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후에(훼) 황궁에서 1

by 깜쌤 2017. 6. 9.

 

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보라색 전기자동차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주차장에는 대형버스부터 소형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들락거리느라 제법 혼잡했다.

 

 

강변쪽으로 면한 요새에는 대형 베트남 국기가 걸려있었다. 

 

 

성벽과 포대의 배치를 잘 살펴보면 유럽의 어떤 요새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늘에서 살펴보면 더 확실히 잘 알 수 있다.  

 

 

 

 

후에 황궁을 하늘에서 본 모습이다. 클릭하면 더 크게 확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요새앞에 있는 해자의 깊이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규모는 크다. 모습으로 짐작해보자면 평지에 조성된 포대같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깃발이 걸려있다고 해서 깃발탑이라고도 부른다. 

 

 

 해자위에 다리가 걸려있었다.

 

 

성벽은 높고 튼실하게 보였다. 우리는 출입문에 해당하는 응오몬을 향해 걸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해자가 두겹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신경써서 만든 황궁이다.

 

 

바깥에 해자를 파고 포대비슷한 시설을 하고 너른 공간을 두고 안쪽에 다시 황궁을 만든 것이다.

 

 

프랑스의 압력을 받아 자주성을 완전하게 지켜내지 못한 왕조가 응우옌 왕조다.

 

 

응우옌 왕조는 후에를 수도로 삼았다. 1802년에 시작해서 1945년에 막을 내린 마지막 왕조다.

 

 

왕조라고 표현했지만 왕들이 황제라고 칭했으니 황조라고 해도 된다.

 

 

황제 일가족과 대신들이 살았으니 황궁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약소국이 황제라는 거창한 칭호를 사용한다고 해서 독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국제사회는 실력 우선이지 칭호 우선이 아니다.

 

 

우리도 그런 아픔을 지니고 있다. 조선은 곧 망해가는 과정속에 있었으면서도 왕을 황제라고 칭하고 나라이름도 대한제국이라고 했다. 베트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문(午門)이다. 현지인들은 응오몬이라고 발음하는가보다.

 

 

응우옌 왕조의 2대 황제인 민망황제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형깃발이 걸려있는 깃발탑이 뒤로 남았다.

 

 

오문은 황궁으로 들어가는 공식적인 문이다. 가운데 문으로는 황제가 다녔다고 한다. 좌우 문은 대신들이 다녔고....

 

 

후에황성 입장료는 15만동이었다. 우리돈으로는 7,500원 정도다.

 

 

표를 사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여기에도 패방이 보인다.

 

 

유적의 규모를 보면 당시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국력은 만만한게 아니었다.

 

 

담장엔 황금색 기와를 올렸다.

 

 

패방과 연못을 지나면 황금색 기와를 얹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방금 들어왔던 문과 패방을 돌아다보았다.

 

 

이런 패방을 보면 베트남 문화와 역사속에 스며든 중국문화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겠다.

 

 

디엔타이호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건물인데 내부에 한자로 태화전이라고 쓰인 현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자식으로 태화전이라고 번역해도 틀린 것이 아니리라.

 

 

우리 뒤로는 보라색 비옷을 입은 관광객 한무리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태화전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얕은 계단을 올랐다. 사방 모두 물기로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신령스런 동물을 배치하여 잡귀신들의 출입을 막으려는 시도를 했던 모양이다.

 

 

모습을 보니 동남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오문과 태화전을 이어주는 통로 양쪽에는 연못이 있다.

 

 

내가 사방을 찬찬히 살펴보는 동안 보라색 비옷을 입은 그룹이 우리 앞을 지나버렸다.

 

 

모양새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 같았다.

 

 

노란 기와를 얹은 태화전 건물 앞마당에 샐비어(=깨꽃)가 한창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노란색 꽃을 매단 이 나무는 무슨 종류의 식물일까?

 

 

건물에서는 중국식 냄새도 나고 한국식 냄새도 조금 배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주체하기 힘들어했던 조선이 베트남에 영향을 끼쳤을리는 만무하니 중국식 건물이라고 해야겠다.

 

 

1월에 만나는 노란색꽃과 황궁.....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태화전이라는 현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렇다면 여긴 중국 북경의 자금성을 흉내낸 것이리라. 역대황제들이 즉위식을 거행하고 내외빈들을 만났으며 제사까지 지냈던 공식 공간이었다고 한다. 

 

 

초대형 깃발과 오문과 돌을 깐 바닥과 정원.....

 

 

태화전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1800년대 유적 치고는 남아있는게 그리 많지 않았다. 전쟁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심심치 않게 건물들이 조금씩은 남아있어서 황실의 생활을 엿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베트남의 역사속에도 우리처럼 슬픔이 더 많은듯하다. 

 

 

 태화전을 통과해서 들어가 좌우를 살펴보면 몇채의 건물이 남아있고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대로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 나는 발길 닿는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17 베트남-월남의 달밤 1(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에(훼) 황궁에서 3  (0) 2017.06.16
후에(훼) 황궁에서 2   (0) 2017.06.13
후에(훼) 황궁을 찾아가다  (0) 2017.06.05
후에로 가다  (0) 2017.05.31
호이안에서의 마지막 날  (0) 2017.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