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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아르바트 거리 4 - 빅토르 최, 그리고 푸시킨

by 깜쌤 2017. 9. 4.

 

빅토르 최!  그는 1962년생이다.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출신이다. 레닌그라드는 오늘날의 상트 페테르부르크다.

 

 

그림그리기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미술학교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고 작곡에도 도전했다.

 

 

그가 결성한 러시아 4인조 록그룹 이름이 키노다.

 

 

언더그라운드 가수 생활을 하며 갖은 고생을 다겪은 후 마침내 그는 러시아의 스타가 되었다.   

 

 

해외에서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서 1988년경에는 덴마크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프랑스에도 가고 미국에도 다녀왔지만 사이의 '강남스타일'처럼 세계를 강타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1990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불과 스물 여덟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그는 러시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박혀 별이 되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는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빅토르 최의 추모 벽면을 뒤로 남겨두고 다시 아르바트 거리를 걷다가 흥미로운 조각상을 만났다. 나는 그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려 나름대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묘수를 생각해냈다. 먼저 구글 위성 지도에 들어가서 아르바트 거리를 찾았다.

 

그런 뒤에는 이 조각상을 본 지점을 면밀히 검토하여 위치를 찾아냈다. 그 지점에 올라온 사진 검색을했더니 러시아어로 된 이름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 이름을 복사해서 검색창에 넣고 엔터를 치자 수많은 러시아어 자료들이 올라왔다.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바꾸었더니 마침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알아낸 그의 이름은 Bulat Shalvovich Okudzhava 블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였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시인이자 가수였다. 이른바 음유시인이었던 것이다. 1924년에 태어나서 1997년에 죽은이란다.

 

 

아버지는 조지아(예전의 그루지아 공화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아르메니아 사람이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일까? 어딘선가 그를 만나본듯도 하다. 그동안 조지아는 두번, 아르메니아는 한번씩 배낭여행으로 다녀왔으니 어디에선가 분명 그의 조각상을 보았거나 마주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모습과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오쿠자바를 만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이번에는 러시아인아라면 누구나 다 아는, 아니 어지간히 공부좀 했다고하면 모두들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누구일 것 같은가? 한눈에 누구인지 맞출 수 있거나 짐작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러시아통이라고 해도 되겠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그의 부인 나탈리야 곤차로바다.

 

 

이쯤에 이들 부부의 조각상이 있다는 것은 부근에 푸시킨의 박물관이 있다는 말이 된다.

 

 

나는 조각상이 있는 위치에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골목이 보였다.

 

 

이건 누가봐도 박물관 분위기다. 나는 일단  푸시킨 집 박물관 위치만을 확인해두고 돌아나왔다.

 

 

러시아 외무성 건물부터 확인해두어야했기 때문이었다. 아르바트 거리 끝까지 나가면 왼쪽편에 하늘로 치솟은 웅장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건축역사를 논하는 사람들은 러시아 외무성같은 이런 건물 스타일을 스탈린 고딕 양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건물 앞에는 너른 도로가 있고 한쪽 건물에는 기아 자동차 광고판이 붙어있었다. 신식으로 지은 두개의 빌딩 너머로 모스크바강이 구비쳐 흐른다.

 

 

러시아 거리에는 국산 자동차들이 제법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지하도를 건너 외무성 건물 맞은편으로 가보았다.

 

 

이제 러시아 외무성 본관 건물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왼쪽의 엠블럼이 너무나 유명한 러시아 외무성

     공식 휘장이다. 공포의 독재자였던 스탈린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자하는 뜻을

     담아 이런 스타일의 건물을 제법 지었는데 흔히들

     '스탈린의 일곱자매' 혹은 '웨딩 케이크'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스탈린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뒤를 이은 후루쇼프

     (혹은 흐루시초프)가 더 이상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음으로서 현재로서는 7개의 건물만 남게 된 것

     이다.

 

     외무성 건물, 교통성 건물, 우크라이나 호텔,

     문화인 아파트, 모스크바 대학 본관 건물,

     레닌그라드스카야 호텔, 예술인 아파트 등등이다.

   

 

외무성 건물은 27층짜리로서 1953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위용은 대단해보이지만 어딘가 약간 투박스러워보인다.

 

 

러시아 외무성 건물을 훑어보고난 뒤 우리들은 다시 아르바트 거리를 걸어 푸시킨 박물관까지 되돌아왔다. 아르바트 거리에 연이은 건물 뒤로 외무성 건물이 우리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듯하다.  

 

 

열린 문 안쪽에 박물관 입구가 존재한다.

 

 

여기까지 와서 안들어가본다면 이는 여행에 대한 모독이며 반역자 노릇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푸시킨 박물관과 안드레이 벨리(혹은 안드레이 벨르이) 기념공간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건물이다. 안내판을 잘 보아야 문 닫는 날을 알 수 있다.

 

 

나는 입장권을 살 때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표도 같이 사두었다. 그런 표는 100루불이었다. 우리 돈으로 치면 2천원이 채 안된다.

 

 

함부로 사진을 찍는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손등에다가 포토라고 쓰여진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본다.

 

 

입구 안쪽 공간 내부는 고동색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조금 올라가는듯 하다.

 

 

그랬더니 내부 전시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렸던 날 산골 시골 이발소에 가면 반드시 이런 시가 붙어있었다.

 

 

"삶이 (어떤 곳에서는 '생활이'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 말이다.

 

 

곳곳에서 하도 많이 마주치는 시였기에 나중에는 그냥 외우고 다녔다.

 

 

이제 그 시의 전문을 소개해보기로 하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한 것이 되리니 ......

 

 

 

 

이 시를 쓴 분이 바로 이 양반이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사춘기 학창시절, 나는 소설 <대위의 딸>을 읽었다. 

 

 

표트르마리아, 그리고 반란군의 우두머리 푸가초프가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낙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여서 이젠 줄거리도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푸가초프 같은 이런 이름은 너무 오랫만에 써먹어본다.

 

 

<대위의 딸>이라는 소설을 쓴 사람이 푸시킨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와 나는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푸시킨의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는 대단한 미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녀의 품행이 조금 단정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설인데......

 

 

푸시킨은 결국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진 불미스런 소문 때문에 떠밀리다시피 결투를 하게 되고 치명상을 입고 이틀 뒤에 숨을 거두게 된다. 

 

 

너무 예쁜 미인 아내를 얻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젊었던 날, 푸시킨 자신도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속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많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과응보 혹은 자업자득이었을 수도 있지만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짧은 인생을 살아버린 것은 인류에게 슬픔일 수도 있다.

 

 

그는 러시아 귀족출신이었는데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슬라브인의 특징을 가진 전형적인 러시아 백인답지 않은 독특한 면모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까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같은 외모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그의 외증조부 때문이다.

 

 

외증조부는 아비시니아 출신의 흑인 노예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그 쪽의 황태자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글쎄다......

 

 

 아비시니아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를 말한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라는 연극 제목은 어지간하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으리라.

 

 

1910년 2월, 영국이 자랑하던 전함 드레드노우트호를 방문한 아비시니아 외교사절단은 '붕가'붕가'라는 요상스런 소리를 내면서 함대를 시찰했다.

 

 

사실 아비시니아 외교사절단들은 모두 가짜였는데 영국의 저명 인사들이 영국 해군을 골탕먹이고자 생각해낸 희대의 장난이었다. 그 가짜 외교 사절단 속에 버지니아 울프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남동생 애드리언도 이 장난에 참여했었다. 

 

 

푸시킨의 외조부가 아비시니아 출신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장난질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푸시킨의 외모는 그래서 전형적인 러시아 백인들과는 조금 남달랐다는 말이고 아마 그런 매력때문에 미인 아내를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푸시킨의 외모도 외모지만 그는 젊었던 날부터 이미 천재적인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젊어서부터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니 그게 곤차로바의 마음을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불행했고 결과가 좋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의 바람기는 가정을 뒤흔드는 법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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