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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라트비아의 보석 시굴다 4

by 깜쌤 2017. 9. 27.

 

잔디밭에 꽂혀있는 것들은 분명히 대형 열쇠들이다.

 

 

여기가 Key Square, 이른바 열쇠광장이다.

 

 

별것 아닌 것같은 테마를 가지고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공원화한다는 것은 보통 두뇌를 가지고 되는게 아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어야하고 행정당국은 전시공간을 확보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살펴보며 라트비아의 가능성을 높이 샀던 것이다.

 

 

공원속에 단정하게 들어앉은 작은 집이 참으로 깜찍하게 보였다. 누가 사는지 궁금하다. 어찌보면 비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집과 집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여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 바로 옆으로 아주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데 그걸 활용한 지혜가 놀랍기만 했다.

 

 

담장 바깥 실개천에 정원수를 심고 물레방아를 설치해서 돌아가게하고는 황새를 모티브로 한 조각품을 설치했다. 감각 하나는 일품이다.

 

 

일반 가정집이 이정도라면 이는 보통 수준이 넘는 것 아닌가?

 

 

단순히 국민소득만 높다고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진국이라는 낱말에는 삶의 질과 국민들의 의식수준까지 고려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맞는 일 아닐까?

 

 

너른 잔디밭 속에 좌대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을 묘사한 조각품이 올려져 있었다.

 

 

Krisianis Barons라고 써두었으니 그냥 소리나는대로 읽어보자면 크리시아니스 바론스 혹은 크리시아니스 배런즈가 될 것이다. Baron이라고하면 보통은 귀족 계급의 최하위인 남작을 의미한다. 성이 Barons라면 귀족 출신이었거나 지방 영주계급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라트비아의 스위스라고 알려진 시굴다의 공원 한가운데 앉아있을수 있을까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는 라트비아의 전통 민요인 Dianas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출판한 일을 했단다. 생몰연대를 가지고 확인해보면 그는 러시아 제국시대에 주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무렴 어떠랴? 궁금증만 풀고 가면 되는 일 아니던가? 이번에는 자전거 도로와 인도, 차도가 확실하게 분리 표시되어 있는 길을 만났다. 

 

 

공원안에 하얀색 벽을 가진 멋진 교회가 나타났다. 겉모습만 보자면 한없이 단순하고 소박하며 검박하다. 내부는 어떤지 모르지만 외부는 소박함이 가득했다. 루터교 교회(Lutheran Church)다.

 

 

교회 맞은편은 주차장과 공원의 연속이었다. 라트비아인들은 이런 공원을 그냥 숲 정도로 인식하는듯 하다. 

 

 

 교회를 옆으로 두고 보면서 시굴다 뉴 캐슬로 걸어가다가 흥미있는 작품들을 만났다.

 

 

돌과 쇠를 이용해서 만든 다양한 인물상들이었는데.....

 

 

표정들이 정말 다양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작품 인물마다 이름이 다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얘는 성문지기나 문지기였을까? 아니면 옥문지기였을까?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생활주변에 흔하게 굴러다니는 재료들을 이용하여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낼줄 아는 작가의 창의성이다.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입시 위주의 제도권 교육속에서 경쟁에 시달리는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며 서글픔을 금할 수 없었다.  

 

 

교육입국이 아니라 교육망국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작은 아들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형은 자전거를 타며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이들의 삶이 한없이 부러워졌다.

 

 

숲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다보니 커다란 대문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어디에도 입장권을 파는 곳은 없었다. 나는 열려진 쪽문을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철문에서부터 안쪽을 향해 직선으로 뻗은 길이 보이고 양쪽으로는 화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꽃들이 화사함을 뽐내듯이 줄과 무리를 지어서 피어 있었다. 

 

 

 철문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으로는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화단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아무에게나 개방된 곳이니 그냥 들어가서 구경하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길이 끝나는 곳에 2층 석조건물이 그자태를 뽐내듯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양쪽으로는 다른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시굴다 뉴 캐슬(Sigulda New Castle)이다.

 

 

석조건물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지역을 다스린 영주의 저택(Manor)일 것이다. 

 

 

내가 걸어 들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우리는 저 멀리 보이는 문을 통해서 이 저택의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옛 영주의 저택쪽으로 먼저 다가갔다.

 

 

시굴다 뉴 캐슬은 1878부터 약 3년간의 기간에 걸쳐 원래 이 저리에 있었던 옛날 건축물들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크로포트킨이라는 성을 가진 집안과 폰 보르그스 가문에서 사용했던 모양이다. 

 

 

 구경꾼들이 제법 보였다.

 

 

평화스러운 숲속에 이런 대저택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는데 내가 받은 놀라움과 감동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이 건물을 새로 지은 크로포트킨의 동상이 좌대위에 우뚝 서있었고 국기게양대에는 유럽연합 깃발의 파란색이 선명하기만 했다. 

 

 

 이 구역안에는 여러 채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옛 영주가 살던 저택이 있는가하면 그 맞은 편에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기도 했다.

 

 

옛 건물 벽에는 흑백사진들이 붙어있었다.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는 건물들이 신비롭고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주었다. 

 

 

크로포트킨의 동상이다.

 

 

햇살이 구름속을 드나들 때마다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빨갛게 칠한 하수도 맨홀 뚜껑이 포인트가 되어 경치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작은 것 하나가 경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법이다. 나는 맨홀 뚜껑 주위에 벽돌을 깔아둔 모습과 화단 가장자리 벽돌 모습에 눈길을 한번 더 던져주었다.

 

 

왜 우리는 그런 감각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원인은 여러가지로 존재하겠지만 가징 큰 이유는 견문의 부족때문이 아닐까한다. 귀중한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보내놓으면 술이나 먹고 해롱거리고 놀다가 돌아와서는 어설픈 보고서 한장으로 땜방하는 일부 공무원들이나 의원들의 행태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할 때마다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또 다른 이유는 학교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입시 때문에 고등학교 교실에서 미술이나 음악같은 소중한 과목들이 사라진다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긴가? 수능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미술이나 음악같은 수업은 안해도 된다는 그런  놀라운 발상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일부 교양없는 학부모들까지 잘못된 풍조에 휩쓸려서 학교에서 예능수업을 한다고 항의를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뭐하려고 자식을 학교에 보내는지 모를 일이다. 입시사관학교라고 알려진 고급 기숙형 학원에 그들의 자녀들을 보내어 공부시키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들어가는게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는 착잡함을 느끼면서 뉴 캐슬 경내를 돌아다녔다.

 

 

현관 위에 삼각형 박공을 얹은 건물은 많이 퇴락되어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시굴다 뉴 캐슬은 1차대전때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한때는 독일군들이 점령하여 지역 본부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쪽에는 우체국과 기념품 판매소,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잔디밭 위에 나무로 만든 매대를 올려놓고 소박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다.

 

 

한두개 정도 사려다가 참았다.

 

 

이제는 가지고 있는 물건도 슬금슬금 정리해야할 나이가 아니던가?

 

 

전시공간에는 굳이 들어가보지 않았다.

 

 

리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중국말을 하는 여성 둘이서 구석 벤치에 앉아 그들만의 오찬을 조용하게 즐기고 있었다. 예의없고 무지막지하기 짝이 없는 대륙에서 온 그런 중국인은 아니었으리라.

 

 

나는 안내판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본 뒤 뒤편 담장쪽으로 가보았다.

 

 

숲 아래쪽으로 도로가 나 있었고 저멀리 보이는 건너편 숲 꼭대기에는 건물 하나가 숨어있었다.

 

 

그뿐이랴? 뉴 캐슬 건물 뒤에는 높은 성벽을 지닌 올드 캐슬이 수줍은듯이 숨어있었는데 두 건물 사이에는 깊은 구렁텅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때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