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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라트비아의 보석 시굴다 3

by 깜쌤 2017. 9. 25.

 

시굴다 기차역 건물안은 한없이 깔끔하고 깨끗했다. 이런건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창구에 쓰여진 글씨를 소리나는대로 읽어보면 아우토부수 빌레시 정도가 아닐까? 아우토부스라고 하면 영어로 Autobus일 것이고 빌레수는 billet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버스표를 판매하거나 예약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그건 그렇고.... 나에게는 지금 시굴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기차역 건물 한쪽은 여행안내센터였다. 나는 유리로 된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굴다에 관한 소책자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영어로 된 안내서와 지도를 찾아냈다. 워낙 다양한 자료들이 많아서 굳이 안내원을 만나볼 필요도 없었다. 인간의 심리를 잘 이용하여 배치해둔 곳이어서 자꾸만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냥 들어와서 자기에게 필요한 소책자나 지도같은 것을 찾아서 들고 나갔다. 이렇게 멋지고 깔끔한 안내소는 처음보는 것 같다. 라트비아의 저력은 이런데 숨어있었다.

 

 

나는 다시 기차역 광장으로 나갔다.

 

 

얼핏 보면 붐비는 것 같지만 나다니는 사람이 워낙 적어서 사람이 그리워지도록 만드는 참으로 묘한 분위기를 가진 나라가 바로 라트비아다.

 

 

이런 디자인으로 시골 기차역을 만든 나라는 처음으로 만나보는 것 같다. 

 

 

역사각기둥 모양의 길다란 시계탑이 마당에 푹 꽂혀있고 그 주위를 키작은 꽃들이 가득한 둥근 화단이 둘러쌌다.

 

 

긴 생머리를 지닌 소녀 둘이서 기둥시계 앞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정도 풍경을 가진 곳이면 낙원이다. 이나라 사람들의 살림살이 속모습은 잘 모르지만 겉만 보고 판단해보자면 확실히 파라다이스 같았다. 시계에 새겨진 글자를 보면 Laima(라이마)다. 이와 똑같은 시계탑이 리가 시의 자유기념탑 부근에도 설치되어 있다는데 나는 왜 그때 그 장소에서 찾아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Laima는 나중에 알고보니 라트비아 최대의 제과 회사였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롯데 정도의 유명세를 가진 회사였다.  그래서 이 광장의 시계탑은 라이마 시계탑이라는 이름을 얻게되었고 리가에서처럼 시굴다 기차역 광장의 명물로 떠올랐다. 조금 떨어져서 기차역을 살펴보았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왜 이리 아름답지?"

 

 

낙원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낙원 속에 있음을 과연 눈치채고 있기나 할까?

 

 

시계탑 너머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간편한 분수대가 만들어져있었는데 처음에는 분수대인지도 모를 정도로 탁 트인 공간속에 슬그머니 숨어 있었다.

 

 

시골 역 광장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나는 기가 차서 할말을 잃었다.

 

 

시굴다에 와서 나는 라트비아를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시굴다를 두고 '라트비아의 스위스'라고 부른다더니 그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닌듯 했다. 

 

 

누가 그랬던가? 지극한 행복을 경험해보면 이 행복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싶어서 그 불안함 때문에 괜히 슬퍼지고 너무 아름다운 것을 봐도 슬퍼진다고.....

 

 

나는 그런 표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갓 태어난 어린아기들을 보면 그 귀여움 때문에 한없이 행복해하다가도 그 아이들이 범죄 많은 거친 세상을 살아갈 일과 오염투성이의 대지와 물과 공기를 먹고 마시며 숨쉬고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너무 슬퍼진다.   

 

 

젊었을 땐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나이가 들면서 하나하나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젊어보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행동과 젊음의 특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너 늙어봤니? 난 젊어봤다!"


누가 처음으로 뱉은 말인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명언이다.

 

 

시굴다 구경을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얻은 지도를 정밀하게 살피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일단은 천천히 걸어서 시굴다 성까지 가보는 것이었다.

 

 

역광장에서 마주 보이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이 지도에서 아래쪽 빨간색 점은 시굴다 기차역을 의미한다. 위쪽에 있는 빨간 점이 시굴다 뉴 캐슬(=Sigulda New Castle)이다. 노란색 점은 크리물다 영주 저택(Krimulda Manor)의 위치를 나타낸다. 거기까지는 기어이 한번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살펴볼 경우 위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뜨게 된다.

 

 

 역광장에서부터 숲속으로 이어지는 도로가로 이어진 인도를 따라 걸었더니 피자 가게가 나타났다.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던 시절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흔히 저런 모습이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창문의 위치 때문에 그 용도를 확신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내가 겪으며 살아온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를 판단해나가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왜 풍경 하나하나가 그림같은지 모르겠다. 자전거 도로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는 선진국이나 다름없다. 이런 도로에서의 라이딩이라면 몇날 몇일이라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피자 가게를 발견한 순간 피자를 먹고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라의 특성상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가게를 발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미리 먹어두어야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나는 피자 가게로 들어갔다. 벌써 11시 55분이 되었다. 지름 20cm짜리 소형은 없다길래 30cm짜리를 주문했다. 한사람이 피자 하나씩을 주문했던 것이다. 푸짐하게 먹게 생겼다.

 

 

토핑 수준은 우리 나라에 한참 못미친다.

 

 

 내가 뭘 주문했더라? 서로 다른 것을 주문했으니 이것저것 맛보면 된다. 피자 한판에 6유로였으니 우리 돈으로 치면 1만 5천원 정도다.

 

 

우리는 밖에 나가서 야외탁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얼마 뒤에 피자가 나왔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피자를 뜯어먹는 맛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이런 순간은 그냥 즐기면 된다.  

 

 

반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도기백(Doggy Bag)을 얻어서 남은 것을 담아갔다. 나중에 또 꺼내 먹으면 되니까..... ㄱ장로가 운반꾼 및 심부름꾼을 자청했다.

 

 

전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자작나무가 늘어선 숲 사이로 난 길을 걷는 즐거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이 나라의 국토 이용률은 어느 정도일까?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잔디밭은 무늬가 정밀한 초록 양탄자같다. 그런 양탄지 사이사이에 자작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숲들과 잔디밭 사이에 띄엄띄엄 자리잡은 집들은 하나같이 엽서속에 박힌 그림처럼 보인다.

 

 

안구가 정화되고 나니 가슴속도 뻥 뚫리는듯 하다.

 

 

우리나라 도시처럼 길바닥이나 인도바닥이나 함부로 파헤쳐진데는 없었다. 

 

 

이는 모든 곳이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키작은 꽃들이 풀밭에 가득했다.

 

 

자작나무 하얀 줄기가 여름 햇살에 물고기들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숲 안에 아이들 놀이터가 배치되어 있었다. 

 

 

직선으로 뻗은 평탄한 도로 옆으로 인도를 겸한 자전거 도로가 함께 나란히 이어져있고 숲 안에는 어린이 전용 놀이터가 마련되어 있었으니 보기에 너무 좋았다.

 

 

어린이 놀이터는 철망으로 된 투시담장이어서 그 안의 상황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한눈에 환하게 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증오심과 적개심, 그리고 편협한 종교적인 광신으로 가득찬 인간들은 이런 평화스러운 모습조차 파괴의 대상으로 삼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평화가 싹튼다.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인간들이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악마다.

 

  

여름 한철이지만 이 아이들은 낙원에서의 삶을 즐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 놀이터 옆에 테니스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말과 글로 어찌 다 형용할 수 있으랴?

 

 

2016년의 평화.......

 

 

하늘엔 한번씩 먹구름이 지나갔다. 빛과 그늘의 조화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걷다가 마침내 우리들은 여행안내도에 나오는 명소를 한군데 마주치게 되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