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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세상헤매기: Walk around the world

유럽의 추억 5

by 깜쌤 2017. 12. 7.

알프스라고하면 스위스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싶다.

 

 

 알프스의 혜택을 입은 나라들이 제법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독일인들도 많은 덕을 보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도 예외가 아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나라다. 언어도 독일어를 쓴다.

 

 

한때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을 양분하여 지배했었다.

 

 

오스트리아에 합스부르크가가 있었다면 프랑스와 스페인에는 부르봉가가 있었다.

 

 

중세 유럽에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제국이 존재했다.

 

 

이름만은 거창했다. 초반에 그리 큰 세력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영향력은 있었다.

 

 

세월이 가면서 유럽인들이 무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로마 교황청에서 뒤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가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한 인물이 배출되므로써 오스트리아의 위세는 한 때 하늘을 찔렀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터키 계열 이슬람교도가 주축이 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세력 팽창을 최전방에서 막아내는 구실을 했었다.

 

 

그런 나라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만나보는 유럽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 나라는 스페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역할은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오늘날 유럽대륙에서 이슬람을 신봉하는 나라들이 제법 남아있다.

 

 

이는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베네치아(영어로는 베니스)는 중세 유럽의 선진국이었다.

 

 

해상왕국 베네치아로 하여금 가장 골머리를 앓게 했던 강적이 육상왕국 오스만 투르크다.

 

 

영화 <벤 허>를 보면 갤리선이 등장한다. 사람들이 상갑판 혹은 배밑 하단 갑판에 줄지어 앉아 노를 저어서 나아가던 배가 갤리선이다. 

 

 

갤리선은 로마시대만 존재했었던게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갤리선은 존재했었다.

 

 

제정로마때는 갤리선이 특히 위력을 떨쳤고 중세시대까지 갤리선은 사용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해군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연합함대가 지중해의 제해권을 두고 한판 크게 벌인 것이 레판토 해전이다. Daum 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의 초기에는 한 부족이나 부락의 무장한 남자들이 구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보트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비슷한 장비를 갖춘 적에게 도전하거나 바다로부터 육지를 습격했다(군사기술). 초기의 해전에 이용된 선박들은 처음에는 상선이나 어선이었지만, 나중에는 전투용으로 특별 제작된 배들이 등장했다.


가장 오래된 군함은 많은 노를 갖춘 갤리선(船)이었는데, 이것은 배마다 많은 노잡이가 필요하여 함대를 배치하는 데 상당수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이 노로 움직이는 대형의 갤리선들은 공격력을 수병들이 적선에 뛰어들거나 적선을 들이받는 것에 의지했으며, 이런 배들이 지중해에서 아테네, 카르타고, 로마, 비잔틴 제국,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 아랍 국가들, 아라곤 왕국 등의 전시
함대에서 대량으로 이용되었다.


로마 공화국과 로마 제국은 해상의 경쟁세력들로부터 제기되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중해에서 횡행하는 해적행위와 그로 인한 통상로의 안전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함대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로마의 해군은 2개의 주력 함대를 보유했으며, 특별히 해상 임무를 부여받은 '클라시키'(classici)라는 군단에 의해 항상 고도로 조직화되어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해군은 마케도니아 왕조(867~1056)의 군주들 밑에서 능률이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비잔틴의 해군은 제국 함대와 지방의 소함대들로 구성되었다. 12세기에 이르러 투르크의 침공에 의해 비잔틴 제국의 질서가 문란해진 뒤에 비잔틴의 해군은 약화되었다. 중세기에 지중해와 접한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과 군주국들은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보유했다.

 

지중해상의 해군들이 노로 추진하는 갤리선으로 역사상 마지막 큰 활약을 한 것은 레판토 해전(1571)에서였다. 그후로 해군 활동의 무대가 바뀌었으며, 함정과 함대들이 대양에서의 항해와 전투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출처 : [Daum백과] 해전 - 일부 내용을 보기 쉽게 편집했음을 밝혀둡니다.

 

 

 

레판토 해전은 서기 1571년에 벌어졌으니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해보자면 임진왜란 발발 약 20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 

 

 

레판토 해전에서 기가 꺾인 오스만 투르크 해군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베네치아와 스페인에게 넘겨주었다.

 

 

오늘 포스팅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오스트리아 풍광을 찍은 것들이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해가 1945년이다.

 

 

전승국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4등분해서 점령했다.

 

 

동독 영역 속에 들어간 베를린도 네나라가 분할해서 점령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졌던 미국 영국 프랑스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서베를린을 공동 통치하다가 서독으로 넘겼고 동베를린은 동독의 영토가 되었다.

 

 

같은 독일어권이었던 오스트리아도 2차 대전이 끝난후 분할 되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중요하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수상한게 아닌 것이다.

 

 

오스트리아도 분단 국가가 되었지만 그들은 기적같이 통일을 이루어냈다.

 

 

스위스처럼 오스트리아도 영세중립국으로 남을테니 외국군대들이 철수해 달라고 간청했는데 이게 먹혀들었다.

 

 

강대국 군대가 철수함으로서 오스트리아는 분할 통치 시대를 끝냈다. 그게 1955년의 일이다.

 

 

어느쪽 편도 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했으니 서방편을 든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산주의 국가중에서 가장 잘 산다고 자부했던 동독 국민들은 1980년대 끝무렵에 헝가리로 여행을 떠났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이 열렸기 때문이다.

 

 

헝가리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하기로 한 것은 1988년에 있었던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가 결정적이었다.

 

 

서울 올림픽에 참가한 상당수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력이 일당독재주의와 공산주의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하다는 증거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헝가리는 개방개혁으로 방향을 틀었고 마침내 그동안 굳게 잠궈 두었던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열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동독 상류층들은 여행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헝가리로 넘어가서는 몰고간 승용차를 버리고 국경으로 가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비엔나 주재 독일대사관으로 가서 망명을 신청했다. 독일 정부로부터 협조요청을 받고 있던 오스트리아 정부는 망명객을 수용했고 이런 뉴스가 다시 서독 방송을 통해 동독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독으로부터의 탈출 방법을 아주 대놓고 대량으로 선전해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독의 풍요로움을 알고 있던 동독인들의 탈주가 급물살을 탔다.

 

 

동독인들은 헝가리로 마구 몰려들었고 거기서는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갔다.

 

 

서독은 특별열차를 오스트리아로 보내 망명을 신청한 동독인들을 서독으로 데려갔다.

 

 

마침내 동독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최근 현대사에서 오스트리아는 그런 역할을 했다. 

 

 

 변화의 원천은 어찌보면 서울 올림픽일지도 모른다.  

 

 

촛불을 통한 탄핵도 먼 훗날 그런 식으로 평가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처하기에 따라 북한 핵문제도 그런 의미깊은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역사의 흐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국 상황과 사건 뒤에 펼쳐지는 의미를 깊은 역사적 안목으로 볼 줄 알아야한다.

 

 

나이 쉰이 되도록 그런 눈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들 모두 인생 헛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오스트리아 풍광을 찍은 사진을 보며 그냥 어설프게 아무말이나 주절거려보았다.

 

 

이 글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모닝커피님께서 제공해주신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아래 사이트에 그분의 더 많은 작품들이 실려있습니다.

 

http://cafe.daum.net/morningcoffeegallery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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