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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6 북유럽,러시아-자작나무 천국(完

페트로 파블로프스크 요새 3

by 깜쌤 2017. 6. 24.

 

문밖에는 선착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요새는 성벽처럼 육중한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물색이 검었다.

 

 

다시 요새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더니 첨탑이 벽위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늘이 왜 이리도 파란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안으로 들어갔다. 무리지은 관광객들이 가이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강물쪽으로 돌출한 부분은 건물처럼 보였다.

 

 

요새안에는 러시아 조폐국도 있다고한다.

 

 

금화나 은화따위를 만들어내는 조폐국이라고 하니 예사 조폐시설과는 격을 달리한다. 그래서 그럴까? 예배당의 첨탑도 황금색으로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요새의 성벽에 올라가 걸어볼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표를 사고 돈을 내야한다는것! 시릴 문자로 까사라고 쓰여져 있는 것 같다. 작은 매표소같은 시설이나 판매대같은 것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한쪽으로는 대포가 진열되어 있었다.

 

 

구소련 시절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레닌그라드라고 불렀다. 

 

 

레닌그라드로 개명해있던 세계 제2차대전 때는 1941년 8월부터 29개월간 독일군에게 포위를 당해 약 40만명의 시민이 굶어죽었다.

 

 

그 사건이 역사에 유명한 레닌그라드 전투다.

 

 

히틀러의 나치군대는 레닌그라드 공략에 실패했고 러시아 전선에서 패퇴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1703년 이 요새를 짓는 것으로 시작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13년부터 러시아제국의 수도로 지정되어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수도가 오늘날의 모스크바로 옮겨간 것은 1918년이니 이제 약 100년전의 사건이 되었다.

 

 

도시인구는 약 500만명 정도라고 하니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나는 요새안의 대성당 앞 벤치에 걸터앉았다.

 

 

안으로 들어가보진 않았다.

 

 

대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긴 두번째 왔다.

 

 

처음 다녀온 것이 1998년이었다. 벌써 20년이 다되어 간다.

 

 

그동안 러시아는 참 많이 변했다. 구소련시절 내가 소련(=비에트 사회주의 방(연방)공화국)을 여행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소련이 무너진 것이다. 이젠 소련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러시아 연방이 존재한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던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성문쪽으로 다가갔다. 이젠 요새에서 나갈 시간이다.

 

 

아까 우리가 들어왔던 문과는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문밖은 대형 주차장이었다.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뒤돌아보았더니 대성당의 뾰족탑이 우리는 굽어보고 있는듯 했다.

 

 

"그래! 안녕!"

나는 거인처럼 우뚝 솟아오른 첨탑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해당화가 곱게 피어있었다.

 

 

에르미타주 미술관까지는 걸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게하려면 몇개의 다리를 건너야한다.

 

 

강변에 세워진 배가 전함 오로라호였던가?

 

 

러시아혁명의 시작을 알린 전함 오로라!

 

 

나는 전설적인 영화 <전함 포템킨>을 떠올렸다. 1925년작 예이젠시타인의 걸작 무성영화다.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일화를 담아낸 영화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장소를 밟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네바강 건너편 이삭성당의 돔이 그 찬란한 황금색을 자랑하듯 둥글게 솟아올라 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