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위치 하나는 그럴듯하다.
골짜기 전체를 한눈에 넣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멀리 하얀 억새꽃들이 가득했다.
경주 인근의 불교 유적 명소들이 액자속에 담겨 걸려있었다.
구름이 햇살을 가려 오묘한 빛의 향연을 시작했다.
단풍으로 염색되어가는 산들이 겹겹이 쌓였다.
정자 이름을 살폈다.
문향정이라..... 무엇을 들었기에 향기로워지는 걸까? 무얼 들으면 향기로워지는 걸까?
어떤 이들의 사진을 보니 여름철에 연꽆이 피어있는 모습도 있던데.... 지금은 억새밭이다.
이젠 돌아가야한다.
한때는 여기에 스님들이 차나무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젠 차밭도 다 사라지고 없다.
나는 다시 절 경내로 돌아왔다.
담장밑으로는 산에서 끌어들어온 물이 작은 도랑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삼천불전도 뒤로 남겨두었다.
어차피 이세상 모든 것들은 다 남겨두고 떠나야하는 것이 인생길이다.
불가에서 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제행무상이다.
모든 것들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리라.
때가 되면 떠나야하는 것이 세상법칙이다.
이 문을 나가면 다시 속세다. 나는 매일 속세에서 살았으니 산문(山門)을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리라.
절을 찾아오는 분들은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한다.
세상사 시름을 안고 건너면 그만큼 더 괴로울 것이다.
나는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외지에서 온 신도들이 버스에서 내려 절을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다시 자전거에 오른 나는 안동 삼거리(양반마을 하회로 유명한 안동이 아니다)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내리막길이니 저절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자전거를 트럭에서 내렸던 지점을 통과했다.
경주시가지로 이어지는 길은 2차선 도로다. 4차선 도로가 옆으로 지나고 있긴 하지만 그건 자동차 전용도로여서 자전거를 타고는 올라갈 수가 없다.
한수원본사 건물이 나타났다.
한수원 본사 건물을 볼 때마다 나는 한숨을 내쉰다.
앞으로 이 골짜기가 얼마나 발전을 거듭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이 산골짝에 굳이 본사 건물을 세웠어야만하는가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의문사항이다.
여기에는 시민들의 의식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내가 그 동안 살아왔던 경주를 떠나고자 하는 이유는 제법 다양한데 이런 일도 한몫을 한게 사실이다.
고속철도 역사 건설과 한수원 본사 건물 위치에 따른 갈등, 신시가지 건설시의 도시계획 문제, 특목고 설치에 관련된 찬반, 또 다른 대학병원 설립에 관한 반대로 인한 계획 무산, 일부 지각없는 기득권층들의 횡포와 토착민들의 텃세, 공업지구 난개발, 시가지 청결도 저하 등등.....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다.
너무 실망을 많이 했기에 나는 이제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나는 주저없이 떠날 것이다.
이 블로그 안에만 해도 경주를 소개하는 글을 오백편 이상이나 써두었지만 이젠 환멸뿐이다.
나는 옛날 도로로 접어들었다. 터널을 뚫어만든 새도로를 사용하는 것은 나같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는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오르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힘이 딸린 나는 일부 구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가야만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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