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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사형선고 3

by 깜쌤 2017. 11. 3.

 

                <초등학교 시절 잠시 다녔던 교회도 이제는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며칠 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학부모 한사람이 죽을 것 같은데 끔찍하게도 목이 날아가서 죽어버릴것만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한번씩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무섭도록 정확하게 이루어지던 시절이었으므로 이런 것은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기에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나는 두려워서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나와 관련있는 학부모님이 죽는다는 것도 무서운 일인데 죽는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더 이상 떠올리기가 싫었습니다. 너무 두려워진 나는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않은 일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소사라는 직함을 가진 분이 있었습니다. 한자로는 小使라고 표현했는데 교내의 책걸상같은 물건을 수리하기도 하고 시설물 관리도 하며 숙직업무를 하기도 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던 시절이었던지라 그런 자리도 서로 차지하려고 아는 사람을 통해 힘이라도 써야만 학교에 취업해서 들어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꿈결에 있었던 일인듯 합니다>

 

오늘날에는 전산망이 워낙 촘촘하게 짜여져 있기에 어지간한 서류는 모두 컴퓨터를 활용하여 전자서류로 발송하고 접수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학교에 근무하는 소사가 일주일에 두번씩 지역 교육청에 직접 가서 공문서를 보내기도 하고 수령할 서류는 받아와야만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의 소사 아저씨는 성격이 워낙 별난 분이어서 상당히 까탈스럽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강단(剛斷 어려움 굳세 씩씩하게 견디어 내는 )이 있어서 교사와도 한번씩 다투기도 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는데, 저보다는 한 스물너댓살 정도 위여서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을 따서 무슨무슨주사님하는 식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갔더니 심지가 굳고 강단이 있다고 알려진 그 주사님이 몸을 엄청 심하게 부들부들 떨며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 수 있느냐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표정이 워낙 심각했기에 교감선생님도 오시고 모든 교사들이 그 분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교회가 있었던 이 언덕도 이젠 말갛게 사라졌습니다>

 

교육청에 가서 공문서를 받아들고 학교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탔다고 했습니다. 왕복 2차선 도로인지라 직행버스들도 마음대로 속도를 내서 달리거나 함부로 추월할 수 없는 그런 도로였습니다. 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섰을 때 뒤따라오던 승용차 한대가 버스 뒤에 함께 멈추어 서있었습니다. 

 

학교 주사님은 맞은 편 차선쪽, 그러니까 진행방향으로 봐서 왼쪽 창가 좌석에 앉아있었는데 그날따라 타고 내리는 손님이 많아서 버스가 제법 오래 서있었던 모양입니다.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뒤쪽의 승용차가 시야가 완전히 가리워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잠깐의 그 짧은 시간을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추월해서 가기 위해 맞은 편 차선으로 들어섰던 것입니다. 

 

그 순간 반대편 차선에서는 덤프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비탈길을 질주해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부분의 도로가 직선구간이었으므로 속도를 내기에 알맞은 장소이기도 했고 트럭 입장에서는 내리막길이니 속도가 붙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내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잠긴다는 것은 비극이기도 합니다>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엄청나게 짧은 순간의 일이었습니다. 소사 아저씨는 창가 좌석에 앉아있었으므로 바로 아래에서 벌어지는 참사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내려오던 덤프 트럭이 승용차를 덮치면서 깔고 넘어가는 것을 보았던 모양입니다. 

 

더 끔찍했던 것은 사고가 벌어지는 그 짧은 순간의 승용차안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찰나의 순간 차가 찌그러지면서 주사님은 운전자의 목이 날아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이야기를 하던 그분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듣고나자 나까지도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사망하신 분이 너무나 안타깝게도 학부모였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직접 가르치는 내반 아이의 부모님은 아니었지만 다른 학년 학생의 부모였으니 학부모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인지라 학부모님 가운데 유력한 분이 돌아가시면 학교에서 문상을 가기도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분이 누구인지 곧 알아질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한바탕의 헛꿈인듯 합니다만.....>

 

주사님이 워낙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일찍 댁으로 들어가 쉬도록 하고 선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각자의 교실로 흩어져 갔습니다. 내가 받은 충격도 보통이 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온갖 불행은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당해왔었는데 이제 서서히 범위가 좁혀져 오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불행이라고 하는 게 남이 당할 땐 단순한 남의 일이지만 범위가 서서히 좁혀져와서 막상 내가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기 시작합니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가족이 당한 슬픔이 얼마나 크고 깊었겠습니까만 인간은 남의 불행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정작 내 손톱밑의 가시 하나가 더 크고 중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법입니다. 

 

나도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나는 죄책감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원인으로 보아서는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도 일어난 결과에 대해 나는 마음이 한없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무서운 일이 내 부근에서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때문에 괴로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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