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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세상헤매기: Walk around the world

이란의 추억 - 페르세폴리스

by 깜쌤 2017. 10. 20.

 

오늘날의 이란인은 페르시아인의 후예들이다. 그렇게 봐도 큰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는다.

 

 

그들이 처음부터 이슬람을 믿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배화교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

 

 

아직도 이란에는 배화교를 믿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배화교를 우리는 조로아스터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창시자는 자라투스트라다.

 

 

이스파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쉬라즈(혹은 시라즈)라는 도시에 닿게 된다.

 

 

 여행객들이 시라즈에 가는 이유는 페르세폴리스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를 더 올라가야한다.

 

 

나는 거기를 가보는 것을 필생의 꿈으로 여겼었다. 

 

 

그랬길래 기어이 다녀오긴 했다.

 

 

디지털 커메라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필름을 아껴가며 사진을 찍었었다.

 

 

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은 다리우스 1세다.

 

 

페르시아의 통치자 크세르크세스가 규모를 더욱 더 확장시켰다.

 

 

오늘날의 그리스를 출발하여 여기까지 쳐들어온 사람이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다.

 

 

당시 최고의 강국이었던 페르시아 군대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대에 의해

패배하여 무너진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필립2세였다.

 

 

다리우스 1세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공자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왕이라고 보면 된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대는 보병 약 3만, 기병 약 5천, 그리고 약간의 용병으로

이루어졌었다고 전한다.

 

 

당시의 마케도니아 보병은 중무장을 했었고

그 유명한 장창(긴창)을 들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대는 페르시아와 세차례의 역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첫번째 싸움은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였다.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승리했다.

 

 

두번째 싸움은 기원전 333년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 3세가 맞붙은

이수스의 전투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연합군이라고 봐야한다.

이번에도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가 승리했다.

 

 

세번째 전투는 가우가멜라애서 벌어졌다.

 

 

기원전 331년의 일이다.

 

 

이번에도 알렉산드로스의 군대가 승리했다.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의 군대가 페르세폴리스에 들어왔다.

 

 

때는 늦은 봄이었다고 전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승리의 연회를 즐긴후 불을 질러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해버렸다고 전한다.

 

 

지금은 돌무더기들만 사방에 가득하다.

 

 

그 규모는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장대했다.

 

 

한마디로 어머어마하다.

 

 

높은데 올라서서 보면 앞면이 탁 트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동진을 계속했다.

 

 

그들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까지 진격했다.

 

 

그 뒤 남하해서 인더스강 부근에서 인도군과도 싸웠다.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알려진 세계는 거의 다 진격해보았다는 말이 된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은 전국시대였다.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면 스키타이 냄새도 슬며시 묻어있는듯 하다.

 

 

병사들이 더 진격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알렉산드로스는 회군해야만 했다.

 

 

그리스를 떠난지 10년만이었다고 전한다.

 

 

그리스로 돌아가던 도중 바벨론에서 그는 죽었다.

기원전 323년의 일이다.

 

 

그가 죽은 뒤 제국은 분열했다.

 

 

그도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들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져갔던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장수였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지배권을 확립했다.

 

 

우리가 잘 아는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집안 출신이다.

 

 

그러니까 헬라인이 파라오를 자칭하면서 이집트인들을 통치했다는 말이 된다.

 

 

이란인들은 시를 좋아한단다.

 

 

그들은 국민시인격인 하페즈(Hafez)와 사아디(Saadi)를 기린다고 한다.

 

 

그들 두사람은 시라즈 출신이다.

 

 

그러길래 시라즈를 '시와 장미의 도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이제 다시 한번 더 가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능성이 없기에 죽재선생이 찍어온 사진으로

위안을 얻고자 한다.

 

 

사진을 제공해주신 죽재선생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란 여행은 꿈결 속에 있었던 일들 같다.

 

 

페르세폴리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보면 된다.

 

http://blog.daum.net/yessir/15867381

 

 

오늘 이 포스팅 속의 사진은 모두 죽재선생이 제공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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