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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곡 - 역사박물관

by 깜쌤 2017. 6. 10.

박물관 입장은 무료였다.

 

 

남학생들이 단체관람을 왔는데 몇몇 아이들의 행동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관람질서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먹는 식량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줄로 아는 일부 아이들 입장에서는 농가월령도 같은 그림들이 이해가 될까?

 

 

고생해본 세대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구들이 제법 많았다.

 

 

이젠 그 많던 유기들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집에서도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전시품들의 상태와 진열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래층은 민속박물관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다. 

 

 

농가월령도를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학창시절에 배운 농가월령가 생각이 났다.

 

 

짚으로 만든 온갖 생활용품들을 사용하던 때가 어제 일처럼 기억에 선명하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나무와 짚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살아나올 수 있었으랴?

 

 

참으로 오래된 담배다.

 

 

이 정도면 곰방대라기보다는 파이프 담뱃대다. 곰방대는 훨씬 더 길다.

 

 

담배잎 농사는 그리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담배꽃은 이쁘기만 했다.

 

 

고리짝들은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물지게와 똥장군! 서민들 삶의 애환이 이만큼 짙게 배인 물건이 또 있으랴?

 

 

다! 키를 보면 마음 아픈 추억이 많다. 그런 사연이 있다.

 

 

요강과 똥장군! 그때 우리들 삶은 참으로 힘들었었다.  

 

 

탈곡기를 밟으면, 날이 박힌 원통이 돌아가는 소리가 참으로 경쾌하고도 리드미칼했다. 

"와릉가릉 와릉가릉~~"

 

'촤르르촤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나락 떨어지는 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듯 하다.

 

 

논매던 기구들이다. 요즘 사람들이 저 기구의 용도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던 풍구는 중국 대륙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호롱을 넣어서 불을 밝혔던 사방등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처음 나온 물건이리라.

 

 

이게 다리미라고 하면 젊은이들은 믿지 못할지도 모른다. 숯불을 피워 넣고 치마도 다리고 옷도 다렸다.

 

 

그러다가 이후에 이런 모양의 다리미가 나왔다. 한 계단 더 진화된 다리미다.

 

 

인두로는 동정 같은 것을 다렸다. 역사기록을 보면 인두를 가지고 고문용으로도 자주 쓴듯 하다.

 

 

반닫이 같은 물건들은 이제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축음기! 정말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얼마전에 LP판을 재생할 수 있는 레코드 플레이어를 새로 하나 장만했다.

 

 

재봉틀은 재산목록에 들어갈만큼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었고.....

 

 

쇠주걱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닳아버린 쇠주걱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저울과 저울추......

 

 

쌀이나 보리를 될 때 쓰던 통도 전시되어 있었다.

 

 

이건 됫박이다. 라고도 불렀다. 곡식이나 막걸리같은 것들의 양을 측정할때 쓰는 물건이다.

 

 

숯불고기 집에서 최근까지 썼지만 이젠 거의 사라진 물건들이다.

 

 

전통 톱을 만났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톱은 이런 모양이어야 맞다.

 

 

대패! 대팻날에 깎여 대패위로 솟아올라오던 대팻밥이 왜 그리도 신기했는지 모른다.

 

 

보면 볼수록 아득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다.

 

 

이런 소중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모아둔 정성이 대단하다.

 

 

함석으로 만들었던 갖가지 생활용품들.....  작년 여름 흑해 부근의 조지아에서 이런 물건을 만드는 전통 가게를 만났었다. 터키 중부 오지 마을에서도 보았다.

 

 

 이런 정도의 서안만 있었어도 집에 책상이 있다고 자랑할 수 있었던 날이 있었다.

 

 

내 서재에는 화로도 하나 숨어있다. 겨울날 아침에는 화로만큼 요긴한 물건이 또 있었으랴?

 

 

사모와 쪽두리, 목안(木雁 나무 기러기) 한쌍은 전통 결혼식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신부를 곱게 치장하는 것은 만국 공통의 풍습이리라.

 

 

안장은 구경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복주머니와 옛날 옷들.... 나는 어머니께서 쓰셨던 복주머니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제사상을 가지고 있는 집안은 나름댜로 제법 뼈대있는 집안이었으리라.

 

 

보면 볼수록 정다운 물건들이 많았다.

 

 

 이런 용품들이 어찌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랴싶다.

 

 

여기 전시된 물품들 상당수는 우리생활 주변에서 급격히 사라져가는 물건들이니 이제 조금있으면 다 잊혀질 것들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생활상이 바뀌는 것을 누가 탓하랴?

 

 

수차(水車)의 용도를 이젠 젊은이들 가운데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우씨문중의 소중한 유물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는듯 했다.

 

 

수집품의 질이나 양에서 결코 만만치 않았다.  

 

 

문중의 역사 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총까지도 수집되어 있었다.

 

 

월곡 우배선 장군! 그는 임진왜란때 대구부근에서 큰 공을 세운 의병장이었다.

 

 

왜 이곳을 월곡역사공원으로 꾸몄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런걸 보면 나는 확실히 역사 깜깜이다.

 

 

옥쇄병풍이었는지 직인병풍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가슴이 뿌듯해져왔다.

 

 

군데군데 이런 박물관이 더 많아야한다.

 

 

좋은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차표를 미리 사두었기에 열차를 놓치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월촌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구로 향했다. 4월 27일의 일이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