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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사형선고 6

by 깜쌤 2017. 11. 10.

 

밖에서 부는 바람은 점점 거세어가고 빗줄기도 조금씩 강해져갔습니다. 사방이 워낙 깜깜해서 몹시도 음산하던 날 밤에 혼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자기가 죽을 것인가 살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걸어야하는 이 초라함과 괴기스러움에 나는 전율했습니다. 누가 내막을 알고 보았더라면 그런 음산한 장면도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날따라 삼성의 공격은 완전히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롯데팀의 투수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따라 평소 실력에 견주어보아도 워낙 빼어난 투구를 했기에 삼성은 거의 퍼펙트 게임수준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는데 누구도 안타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지금은 죽고 없는 안타제조기 장효조선수가 등장하더군요.

 

안타 하나라도 때려내야 완전게임에서 벗어나는 수준이었으니 천하의 장효조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 홈런을 친다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설자도 이날 삼성이 퍼펙트 게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안타 한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잔머리를 굴리고는 장효조가 홈런을 치면 내가 죽고 안타를 못치고 물러나면 사는 것으로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즉시 화면을 쳐다보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딱'하는 소리와 소리와 함께 장효조선수의 방망이가 돌아가더니 1루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홈런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가차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 드디어 나는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랬습니다. 내가 오늘 죽는 것이 확실해졌다는 것을 거듭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암으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암이 내몸 곳곳에 진행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 증상이 나타날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내가 죽는게 확실해졌습니다. 

 

   

 

이 젊은 나이에 나는 암으로 죽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이제 고작 서른 초반인데 아이들과 아내와 부모님과 형제들을 남겨두고 죽어야만 했으니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비바람이 마구 몰아치는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파도소리가 얼마나 강했던지 파도가 학교 운동장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올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금강송을 닮은 커다란 소나무들이 폭풍에 휘말려 굵은 가지들이 거인의 팔다리처럼 휘청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바람이 셌습니다. 그런 가운데 비가 마구 쏟아져 내렸는데 학교 운동장에는 사람 그림자가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에 용기를 더냈는지도 모릅니다. 운동장으로 나갔더니 흙들이 물기를 머금어 진흙바닥처럼 물컹거렸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살려달라고 눈물과 콧물을 마구 쏟아가며 절규했습니다. 그때까지 살아온 날들이 모두 꿈만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제발 살려달라고 얼마나 호소했는지 모릅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깜깜한 운동장을 마구 돌아다니면서 눈물을 쏟아가며 호소했습니다. 얼마나 절실하게 빌었는지 잠깐 같았는데 두시간 정도가 흘러갔습니다. 

 

누가 보았더라면 어느 선생이 미쳐서 밤중에 운동장을 헛소리를 해대며 울면서 돌아다니고 있더라는 소문이 날만한 그런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비를 쫄딱 맞고 방에 들어왔더니 밤 열시가 넘은 것 같았습니다. 빗소리는 점점 더 거세어져가고 바람도 무시무시하게 부는 무서운 밤이었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한번 더 호소했습니다. 정말 제가 죽어야할 것이라면 꿈으로 알려달라고, 제발 꿈으로 알려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몇해전에 시내의 어떤 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옛날에는 교사들도 돌아가며 숙직 근무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십대 후반의 한창 팔팔하던 시절이었지만 학교 숙직실에서 잠을 자는데 몸이 가위눌린 상태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은 학교 주사님과 같이 근무를 해야하지만 그날은 어쩐 일인지 저 혼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꽤 오랫동안 안자고 버티다가 자리에 누웠는데 순식간에 제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정신은 한없이 또렷하고 의식은 맑은데 갑자기 귓전에 굉장한 바람소리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거대한 바람소리였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동굴같은데서 마구 쏟아져나온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바람소리였는데 순식간에 나는 동굴 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컴컴하고 어둡고 음산하고 긴 동굴이었습니다.

 

나는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굴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저 끝까지 끌려들어가면 확실히 죽을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나는 발버둥치면서 살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누구에게 호소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다가 눈이 떠졌습니다. 숙직실 천장에 달린 알전구에서 쏟아져내리는 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생생한 경험이었기에 식은 땀이 주르르 흐를 정도였습니다. 살면서 가위 눌리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입니다만 그런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세번씩이나 확인을 해보았지만 내가 꼼짝없이 죽어야한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체념한 나는 예전의 경험처럼 잠을 자다가 그렇게 죽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잠자다가 사고를 당해 죽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잠자리에 들었고 신기하게도 이내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커다란 저수지 가에 내가 서있었습니다. 주위가 조금은 화려하다는 느낌을 주는 저수지 모퉁이 부근에 서있는데 사람만큼이나 큰 거대한 잉어가 내쪽으로 헤엄을 치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낚시에 미쳐있었던 때이니 물고기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제법 많은 책을 보아서 잉어의 습성을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잉어를 영물(靈物)정도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너무 큰 잉어는 잡아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도 제법 있었습니다. 야생에서 자라는 잉어들은 아주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어서 어지간해서는 사람 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잉어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수지 가장자리로 헤엄쳐오는 것이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거물 잉어가 나를 향해 헤엄쳐오는 것을 보고 나는 순간적으로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수기 가에 자라는 나무를 발로 힘주어 딛고는 허리를 굽히자 나무가 부러지면서 잉어가 나무밑에 깔리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물속에 넣어 잉어를 건져올리자 예상외로 잉어가 쉽게 잡히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이어서 그런지 대물잉어답지 않게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두팔을 사용해서 잉어를 건져내고보니 머리가 있는 윗부분은 아주 잘 생겼지만 허리가 크게 휘어진 기형잉어였던 것입니다. 이른바 오염으로 인해 허리 아랫부분에 이상이 생긴 그런 물고기처럼 생겨있었던 것이었죠.

 

꿈속이었지만 나는 이 물고기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잉어를 건져올린 나를 보고 누가 사진을 찍어버리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병든 거대한 잉어를 놓아주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잉어를 놓으려고 했지만 그럴 틈도 없이 사진을 찍히고 말았고 순간적으로 눈이 떠져버렸습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꿈속에 있었던 장면이 너무도 생생했기에 무슨 의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허리가 휘어진 잉어는 무엇이며 누가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사진이 찍히면 증거가 남을 것이므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텐데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쨌거나간에 내가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꿈을 꾸기를 기도한 뒤 다시 잠결에 빠져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밖이 환했습니다. 지난 밤에 꾼 꿈생각이 머리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어야 할 날은 어떻게 지나간듯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불안한 마음을 안고 숙직실 부근에 있는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갔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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