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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사형선고 5

by 깜쌤 2017. 11. 7.

 

입안에 생긴 혹을 이리저리 만져보는데 그게 툭하며 터지는게 아니겠습니까? 동시에 붉은 피가 입천장에서부터 확 쏟아져내렸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건 물혹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후유증이 발생할까 싶어 참으로 걱정되기만 했었습니다.

 

다시 며칠 뒤 1987년 9월 9일 수요일의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 날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제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가면서 오후 시간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죽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마구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가 죽는다는 느낌이 정말 강하게 들었던 것이죠.

 

아이들을 가르치다말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9월 9일 바로 그날 당일에, 제가 죽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암이라든가 불치병에 걸려도 얼마동안은 생존기간이라는게 있는 법이지만 이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후 시간이었으니까 제 목숨이 열두시간도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으니 황당함의 극치였습니다. 

 

마침내 제가 죽어야할 때가 되었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십몇년 동안 별별 경험을 다하고 별별 사건을 다 겪었지만 제가 죽는 것으로 느낌이 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음이 극도로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데다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으니 아이들을 가르칠 마음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수업을 끝내고 종회까지 마친 뒤 아이들에게 청소활동을 하도록 해두고는 숙직실 맞은 편에 있던 제 방으로 갔습니다. 

 

 

아무래도 정말 제가 죽어야할 것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점이라도 쳐봐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회심하고 돌아선지 한달밖에 안지났는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점을  옛날처럼 쳐볼 수는 없었습니다. 극도로 마음이 불안했던 나는 내기라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00퍼센트 내가 이기는 게임을 해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청소 검사를 맡으러 제일 먼저 오는 아이에게 무조건 "합격"시켜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질 수 없는 내기였습니다. 합격이라는 말만 내입으로 외치면 되는 것이니까 절대로 질 수 없는 시합이었습니다. 합격이라고 말을 하면 내가 사는 것이고 불합격이라고 말을 하면 내가 정말로 죽는다고 하는 내기였으니 어찌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고 터무니없으며 어처구니가 없는 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내 생사가 달린 것이니 나는 무조건 큰 소리로 합격이라는 말을 해주리라고 굳게굳게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결심하기까지는 거의 3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던 것입니다. 

 

청소활동을 다 한 아이들은 반드시 나에게 와서 검사를 맡도록 해두었기에 "선생님! 청소 다했습니다."라고 말을 하면 제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만 판단해주면되도록 평소에 훈련을 시켜두었습니다. 보통 그런 활동은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날만은 너무 무섭고 두렵고 당황스러웠기에 숙직실 방문 앞에 와서 말을 하도록 조치를 해두었습니다. 방 문이라는 것이 한지를 바른 장지문이었으니 노크를 할 것도 없이 말만하면 환하게 다 들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방에 들어온지 미쳐 3분도 안되었는데 한 아이가 와서 큰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청소 다해앴스읍니이다아아아!"

나는 목소리만 듣고도 그 아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닷가의 아이들은 도시나 농촌 아이들에 비해 거친 편입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전근을 갔었기에 아무래도 아이들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던데다가 교사의 말까지도 조금은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터라 목소리를 듣자말자 단번에 성질이 확 돋았습니다.

 

사나이다운 면이 강하고 의리는 있었지만 우리반에서 제일 말을 안듣는 편에 들어갔던 권누구누구(이런 글에서 이름을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의 목소리가 확실했습니다. 정말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청소활동을 하도록 지시한지 3분이 안되었는데 벌써 찾아와서 청소활동을 다 했다고 보고하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맡은 청소담당구역이 교실이 아닌 야외인지라 살펴야 할 공간이 제법 넓고도 큰데 어떻게 3분 안에 다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성질이 확 돋아버린 나는 방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큰소리로 "불합격!"하고 외쳐댔습니다. 그렇게 고함지르고 난 뒤에 나는 내가 내기에서 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기에 졌다는 말은 내가 오늘 죽는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의미했기에 내가 받은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만 했습니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멍하게 있었습니다. 그 다음 행동을 어떻게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습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교무실로 가서 몸이 너무 아프니 잠시 들어가서 쉬겠다고 허락을 맡고는 퇴근할 때까지 방에 박혀있었습니다.

 

어설프게나마 저녁을 차려먹고 나서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그날 오후부터 바람이 엄청 거세게 불기 시작하며 바다가 뒤집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태풍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맞은 편에 있는 숙직실에 가서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그 와중에도 프로야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태풍이 오는 악천후에서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숙직실에 대한 암행감사같은 것도 없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숙직을 해야하는 주사님은 나에게 학교를 부탁하고는 볼일이 있다며 나가버렸습니다. 하루를 걸러가며 저녁마다 숙직근무를 해야하는 주사님들에게는 사생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런 정도는 한번쯤 봐줄 수도 있었기에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날 프로야구는 삼성과 롯데의 부산 경기였습니다. 사직구장에서 벌어지는 야간경기였는데 몇회가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학교가 있는 고장에도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야구 중계를 보며 다시 한번 더 내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드디어 내기를 걸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찾아왔습니다.

 

몇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삼성이 공격을 하고 롯데가 수비를 했던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죽을 쑤고있던 삼성이었는데 타석에 들어섰던 누군가가 내야 플라이를 때렸습니다. 유격수가 한영준(어쩌면 그날 2루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선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까만 밤하늘로 높이 떠오른 하얀 공을 보며 글러브를 치켜들고 '마이 볼'하고 외쳤습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공중으로 높이 떴다가 떨어지는 공과 한영준선수를 번갈아가며 클로즈업으로 잡아주었습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내기를 걸었습니다. 한영준 선수가 공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그가 공을 글러브로 잡으면 나는 살고 떨어뜨리면 죽는 것으로 정했던 것이죠. 그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한영준 선수가 공을 잡고도 남음이 있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사실 못잡을 일이 전혀없었습니다. 높이 떠올랐다가 낙하하던 공은 어김없이 한영준 선수의 글러브 안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살았다!"하고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살았"까지 밖에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글러브 속에 들어갔던 공이 미끄러져 내리더니 잔디밭에 떨어지는게 아니겠습니까? 이거야말로 속된 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도 다 있을 수 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커다란 충격을 받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죽는다는 것이 더더욱 확실해진 것입니다. 나는 이제 그냥 죽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잘쓰는 말로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만 더 내기를 걸어보겠다고 호소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한번만 더확인해보고 싶다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면서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찾았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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