹었다.
물가에 더 오래 있다가는 씁쓸함에 단단히 물들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서서 걸었다.
고개를 넘었어도 마음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가 있던 동네도 완전히 폐허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체국도, 농협 건물도, 시골 교회도, 지서도, 면사무소도, 학교 앞 가게도 모조리 다 뜯겨져 나갔다.
안동으로 이어지던 국도도 사라지고 내성천에 걸렸던 다리도 뜯겨져 나갔다.
호수 수위가 조금 낮아져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다시 볼 수 있었던게 다행이었다. 강성이나 귀골같은 마을도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벌써 해가 제법 기울었다. 산그늘이 산 위로 옮겨간 집을 덮고 있었다.
시내버스 정류장 표시는 있지만 이쪽으로 다니는 버스는 그리 많지 않기에 영주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택시를 불러야했다.
나는 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해두었다. 오후 5시 2분경에 영주를 출발하여 안동 의성 영천을 거쳐 경주로 가는 기차를 반드시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기차를 놓쳐버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나는 심곡마루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드렸다.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나는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다음에 다시 오려면 또 일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에 사진 한장이라도 더 찍어두고 싶었다.
심곡마루 아래에는 예전에 우체국도 있었고 농협도, 학교도, 지서(=파출소)도 있었다.
안동으로, 영주로 가는 직행버스가 잠시 멈추어 서기도 했던 버스정류소도 있었지만 이젠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내가 가장 아쉽게 여기는 부분이 초등학교다.
수몰되지 않고 폐교라도 되었더라면 흔적이나마 찾아볼 수 있으련만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해마다 한번씩 찾아가서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더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뻔 했다.
지난 11월 11일에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을 학가산 언저리 어디에서 개최한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물론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일부러 안한것이 아니라 못했다는게 정확한 표현이다.
토요일 늦게 모이거나 일요일에 모임을 가지게 되면 참가할 길이 없다.
살다가보니 어쩌다가 그런 처지가 되고 말았다.
6학년 1, 2반 120 여명 정도가 같이 졸업했지만 졸업식날 보고 헤어진 난 뒤 그동안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친구가 3분의 2는 되지 싶다.
심곡마루 밑에 보이는 소나무는 학교 건물 뒤에 자라던 그 나무가 틀림없지 싶다.
학교 뒷건물 바로 뒤, 작은 언덕받이에 기대어 자라던 나무일 것이다.
저 나무 밑에서는 자주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었는데.....
그렇다. 건물 뒤에 보이는 저 소나무가 맞을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가 오지 않았다. 기사와 통화를 했더니 내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엉뚱한 장소를 맴돌고 있었던거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4시 반이 넘어가도록 택시가 도착하지 못했다. 이러면 곤란해진다.
나는 다시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취소했다. 이젠 지나가는 아무 차라도 잡아타야만 한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손을 들었지만 모두 그냥 지나쳤다. 여섯번째로 지나가던 은색 차가 세워주었다. 기차 출발까지 17분이 남았다. 나는 영주역까지 가는데 태워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기사분은 거기까지는 가지 않지만 일단 타라고 하셨다.
너무 고마웠다. 나는 기사분께 내가 왜 여길 찾아왔는지 말씀드렸다. 어린 시절을 이 부근에서 보냈는데 사진이라도 찍어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서 찾아왔는데 영주역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야만 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손을 들었다고 했다.
내 형편을 들은 기사분은 영주역까지 실어다주겠다고 하시면서 속도를 올리셨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면서 충청도 사람들이 정말 양반이라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내가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같은 경상도 사람중에서도 안동사람들과 영주사람들은 순수한 면이 많았다. 충청도분들이 점잖다고 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리바리하기 그지없는 내 경험에 의한 단순한 평가이므로 다른 지역에 계시는 분들은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차 출발시각 4분전에 영주역 광장에 도착했다. 이 자리를 빌어 25러 3134 은색 SUV 기사님께 거듭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드린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영주를 출발했다. 긴 하루였다.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기에 흐뭇한 하루이기도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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