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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후에(훼) 황궁에서 2

by 깜쌤 2017. 6. 13.

 

지금 우리가 둘러보고 있는 후에황성은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다.  

 

 

1802년에 시작된 왕조니까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자면 순조 초기에 해당된다. 서기 1800년 6월에 정조가 승하하고 그해 7월 4일에 순조가 즉위했다.

 

 

조선이 그런 상황일 때 베트남에서는 응우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수도를 후에로 정한 응우옌 왕가는 궁궐을 만들었다.

 

 

가로 세로 각 2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흐엉강변 너른 평야에 터를 잡고 해자를 파고 성벽을 쌓았다. 바다와는 약 8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내륙이다.

 

 

궁궐이니 당연히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와 비교적 가까운 시대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자체의 수가 적게 남아있는 것은 순전히 전쟁 때문이다.

 

 

프랑스와의 투쟁과 미국과의 전쟁때문에 남아난 것이 드물다.

 

 

복원하면 좋겠지만 공산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봉건잔재를 되살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명분이 약할 지도 모른다.

 

 

그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뒤늦게 베트남 정부는 유적보호와 보존에 눈을 뜨고 정비를 해가나는 중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유적 보존에 불을 붙인 셈이 되었다고나 할까?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서는 황성옛터라는 노래가 유행했었다.

 

 

왕평이라는 분이 작사를 하고 전수린씨가 작곡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가사의 출처는 [Daum백과]다. 나도 어린 시절에 제법 흥얼거렸던 노래다.

 

 

후에 황성의 옛터에 서니 나는 황성옛터라는 노랫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고려의 옛 궁터는 개성의 만월대라고 한다.

 

 

전수린씨가 고향인 개성 만월대에 들렀다가 느낀 감회를 노래로 만든 것이 황성옛터라고 전한다.

 

 

후에 황성터에 남아있는 건물 회랑의 내부는 짙은 보라색이었다. 자색이라고 해야겠지.

 

 

그래서 베트남인도 황실 가족이 사는 성안을 두고 자금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금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은 중국 북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도 자금성이라는 말이 된다.

 

 

회랑 끝머리에 서자 후에 황성이 아주 웅대한 규모였다는 사실을 대강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자랑스레 알리는 사진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성안의 건물에는 거의 모두 황금색 기와를 올렸던 모양이다.

 

 

중간중간에 다른 곳보다 조금 높게 쌓은 곳이 보이기도 했다.

 

 

단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으로는 용인지 나가인지 구별할 수 없는 짐승이 배치되었고 단 위에는 황금색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단 위에 올라서서 내가 거닐었던 곳을 살펴보았다. 황금색으로 칠한 이 조각상은 새로 복원한 것같다.

약간은 조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 아래쪽으로는 곳곳에 파괴를 면한 건물들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멀리 깃발탑 꼭대기에는 베트남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하늘이 흐려서 그런지 분위기조차도 점점 우울해졌다.

 

 

단 뒤쪽으로 더 나아가자 다시 연못(?)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성문이 보였다.

 

 

성벽에 바짝 붙은 건물 위에는 이끼가 가득 묻었고 메꽃 비슷한 꽃이 만발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은 진리다.

 

 

담벼락에서 내려온 나는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이 문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가본 것이다.

 

 

해자역할을 하는 큰 규모의 연못이 나타나고 그 위로 다리가 걸렸는데 다리 끝에는 다시 또 한겹의 성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벽 밑으로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제법 치밀한 구조다.

 

 

평야에 자리잡은 황성이니 몇겹의 방어막을 가지는게 당연하다. 아울러 황실 가족이 사는 곳이니만큼 금지구역임을 나타내는 벽이 성 내부에 존재하도록 설계했으리라.  

 

 

인민의 삶에 이만큼 신경을 썼더라면 존경받지 아니할 왕조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리위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이 정도면 연못이 아니라 그냥 해자다.

 

 

일단 끝까지 가본 뒤에 나는 다시 돌아섰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버리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자금성 구역으로 되돌아왔다. 비는 계속해서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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