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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아르바트 거리 6

by 깜쌤 2017. 9. 7.

 

푸시킨을 훑었으니 이제 다른 층으로 가봐야한다.

 

 

이번에는 안드레이 벨르이를 위한 기념공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분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나름대로는 제법 유명한듯 하다.

 

 

인터넷 도서 판매로 유명한 알라딘사에서는 벨르이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벨르이(Andrei Belyi)

 

 

러시아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이론가이자 상징주의 철학가이다. 1880년에 태어났으며, 본명은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부가예프이다. 모스크바 대학의 수학 교수인 아버지와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어머니에게서 지성적, 감성적 재능을 부여받았다. 청년 시절 철학에 몰두하여 러시아의 종교철학자 솔로비요프를 비롯하여 서구 철학자 카트,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영향을 받았다. 

시집 <쪽빛 황금>(1904), <재>(1909), <항아리>(1909) 등을 출간했으며, 연작 '심포니아[<영웅>(1901), <드라마>(1902), <귀환>(1905), <눈보라의 잔>(1908)]', 소설 <은빛 비둘기>(1909), <코틱 레타예프>(1922)를 창작했다. 상징주의 철학과 문학 이론에 관한 많은 논문들을 저술하기도 했으며, 이는 <녹색 초원>(1910), <상징주의>(1910), <아라베스크>(1911) 등에 수록되어 있다. 1916년에 발표한 소설 <페테르부르크>는 역사적 테마를 상징적 언어로 재현하여 러시아 모더니즘 문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출처 : 알라딘사.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25296

 

 

 

 

벨르이에 대해 기본지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니 자연히 건성으로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이 세상을 하직한 저자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나 자신으로 보아서는 애석한 일이다. 

 

 

그 분의 팬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세밀하게 훑어보았을텐데.....

 

 

1880년생이라고 했으니 러시아 혁명시기에는 장년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리 평탄한 인생을 보냈을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을 한참 뒤지다가 이 분이 썼다는 소설 <페테르부르크>의 소감을 보았는데 '난해하기 그지 없다'는 식으로 쓴 것을 보고 내용을 대강 짐작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이상(소설가 겸 시인 이상 말이다) 정도로 판단하는게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생김새부터가 좀 난해하지 않은가?

 

 

나는 천성적으로 너무 어려운 것에는 도전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가지고있다. 고등학교 1학년때 <파우스트>에 도전했다가 머리에 쥐나는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낱말 실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니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출구로 돌아나왔다. 저 문을 통과해서 나가면 골목이 된다.

 

 

바로 이 골목이다.

 

 

나는 골목 안으로 조금 더 걸어가서 러시아 외무성 건물의 위용을 한번 더 체감했다.

 

 

이제 저 문을 나서면 아르바트 거리로 나가게 된다.

 

 

오늘 나는 꼭 보고 싶었던 멋진 구경을 했다.

 

 

거리로 걸어나갔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설명을 듣고 있었다. 확실히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답다.

 

 

우리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4층짜리 건물 안을 훑어보았던 것이다.

 

 

이젠 부근에서 점심을 해결해야한다.

 

 

식당 무무를 찾아갔다. 음유시인은 아직도 걷고있는 중인가보다.

 

 

'마이마이가 아니고 '무무'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담으면 계산을 해주는 시스템을 가진 레스토랑이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밥을 먹어보는 것도 희한한 일 아니겠는가?

 

 

음식맛?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그렇게 먹는데 382루블이 들었다. 1루블을 약 20원 정도로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식사를 끝내고나자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새들이 몰려와서 뒷정리를 해주었다.

 

 

짙은 밤색 깃털을 가진 비둘기들은 사람을 보고도 당최 겁을 내지 않았다. 저렇게 편안히 살다가 겨울에는 어찌 버텨나갈지 모르겠다.

 

 

음유시인 오쿠자바에 관해서는 저번에 이야기했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음유시인 말이 나왓으니 말인데 나는 프랑스의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 정말 좋아했다. 그가 부른 노래 가운데는 <나의 고독>을 좋아한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이젠 호텔로 돌아가야한다.

 

 

 

빅토르 최 추모공간에 한번 더 눈길을 던져 주었다. 아까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진듯 하다.

 

 

어떤 이들은 아예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패션감각이 독특한 여성의 뒤를 따라간다.

 

 

러시아에서 만나는 미식 축구선수....

 

 

이제 여기를 벗어나면 구() 아르바트 거리를 벗어나게 된다. 아르바트 거리는 그리 길지 않다. 약 1.5킬로미터 정도 되려나?

 

 

나는 붉은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역을 눈여겨 보아두었다.

 

 

지하도 속에서 멋진 3인조 클래식 그룹을 만났다. 이런 곳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쩌릿쩌릿해진다.

 

 

나는 선천적인 로맨티스트다. 낭만이라면 뻑 가는 스타일이니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크렘린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수도사 양반도 한번 더 바라보고.... 이렇게 떠나버리면 이젠 더 이상 못만날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