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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내가 만났던 하나님 Confess (간증)

(간증) 회심 1

by 깜쌤 2017. 8. 5.

 

2017년 8월 3일 수요일, 나는 딱 30년 전의 그 장소에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31년전에 가르쳤던 제자들 몇명이 참으로 오랜만에 그날 울산에서 만나보고싶다는 제안을 해왔지만 정중하게 사절을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만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기에 미리 모든 약속을 다 물리쳤었습니다. 

 

30년전이라면 1987년이니까 그 다음해인 1988년에 서울 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올림픽 준비로 분주한 해이기도 했지만, 모든 국민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6.29 민주화투쟁이 한창이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참으로 의미가 깊은 해였습니다만 바로 그해가 나에게도 인생의 전기를 마련한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습니다.

 

울산에서 만나기로 했던 제자들을 가르쳐서 졸업시켜 보낸 그 다음해가 1987년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체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과학적인 시각에서 접근해보면 일반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신앙적인 다른 면으로 보면 하나님을 만나서 기적을 체험해본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되었던 것이죠.  

 

혹시 자살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 글을 읽어보고 다시 한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런 뒤 선택해도 절대 늦지않을 것입니다. 그 몇해 전부터 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자살시도를 했었습니다. 

 

 

의사로부터 당신이 암에 걸렸다는 선고를 듣는 순간에 많은 분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물론 나도 그해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암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제가 그해 몇월 며칠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정확하게 알게 되었으니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도 바로 집행 당일에 통고를 받은 것인데, 그런 사형선고를 나는 의사로부터 선고를 받은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점쟁이처럼 살았습니다. 직업적인 점쟁이는 아니었지만 신기(神氣)가 엄청나게 강해서 어지간한 주위의 일은 귀신처럼 알아맞히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몸이 너무 아파 온 몸 여기저기에 고장이 잦았습니다만 의사들도 병을 찾지 못하는 기묘한 일이 자주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자그마치 십년 넘게 계속했으니 몸과 마음이 너무나 지쳐있어서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살이가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심각하게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1987년경에서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아온 과정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리저리 꼬여버리고 어긋난 것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해결점을 찾아야할지 모를 처지에 몰려있었습니다. 

 

그해 나는 경북 영덕군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30년전이니 한창 젊었던 때였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던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경주에 내려와있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경주에 남아있고 혼자서 영덕까지 가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87년 3월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수업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목에 문제가 생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사표를 내는게 옳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집값의 반이 넘는 금액을 은행으로부터 빌려 처음으로 집을 장만했기에 빚도 갚아야했고 큰 아이는 초등학교에, 둘째 아이는 유치원에 갓 입학해서 교육도 시켜야했습니다. 

 

간신히 1960년대의 뼈저린 가난을 벗어나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모두들 발버둥쳤던 시대가 1980년대였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젊었기에 목소리를 짜내어 간신히 수업을 하며 몇달을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나중에는 칠판에 글씨를 써가며 수업을 해야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방학을 해서 조금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한달 뒤에는 다시 수업을 해야했으니 심적인 부담도 컸습니다.

 

나는 도대체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부터 문제가 심각해진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책읽기를 정말 좋아했던 나는 온갖 책을 섭렵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시골에 살았으니 집에는 교과서 말고는 읽을 만한 책이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도회지 학교의 도서관과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봐야할 처지였기에 시간만 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귀신 이야기 같은 것도 보았고 미스터리 이야기에도 빠져들어 무작정 읽어나갔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나서는 특히 심령과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종류의 책들도 참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신기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었지만 그리 단순하게 함부로 단정지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자세하게 언급하겠습니다. 

 

1987년에는 나를 둘러싼 온갖 어지러운 문제와 육체적인 아픔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그해 나는 참으로 많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예전에 들은 풍월에 의지해서 기도를 했던 것이죠.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에 처음 나갔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로부터 지옥 이야기를 듣고 산골 작은 교회에 나가게 되었던 것인데 아주 어설프지만 중고등학교때도 친구를 따라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집안에 아무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신앙에 체계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나는 점쟁이처럼 사는 생활이 너무 싫었습니다. 미래를 알아볼 수 있다는게 매력적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더군요. 대학 1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시골집 내방에서 잠을 자는데 어떤 검은 존재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무슨 뚜렷한 형체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어떤 검은 존재가 나에게 생각으로 찾아와서 선택하기를 강요했습니다.

 

 

 

그 존재는 나에게 이런 생각을 불어넣었습니다. 

"너는 남의 불행을 알아보는 힘을 가질래? 아니면 남의 행복을 알아보는 힘을 가질래?"

 

만약 여러분들에게 어떤 알 수 없는 이상한 힘이 다가와 이런 선택하기를 강요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런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거절해야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이지만 워낙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두웠던 터라 나에게는 그런 존재를 물리칠만한 판단력이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알아주는 지방학교에서 어느 정도는 공부를 했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교육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 발목을 굳게 잡았습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대학에 간것도 아니었기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나는 매일을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어떤 검은 존재의 제안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나는 남의 불행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불행을 당할 사람에게 미리 예고를 해주어서 피해 나가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게 엄청난 불행의 덫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내가 살아온 과정은 불행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성장기에 극심한 아픔을 많이 겪었던터라 위축될대로 위축되어 있었는데 모든 일들이 지지리도 못나게 헝클어지고 엉망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내가 시작하는 모든 일에는 시작 단계부터 실패의 씨앗이 잉태되어 있었고 하는 일 모두가 다 막혀버리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런 극심한 고통과 좌절과 실패와 육체적인 아픔과 정신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죽음에 이르든지 아니면 이 현실에서 되돌아서든지 둘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죽음을 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머리 속으로 이 절벽을 떠올렸습니다.

"그래, 이렇게 괴롭고 힘들고 어렵게 살 바엔 차라리 그 절벽에 가서 뛰어내려버리자. 그게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죽으면 모든게 다 해결될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아내를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에 옮길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이 홀린 듯이 절벽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경주 남산의 통일전을 거쳐서 불국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그게 1987년 8월 3일 아침의 일이었습니다. 아내에게는 자세한 이야기도 남기지 않고 그냥 남산에 간다고만 알렸습니다. 통일전에서 내려서 동남산을 향해 걸었습니다. 내가 목표로 삼았던 절벽을 향하여.....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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