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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사형선고 7

by 깜쌤 2017. 11. 11.

당시에는 민원이라는게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교무실이나 숙직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반드시 받아야만 했습니다. 보통은 교무실과 숙직실에 동시에 울리도록 설치되어있었습니다만 야간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못하면 큰 일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상급기관에서는 불시에 전화를 걸어 숙직근무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고, 학교 경영자들도 한번씩은 숙직실에 전화를 걸어서 현장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교육청(요즘은 교육지원청으로 부릅니다만)에서는 긴급 연락이 필요할 때 학교에 전화를 해서 이웃 학교에 전달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전화통지문 시스템이라고 하기도 했고 줄여서 전통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어쨌거나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이죠. 

 

 

화장실에 가 있어도 전화가 걸려오면 지체없이 달려나와서 전화를 받아야먄 했기에 전화기를 창가에 올려두고 화장실에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학생과 교사가 같이 쓰는 숙질실 부근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 가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는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허겁지겁 달려나와서 방안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무슨무슨학교 교사 누구누구입니다"

나는 수화기를 들자말자 소속과 직위와 성명을 밝혔습니다. 전화기 속에서는 차분하되 침통한 여성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습니다. 당시의 일기장을 꺼내 확인해보았더니(2017년 11월 19일 낮에 확인해봄) 따님의 목소리였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기는 교장선생님 자택인데요, 조금 전에 교장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그때쯤이 아침 7시 35분경이었습니다. 간밤에 온 천지를 무시무시한 손톱발톱으로 마구 할퀴듯했던 무서운 비바람이 지나가고 소나무 사이로 평온한 햇살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으니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죠. 9월 10일 목요일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살려주고 대신 제가 모시고 있던 직장상사를 데려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고 우연의 일치라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건의 당사자인 제 입장에서는 저 대신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나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 조용히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모두 학교부근 사택에 사시면서 근무를 하셨기에 직접 가서 소식을 전해드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밤이 지나갔고 제 생명은 연장되었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께서는 악성종양으로 고생하고 계셨습니다만 의사의 소견상으로 그 다음해 2월로 예정된 정년퇴임까지 아무 이상없이 사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소견을 붙여왔기 때문에 그렇게 돌아가시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교사들의 정년은 만 65세였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사정이 좋아지면서 수명이 조금씩 연장되던 시기였다고는 하지만 칠십을 넘겨 살기는 힘들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녁 전직원들이 문상을 다녀올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은 침통함과 착잡함 그 자체였습니다. 유족분들에게 얼마나 송구스럽고 죄송했던지 모릅니다. 한사람의 죽음과 어떤 일 뒤에 이런 기막힌 사연들이 얽혀있다는 것을 우리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나는 이 정도로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줄로 알았지만 시련과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힘들고 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뒤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나같은 어설픈 인간을 훈련시키고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의 제 입장에서는 너무나 끔찍하고 지겹고 힘들고 무서운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문상을 다녀오고나서부터 나는 다시 극심한 혼란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왜 이런 끔찍한 고통이 뒤따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무섭도록 정확한 것도 여전했고 숨쉬기는 여전히 힘들었으며 정신마져 혼란스러워오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쯤부터 나는 다시 자살의 유혹을 심하게 받기 시작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힘든 것은 물론이었고 정신적인 어려움이 곧 뒤따라 왔기 때문입니다. 내 생명이 연장받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살아서 무얼하겠는가라는 생각은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산다는 것에 대한 것, 가르친다는 것, 인생살이 전반에 대해 깊은 회의가 다시 한번 더 치열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복잡한 것들이 몇겹으로 겹쳐서 이리저리 마구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있었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 글에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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