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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트라카이는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6

by 깜쌤 2017. 10. 31.

이쪽으로는 사람이 적었다.

 

 

사람수가 적다는 말은 한가하다는 말이고 특히 우리같은 동양인들이 손님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옥색 원피스를 갖춰입은 아가씨가 문간에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자태에서 범접할 수 없는 품위를 느꼈다.

 

 

가게 이름이 비바 트라카이였던 모양이다. VIVA는 이탈리아어나 영어에서 만세를 나타내는 소리 아니던가?

 

 

이따가 천막 파빌리언에 들어가서 한잔 해야지 싶었다.

 

 

레스토랑을 뒤로 두고 조금 더 걸어나갔다. 물건너 편에 보이는 트라카이 성이 멋진 자태로 다가왔다.

 

 

이쪽에서 보니 성채는 귀부인 같은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레스토랑 옆에 3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처음에는 저 건물의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결과 궁금증은 이내 풀렸다. 호수가에 마련된 관람시설을 보니 조정경기장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고 3층 건물은 경기관리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멋진 시설이 숨어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가 데크 위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나는 이런 한가함과 호젓함이 좋다.

 

 

번잡함과 소음은 너무 싫다.

 

 

어찌보면 나는 유럽인 스타일의 여행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리라. 

 

 

젊었던 날, 동료 선생님의 부탁으로 처음보는 대학생을 데리고 동남아시아 여행을 간적이 있었다. 배낭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던 청년은 유적지로만 다니는 여행일정에 반감을 품고 시작 이틀만에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이후 나는 배낭여행 동반자 선정에 조심을 기하고 만전을 기했지만 두번 정도는 더 실패한 경험이 있다.

 

 

조정 경기강을 둘러본 뒤 우리는 돌아서서 비바 트라카이 레스토랑으로 갔다. 

 

 

호수쪽으로 면한 천막 파빌리온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오랫만에 에스프레소를 마셔보았다. 보통 때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습관이지만 커피맛의 정수를 맛보고 싶어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던 것이다.   

 

 

쌉쌀하면서도 뒤끝 좋은 과일향이 입안을 감도는 듯 했다.

 

 

살짝 새그러운 맛이 배어났다. 좋은 커피다.

 

 

이런 곳에서는 말이 필요없다.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보트를 탄 사람들이 한번씩은 성 앞을 지나갔다. 제법 먼거리였기에 여기까지 말소리가 들려올 일이 없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때는 바람결에 말소리가 묻어오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알아들을 수도 없고 알아들을 필요도 없으니 소음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잠시 물결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사람이 보트를 저어 들어오고 있었다.

 

 

제법 오랫동안 느긋한 시간을 즐겼다.

 

 

에스프레소 한잔에 2유로였으니 2,500원 정도다.

 

 

본전은 충분하게 뽑았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긴 휴식을 즐긴 뒤 천천히 일어섰다.

 

 

이젠 다시 걸어가야한다.

 

 

트라카이 버스 정류장을 향해서.....

 

 

왔던 길을 걷는 것이니까 길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충분히 보았던 트라카이 성채의 반대쪽에 있는 다른 호수를 구경하며 걸었다.

 

 

물이 주는 아름다움은 상상을 넘어선다.

 

 

창조주께서 인간과 동식물을 위해 마련한 특별선물이 물이다.

 

 

생명의 신비로움도 보통이 넘는 것이지만 물이라는 물질이 만들어내는 신비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물도 감정(?)이 있다는 이론은 너무나 유명하다. 

 

 

무슨 헛소리냐고 너무 쉽게 함부로 치부하지 말고 궁금하시다면 에모토 마사루가 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카라임족의 스타일이 묻어있는 전통 가옥 앞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호수가 너무 고요했다.

 

 

평화롭고 고요했다.

 

 

이 고요와 평화가 한없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아까 보았던 소방서 옆을 지났다.

 

 

박물관 옆도 지났고.....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제법 어리바리하다는 것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눈썰미가 없어서 한번씩은 황당한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젊은이가 하는 실수는 경험부족에서 나오는 미숙함의 소치지만 노인들의 실수는 모자람과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터미널에서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문을 열 줄 몰라 무리하게 열다가 관리인 아줌마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영어로 된 설명이 문짝에 붙어있었던 것인데 그걸 자세히 읽어보지 안고 무리하게 힘을 주어 문을 열려고 했으니 관리인 아줌마가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벽에 붙은 버튼만 누르면 간단히 열리는 것을.....

 

 

빌니우스로 돌아가는 대형버스를 탔다. 아침에는 미니버스였었다. 버스가 조금 더 커서 그런지 0.1유로를 더 받았다. 내 앞에 앉은 청춘남녀는 이제 키스의 맛을 처음으로 알아버린듯 했다. 둘은 30여분 동안 줄기차게 쪽쪽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있었다. 제법 헤비 키스를 나누고 있는듯 해서 약간은 민망하기도 했지만 나도 그들과 같은 시절을 겪으며 살아왔으니 뭐 할말이 있으랴?

 

빌니우스 정류장에 내려 둘의 얼굴을 슬며시 살펴 보았더니 두 사람다 다 제법 발그스럼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가씨 얼굴엔 주근깨가 조금 박혀있었는데 미인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떠랴? 자기들끼리 좋아서 죽고 못사는데..... 처녀와 총각은 아쉬운듯 헤어지고 있었다.

 

 

빌니우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장거리표만 파는 창구로 가서 내일 아침에 에스토니아탈린으로 가는 버스표를 미리 샀다. 1인당 31유로다. 리투아니아에서 라트비아를 거쳐 에스토니아로 가는 장거리 버스표를 구입하는데는 여권이 필요했다. 

 

일반표는 26유로인데 제일 편한 좌석은 5유로를 더내야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이동해야 한다. 그러니 편하게 가고 싶었다. 표를 구하고 보니 왼쪽 단독좌석이었고 번호는 1,2,3번이었다.

 

터미널 2층에 있는 대형 수퍼마켓 IKI 에서 저녁장을 보아왔다. 콜라와 탄산수, 그리고 포도와 빵에다가 핀란드 하멘린나에서 먹었던 쇠고기 케밥을 곁들여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갔다.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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