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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기행 - 따로국밥

by 깜쌤 2017. 3. 29.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내렸다.

 

 

그게 벌써 14년전 일이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2003년 2월 18일,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으니 엄청난 대참사였다.

 

 

불길에 새까맣게 그을어버린 기둥에는 벗과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 가득한 문구들이 애잔함을 안은채 남아있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대형참사를 자주 겪었다.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지 모르겠다. 거의 모든 대형사고는 적당주의와 무능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사건들이었다.

 

 

나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대구 중앙로는 몰라보게 변신했다. 너무나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사는 도시의 중심부를 걸어보면 촌스럽기 그지 없어서 그저 한숨이 다 나온다.

 

 

원래 왕복 4차선이었던 도로를 축소시키고 대중교통수단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도로 밑으로는 지하철이 지나간다.

 

 

나는 동성로쪽으로 걸었다. 예전부터 유명한 대구의 중심부다.

 

 

간판도 깔끔하게 정비해서 세련미가 넘치게 만들었다. 고리대금업 광고카드를 뿌리는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카드를 날렸다. 저런 행동을 규제하고 처벌할 방법은 없는지 모르겠다.

 

 

골목조차도 너무 깔끔해서 좋았다.

 

 

오늘의 첫목표는 대구백화점 지하에 있는 영풍서점이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은 반드시 서점으로 잡는다.

 

 

서점으로 약속장소를 잡아두면 일찍갈수록 유리하다. 기다리는 시간동안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장소를 잡는 것을 보면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요즘 서점은 문구점과 카페를 결합시키는 것이 대세다. 

 

 

 대세라기보다는 그래야 옳은 것 아닌가싶다.

 

 

나는 서가를 향해 걸었다. 이 정도 서점이면 북카페라고해도 되겠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부지런히 책을 살폈다. 

 

 

 한달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들이다. 원래는 여섯명이 어울려다녔는데 어쩌다가 네명으로 줄고말았다. 

 

 

 한 친구는 한달 예정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고 말았으니 오늘은 세명이 모여야한다. 서점을 나와서는 국채보상로를 따라 걸었다.

 

 

점심은 따로국밥을 먹기로 했다.

 

 

국채보상로 경상감영공원 부근에 유명한 국밥집들이 몰려있다.

 

 

오늘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은 "국일따로국밥"이라는 곳이다.

 

 

따로국밥이라고 하니 낯선 분들이 있을까 싶어 한국민족문화대백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인용해볼까 한다. 

 

요약 : 육개장과 밥은 따로따로 주는 국밥.


대구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따로’의 비법은 국물의 맛을 잘 내는 데 있다. 소뼈를 13∼14시간 동안 고아서, 그 국물에 고춧가루·파·부추·마늘 등의 양념을 많이 넣고 다시 끓여 맛을 낸다. ‘따로’에 넣는 파·부추·마늘 등의 냄새성분은 유황화합물로, 충분히 삶으면 일부가 감미성분으로 변한다.


그래서 대구의 따로국밥은 매운맛 속에 감미가 감도는 독특한 맛의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문음식점도 생기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일장에 가서 먹는 최고의 요깃거리는 단연 국밥 한그릇이었다. 시장에서 먹는 국밥이기에 장터국밥이라고도 했다. 장터국밥에서 밥따로 국따로 나오던가? 당연히 처음부터 국에 밥을 말아서 나오는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그게 아니었다. 밥 한그릇에다가 국 한그릇, 그리고 반찬을 함께 먹는 것이 뼈대있는 집안의 전통적인 식사방식이었다. 그런 고정관념을 깬 것이 시장에서 파는 국밥이라고 할 수 있다. 국과 밥을 한그릇에다가 담아 내어주면 후딱 먹고 일어서는게 국밥의 맛이고 멋이었지만 전통가치관에 맞게 밥따로 국따로 내어준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 따로국밥인 것이다.

 

 

대구 따로국밥은 선지를 넣어서 만드는게 일반적이다. 선지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고역일지도 모르겠다. 따로국밥의 옛날식 이름은 대구탕(大邱湯)이었다고 전해진다. 대구라는 생선으로 끓인 대구탕과는 한자로 쓰면 달라진다. 

 

 

대구에서 시작된 이 음식이 전국에 퍼져서 이제는 어지간한 곳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따로국밥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자면 대구식 육개장이라고 해야할것 같다. 서울에서 대구식 육개장을 먹게 된 것은 1929년의 일이라고하니 전국화된 역사가 제법 길다고 볼 수 있다.  

 

 

인근에는 다른 이름을 가진 따로국밥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므로 취향에 따라 찾아가서 먹으면 될 것이다.

 

 

 

 

 

어리

버리